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다시 정의하다

by 하우스노마드 키라

우리가 늘 쉽게 건네는 인사말 중 하나는 "행복하세요"가 아닐까. 나 역시 자주 사용했던 말이다. 새해가 되면 습관처럼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란다'거나, '행복하세요!'라고 인사를 전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을 예전처럼 쉽게 내뱉지 않는다.


살다 보니 좋은 일 뒤에 나쁜 일도 찾아오기 마련이고, 늘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설령 우리가 행운이라 부르는 사건조차 그것이 정말 삶의 축복인지, 불행의 시작인지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막연한 행복 대신, 어떤 일이 일어난대도 지혜롭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행복의 실체를 찾아 헤매던 시간

나도 한때는 행복을 간절히 갈망했다. 여행을 떠날 때면 늘 가방에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을 챙기고, 유럽 어느 골목의 성당에 들어가면 촛불을 켜고 "제발 행복하게 해주세요"라고 빌었으니까. 대체 그 행복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나는 그토록 찾아 헤맸던 걸까.


예전의 나는 행복이란 뭔가 특별하고 거창한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만 행복하면 그만인 줄 알았다. 프랑스 파리의 루이뷔통 본점에서 그토록 갖고 싶던 가방을 사서 숙소로 돌아가던 길, 이상하게도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소유하고 싶던 물건, 가고 싶던 장소, 먹고 싶던 음식을 모두 가진다고 해서 내 안의 이름모를 허전함이 채워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제주에서 핸드폰 알람이 아닌 새소리에 눈을 뜨는 아침을 살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행복'이라는 단어가 다시 내 삶에 조용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소소한 풍경이 가르쳐준 것들

아침 햇살이 창문 너머로 들어와 반짝반짝 책장을 비출 때 "아, 예쁘다"라고 나도 모르게 말했던 그 날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새벽 출근길, 어스름한 하늘에 손톱만큼 가는 달이 떠 있을 때,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던 아침, 우리집 부엌 창문 너머 귤밭에 한라봉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모습,

밤이면 귤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유리창에 만드는 귤나무 그림자를 가만히 지켜보며 잠이 드는 것.


비로소 나는 "아, 이런 게 행복이지."한다.

이미 내 주변에 충분히 있었음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자꾸만 먼 곳으로 찾아 헤맸던 것이었다. 어쩌면 행복은 거대한 파도라기보다 잔잔하게 밀려오는 잔물결에 가까운 거였다. 그 작고 소란스럽지 않은 순간들이 모여 어느덧 나를 환하게 웃음 짓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의 행복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나를 넘어 '너'로 확장되는 행복

그러던 어느 날, 행복은 결코 나 혼자만의 것으로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 안 CCTV 화면에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보이지 않던 어느 날, 가슴이 조마조마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왜 그리 멀게 느껴지던지. 다행히 아이들은 태평하게 놀고 있었지만,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나와 함께 지내는 존재들이 무사하고 무탈해야만 나도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이후 오랜만에 통화한 친구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에, 제주에서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시간을 보내던 나의 행복도 단숨에 무너져 내렸다. 친구가 고통 속에 있는데 나 혼자 행복하다고 웃는 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었다.


그즈음 엄마의 갑작스러운 팔 수술 소식 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대신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사랑하는 사람이 수술대에 올랐는데 딸 혼자 누리는 평온한 행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진짜 행복은 '나도, 너도' 건강하고, '너도, 나도' 함께 안녕해야 완성되는 것이었다.


내가 다시 정의한 행복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행복을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


행복이란 현재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미련 없이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기에 밤새 혼자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대신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나와 연결된 모든 이들이 오늘 하루도 무사하고 무탈하며, 평안하고 평온한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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