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본 우프 가입을 위해 결제한 5,000엔. 누군가에겐 무슨 가입비가 5만원이나 되냐며 아까울 수도 있는 금액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모험의 보험 같았던 돈이었기에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일본 우프 가입과 더불어 도착한 일본에서, 나는 기대 이상의 가성비와 가심비를 모두 갖춘 진짜 여행다운 여행을 하게 되었다.
5주
일본에서 처음 우퍼로 보낸 시간이다. 제주에서 인천공항까지 왕복 비용, 공항 호텔 1박, 일본 왕복 항공권까지 포함해서 일본 우프를 위해 사용했던 돈은 약 150만원. 하지만 실제 일본 땅을 밟고 나서 5주 동안 사용한 돈은 대략 70만원 정도였다.
하루 식비와 숙박비는 0원. 우프 호스트가 제공하는 방과 식사가 있었으니까. 교통비와 개인 용돈, 2번의 삿포로에서 짧은 여행을 합쳐도 5주 동안 70만원. 이 금액에서 20만원 정도가 기차를 타고 이동했던 비용이다. 일반 여행으로 일본에 5주를 머문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혹시 저 사람은 5주 동안 일본에서 맛있는 것도 먹지 않았나봐,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절대 먹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란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건 돈이 아니었다. 적은 비용에 비해 내가 이 일본우프에서 얻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 일본우프 가입비 5,000엔의 입장권은 돈으로 가늠할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내게 새로운 여행의 형태로 되돌려주었다.
관광객이었다면 절대 알 수 없었던 진짜 일본의 현지인들의 생활속에서 발견한 몇가지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타코야키 팬이 있는 일본 가정집
어느 저녁, 호스트 가족들이 타코야키 팬을 꺼냈다.
한국 가정집에 삼겹살 구이 판이 하나쯤 있는 것처럼, 일본 가정집에는 타코야키 팬이 있다고 했다. 특히 오사카 사람들은 거의 다 가지고 있다던데, 홋카이도에 사는 이 가족도 타코야키를 워낙 좋아해서 집에 타코야키 팬이 있었다.
동그란 구멍에 반죽을 반쯤 넣고 문어와 쪽파, 생강 등 토핑을 넣는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와 함께 타코야키를 송곳 같은 걸로 뱅뱅 뒤집을 때마다 터지는 웃음소리. 식탁 위에 깔린 신문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다 익은 타코야끼 위에 소스를 뿌리고, 가쓰오부시를 뿌려서 호호 불어가며 뜨거운 타코야키를 입에 넣던 우리.
이 순간, 나는 관광객이 아니었다. 그냥 이 집 식구였다.
관광지 식당에서 줄을 서서 타코야키를 사 먹는 것과, 일본 가족과 함께 집에서 직접 구워 먹는 것. 같은 음식이지만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구글 번역기와 함께한 대화
내가 머문 호스트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게다가 나는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일본어라고는 어릴때 할머니가 자주 쓰던 메가네(안경) 같은 몇개의 단어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지 않은가?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이야기를 나눴고,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로 농사와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할머니와 함께 정원에서 잡초를 뽑거나, 토마토 모종을 심는 일. 손짓과 몸짓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더 풍요로운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래도 괜찮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함께 땀 흘리며 일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하나씩 물고 더위를 식히며 시간과 장소를 공유했으니까. 노동의 땀방울은 말보다 깊은 언어라는 것을 몸소 깨달은 순간이었다.
일본에서 낮 12시는 0시
우리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함께 먹었다. 한국의 시골처럼 일본 사람들은 늘 텔레비전을 켜놓고 밥을 먹었다. 아침 8시 정각이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아침 드라마를 꼭 챙겨본다.
그리고 오전 일을 하고 점심 식사를 하러 들어온 낮 12시.
텔레비전 화면 구석의 시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분명 낮 12시인데 '0:00'이라니. 일본에서는 낮 12시를 0시로 표기하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이건 현지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삶의 비밀번호 같은 것이었다. 아침 드라마 시간도, 0시 표기법도, 식탁 위의 신문지도. 관광지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았던 일본의 진짜 평범한 일상이었다.
나는 이 여행에서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그 어떤 럭셔리 호텔에서도 맛볼 수 없는 편안한 잠자리와 최고의 먹거리, 그들의 일상으로 특별한 사치를 누렸다.
그건 바로, 누군가의 식탁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것이었다.
관광객이 아니라 손님으로, 손님이 아니라 가족처럼.
지난 시간 100여개가 넘는 세계의 도시를 여행했지만 이런 여행의 경험은 처음이었다. 5주동안 70만원이라는 적은 비용으로 잠시나마 그들의 삶의 일부가 되었던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살아보는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