제주살이 ≠ 365일 휴가

by 하우스노마드 키라

내가 처음 제주에 와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카페 사장 언니가 육지에서 손님이 온다며 숙소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언니는 내게 제주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키라야, 제주 사람들은 육지에 가도 아는 지인한테 연락을 잘 안 해. 왜냐면, 그 사람들도 일하느라 바쁠 텐데 내가 연락하면 귀한 시간 쪼개서 나를 만나러 나와야 하잖아. 그게 미안해서 서울에서 볼일 다 보고 제주 내려가기 전에서야 공항에서 전화로 안부만 전하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제주 사람들이 가진 남에게 피해주기 싫어하는 깊고 사려 깊은 배려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일부 육지 사람들은 정반대다. 제주에 올 때마다 제주 사는 사람들에게 꼭 연락을 한다. "나 다음 주에 제주 여행 가!" 그 말은 반가움의 인사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거운 숙제가 되기도 한다. 제주에 사는 사람은 숙소를 알아봐 주거나, 선뜻 방 한 칸을 내어주거나, 심지어 자신의 차까지 빌려주게 되는 상황이 생기곤 한다.


나 역시 처음에는 반가운 마음에 우리 집 방을 내어주기도 하고, 여행 가이드마냥 여기저기 함께 다니기도 했다. 그러면 2박 3일의 일정이 순식간에 증발한다. 나는 여행자가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가는 '일상생활자'인데 말이다.


이주민 언니 한 명은 육지 손님이 올 때마다 집에서 흑돼지 바베큐 파티를 열어주고, 다음 날은 횟집에 데려가 거하게 회를 대접하느라 진을 다 뺀다. 여행자에게는 모처럼만의 특별한 제주 여행일지 모르지만, 제주에 사는 우리에게는 이런 대접이 일 년에도 여러 번씩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렇게 우리는 호의와 피로 사이에서 서서히 지쳐간다.


정작 아이러니한 건, 정말 친한 사람들은 오히려 제주에 와도 연락을 잘 안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일상에 피해를 줄까 봐 조심스러워하다가, 나중에서야 제주에 다녀갔다며 짧은 안부를 전한다.


가장 황당했던 건 아는 동네 가게 사장님이 겪은 일이다. 어떤 작가가 인스타그램 DM으로 자기가 그 동네에서 한 달 살기를 할 예정이니 맛집부터 한달살이에 필요한 정보들을 싹 정리해달라고 했단다. 조금만 검색해도 나오는 정보들인데, 제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무례한 부탁을 당연하게 하는 이들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제주 사람들은 왜 꼭 밥을 사야 하고, 왜 당연하게 여행 가이드가 되어야 하는걸까?


이런 일들을 겪으며 이제 나는 나만의 원칙을 정했다. 예전처럼 며칠씩 여행 가이드 노릇을 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식사 한 끼 정도 기분 좋게 나누는 선에서 마무리 짓는다.


육지 사람들도 이제는 알아줬으면 좋겠다. 제주에 사는 우리도 육지 사람들처럼 똑같이 바쁘고 고단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임을. 당신의 방문이 반갑지 않은 게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하루하루도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말이다.


만약 내가 서울에 갔을 때, 당신에게 김포공항으로 픽업 나오라고 하면 당신은 기꺼이 나올 수 있는가? 그 질문에 선뜻 "예스"라고 답할 수 없다면, 제주 사는 친구의 시간도 존중해주길 바란다. 그것이 서로의 소중한 일상을 지켜주는 가장 따뜻한 배려일 테니까.


사실 내가 제주에 직접 내려와 살지 않았더라면 평생 알지 못했을 마음들이다. 나 역시 한때는 누군가에게 무례한 여행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찔해진다. 하지만 다행히 제주에 살면서 서로의 일상을 존중하는 법을 또 이렇게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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