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내게 가르쳐준 3가지 시선
제주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막내 이모가 제주 여행을 왔다가 내가 알바하는 카페에 잠깐 들렀다. 이모는 카페 사장 언니에게 대뜸 이런 말을 던졌다.
"얘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애가 아니에요."
아, 그 말이 얼마나 창피했던지. 도시의 잣대를 가진 이모 눈에는 서울의 좋은 직장에서 나름 잘 나가던 조카가 시골 카페에서 알바하는 모습이 어처구니 없었을 거다. 당시 우리 엄마도 나에게 단단히 화가 나 있던 때였다. 멀쩡한 직장 때려치우고, 아직 젊은 애가 대체 왜 시골에 가서 살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육지 사람의 시선으로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 역시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자연에 살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던 전형적인 육지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제주에서 나는 전혀 다른 시선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아니, 삶을 바라보는 '눈' 자체가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 제주라는 섬에서 육지의 문법과는 전혀 다른 시선들을 발견한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귤 농부 아저씨들이 흙 묻은 낡은 트럭을 타고 골프장에 가는 모습이었다. 내가 알던 골프는 도시의 '가진 자'들만이 누리는 전유물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땀 흘려 농사짓는 사람들도 쉽게 즐기는 일상이었다.
내가 자주 가는 국밥집 아주머니도 식당 문을 열기 전 공치러 다녀오신다. 귤 따러 오는 할머니들 역시 생계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부지런한 삶이 익숙해서 귤 가위를 잡으신다. 그들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편협한 '육지 사람'의 잣대를 가지고 살아왔던 건지 알게 되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교과서적 문장을 나는 제주에서 내 눈으로 목격한 것이다. 노동과 재산의 계급 없는 당연하지만 낯선 풍경이었다. 그 시선의 변화 덕분에 나 역시 책방 문을 잠시 닫고 기꺼이 귤을 따러 갈 수 있었다. "왜 젊은 사람이 귤을 따고 있느냐"는 물음에 "왜요? 젊은 사람은 귤 따면 안 되나요?"라고 당당히 반문할 수 있는 배짱도 생겼다.
사람의 껍데기보다 알맹이를 보게 되는 이곳에서, 나 역시 나를 가두던 단단한 껍질을 하나씩 벗게 됐다.
내가 늘 '고마운 제주 사람 1'라고 부르는 이는 예상치 못한 관계의 문법을 내게 보여주곤 한다. 그는 밥을 먹든 차를 마시든, 일부러 아는 지인의 가게를 찾아가 팔아준다. 지인 찬스를 써서 가격을 깎으려 드는 보통 사람들과는 정반대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가 농사지을 땅이 필요했는데, 마침 그의 친척 한 분이 땅을 내놓으려고 고민 중이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친척이니까 싸게 달라고 할 텐데, 그는 오히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돈을 더 드릴 테니 혹시 팔려거든 나에게 팔아달라"고 했다는 거다.
처음에는 그 말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아니 보통 아는 사람이니까 가격을 깎아달라고 하는데 돈을 더 주겠다니, 이건 또 뭐지? 그는 내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필요한 땅이고, 그 땅 주인이 친척이면 돈을 더 주고 사는 게 맞지." 그 순간 내가 알고있던 사고방식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렇다. 친한 사람일수록 남들보다 더 많이 주는 게 맞는 거였다. 친한 사이일수록 기쁘게 지갑을 여는 그 마음이 제주가 내게 가르쳐준 관계의 품격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더 좋은 것들을 주려고 한다.
제주 사람들에게는 익숙하고 흔한 돌담을 나는 지금도 볼 때마다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제각각 다르게 생긴 돌들이 엉성하게 쌓인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강한 태풍에 무너지는 법이 없다. 언젠가 제주 선생님 강의에서 그 해답을 들었다.
"제주 사람들은 바람에게조차 돌담 사이로 지나갈 길을 내어주었습니다. 제주 사람들은 자연을 거스르고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택한 것이죠."
돌담 사이 틈이 없었다면 돌담은 무너졌을 거다. 돌담 사이의 빈 공간은 배려였고, 공존이었다. 그래서 제주의 자연이 더 아름다워 보였던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바람이 통할 정도의 적당한 틈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야 함께 오래 보며 살 수 있다는 것을 돌담을 보며 배운다.
기존에 내가 가지고 살았던 육지의 잣대와 색안경은 이미 오래전에 버려졌다. 대신 나는 이곳에서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물질적 풍요 대신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시간과, 계절이 선물하는 다채로운 색깔을 얻었다. 시간에 쫓겨 건조하기 짝이 없던 삶은 이제 제주의 습도가 더해져 촉촉하고 말랑해졌다.
껍데기를 벗고 알맹이를 보는 눈,
가까울수록 더 챙기는 관계의 눈,
틈을 내어주는 공존의 눈.
아홉 번의 제주의 겨울을 보내며 나는 이 촉촉한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제주에 살고 있다. 그리고 열 번째 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