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겨울로부터

제주 날씨 적응기 겨울편

by 하우스노마드 키라

제주는 일년내내 따뜻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제주 겨울 날씨에 대해 그리 뭔가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제주에서 첫 겨울,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집에 붙어있는 문들이 죄다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바람이 부는 듯 한데 바람 소리치고는 꽤 무섭다. 마치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집 밖은 위험해 보였다. 내가 겁이 많아서 해가 지면 절대 집 밖에 나오지 않는 사람인지라 문 열고 나가지도 못했다. 너무 무서워서 밤새 잠을 한 숨도 못 잤다.


다음날 아침, 어젯밤 무슨 일이나 있었냐는 듯이 세상 고요하다. 고마운 제주사람1에게 물어본다. 어젯밤에 무슨 일 있었냐고. 그랬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한다. '아니, 어젯밤에 전쟁 난 것처럼 창문이 흔들리고 하던데요.' 했더니, 뭐, 그게 대수로운 일이라는 듯, 바람이 좀 많이 불었지. 라고 한다.


그렇다. 제주의 겨울바람은 태풍 부는 것 못지않게 불어댄다. 그래서 처음 겪는 제주의 강풍에 제법 많은 육지 사람들이 놀란다. 하지만 그 겁많은 나같은 사람도 겨울 강풍을 한번 겪고 나면 제주 겨울 바람에 자연스러워진다. 제주 날씨에 적응했달까? 바람이 꽤 부는 겨울밤, 가끔 육지 사람들이 제주에 오면 난 꼭 미리 이야기를 한다. 바람이 엄청 불어 집안의 모든 창문이 흔들린대도 무서워하지 말라고.


제주의 강풍에 적응하는 가 싶더니, 며칠 동안 눈이 아주 많이 내렸다. 내 차 위에 쌓인 눈은 50cm가 넘었다. 주변에서는 제주에 이런 날씨가 없었다고 했다. 집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게 고립의 시간이 주어졌다. 다행히 집에는 함께 귤 따던 삼춘들이 챙겨주신 음식이 많이 있었다.


며칠 동안 집에서 '냉장고 파먹기'를 하고 살았다. 여름에 비가 많이 내려 정전이 됐던 기억이 있어 미리 양초와 가스버너도 준비해놨다. 그런데, 갑자기 보일러 기름이 똑 떨어졌다. 눈이 많이 내려 보일러 기름 배달도 안 된다고 한다. 육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이후로 이젠 눈이 많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으면 고립의 시간을 준비한다. 마트 가서 장보기, 주유소에서 기름 한 말 사다 놓기, 가스버너, 양초 준비해놓기 등등.


서울에 살 때는 일기예보를 주의 깊게 보지 않고 살았다. 늘 건물 안에서 생활하다 보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상생활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제주에 살면서 매일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사실 변화무쌍한 제주 날씨에 일기예보도 시시각각 달라지지만 저절로 습관이 된다.


여름에 꽤 많은 비가 온다고 하면 모래주머니로 빗물이 넘어오지 않도록 둑을 쌓기도 하고, 태풍이 온다고 하면 마당에 있는 것들을 죄다 집안으로 들여놓는다. 겨울에 영하로 내려간다고 하면 수돗물이 얼까 봐 보온재로 수도관을 감싸기도 하고, 물을 아주 약하게 틀어놓기도 한다.


이런 제주의 바람, 비, 눈과 함께 산 지 십년이 되어간다. 제주의 날씨와 함께 살아오면서 옷차림이 바뀌었다.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샤랄라 원피스 대신 바람에도 끄떡없는 몸에 붙는 옷을 입는다. 서울에선 칼바람을 막아줄 필수 아이템이었던 두꺼운 구스패딩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대신 일 년 내내 교복처럼 후리스를 끼고 산다.


제주 날씨와 함께 제주에서 잘 사는 방법은 날씨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눈이 내리면 내리는 대로.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당황하지 않고 대비한다. 그렇게 제주의 날씨에 적응하며, 제주의 겨울을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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