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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에서 오작교까지

동남아에만 수상식당이 있나?

by Sylvia 실비아

딸: 아빠! 집이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아요! 혹시 이거… 무중력 하우스?!


아빠: ㅎㅎ 무중력 하우스? 저건 수상가옥이야.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한강변에는 저렇게 물 위에 떠 있는 집들이 있었어. 드럼통 위에 나무 판을 깔고 그 위에 집을 지은 거야.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이 불어나면 드럼통 덕분에 집이 뜨는 거지. 물이 빠지면 다시 땅에 내려앉고.


딸: 오 마이갓, 리얼 플로팅 하우스…! 아, 근데 여기 뚝섬 아니에요? 뚝섬이면 섬 아닌가요? 뚝~ ‘섬’이잖아요?


아빠: ㅎㅎㅎ 그게 오해할 만하지. 근데 뚝섬은 원래 섬이 아니야.


딸: 네? 아버님, 지금 농담하신 거죠? 섬이 섬이 아니라니요?


아빠: ㅎㅎ 진짜야. 뚝섬의 ‘뚝(纛)’은 둑이 아니라 ‘깃발’을 뜻하는 말이야. 조선 시대에 왕이나 황제의 행차를 알리는 깃발이 많이 세워졌던 곳이라서 뚝섬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야. 지대가 낮다 보니 비가 많이 오면 물길이 생겨서 섬처럼 보이니깐 섬이라고 불린 거지.


딸: 아… 그러니까 뚝섬이 ‘뚝+섬’이 아니라 왕실 군기(纛)에서 유래한 이름이었군요? 이름 때문에 완전 낚였네. 그럼 여기는 원래 왕실 VIP들만 이용할 수 있었던 곳인가요?


아빠: 뚝섬은 단순한 왕실 전용 유원지가 아니라 왕이 사냥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던 왕실 전용 공간이기도 했어. 그리고, 왕이 군사 훈련을 직접 점검했던 곳이었지.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넓은 모래밭이 있어서 군사들이 훈련하기 좋았거든.


딸: 헐, 완전 옛날 버전의 ‘밀리터리 베이스’네요! 그런데 여기 사진들을 보니까 사람들이 모여서 노는 곳 같은데요? 뚝섬이 군사 훈련장이었다가 놀이동산으로 변신한 거예요?


아빠: 정확히 말하면, 뚝섬은 서울 3대 유원지 중 하나였어. 한강 유원지, 뚝섬 유원지, 광나루 유원지가 그 시절 서울 대표 유원지였어. 특히 뚝섬 유원지는 접근성이 좋아서 서울 시민들이 많이 찾았지.


딸: 그럼 여기는 ‘레트로 롯데월드’였던 거군요! 그럼 거기 가면 뭘 했어요?


아빠: 여름이면 가족 단위로 놀러 와서 수영도 하고, 배를 빌려 뱃놀이도 했어. 그리고 수상식당이 있어서 배 위에서 밥도 먹을 수 있었지.


딸: 수상식당이요? 그러니까… 이거 혹시 ‘플로팅 레스토랑’인가요?! 완전 동남아 감성인데요?


아빠: 그렇지. 요즘은 없지만, 예전엔 한강에도 수상식당들이 많았어. 한강 위에 배를 띄워서 식당으로 운영했던 거지.

19680800-0571-뚝섬.JPG 1968년 뚝섬 - 사진 박옥수

딸: 와~ 완전 감성 미쳤다. 지금 한강은 배달음식 먹는 게 국룰인데, 그땐 직접 한강 위에서 밥을 먹었다니… 진짜 힙하네요! 그때는 배달음식 없었죠?


아빠: ㅎㅎ 그때는 지금처럼 배달앱이 없으니까, 이렇게 직접 가서 먹어야 했지. 배를 개조해서 만든 식당들도 있었는데, 다리 밑이나 강변에 줄을 묶어놓고 영업했어.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차서 둥둥 떠오르기도 했고.


딸: 헐, 그러면 손님들이 밥 먹다가 식당 떠내려가는 대참사가 벌어지는 거 아니에요?


아빠: 그 정도는 아니고, 줄을 단단히 묶어놨지. 그래도 물이 불어나면 바닥이 둥실 떠오르니까, 배멀미하는 손님도 있었어.


딸: 와, 한강에서 밥을 먹는다… 이거 메뉴가 더 궁금해요! 혹시 그때 ‘강변 한정판’ 요리 같은 게 있었나요?


아빠: 당연하지! 보통은 장어구이, 영계백숙 같은 메뉴가 많았어. 요즘도 계곡 근처 가면 평상 펴놓고 닭백숙 파는 집들 있잖아? 그거랑 비슷한 분위기였지.


딸: 와, 한강에서 장어구이라니… 럭셔리하네요? 근데 그때는 외식 문화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잖아요? 수상식당은 ‘한강 VIP 라운지’ 같은 느낌이네요?


아빠: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당시엔 한강 유람선 같은 것도 없던 시절이니까, 이런 식당에서 물가 풍경을 보면서 밥 먹는 게 특별한 경험이었어.

19700700-7479- 뚝섬.JPG 1970년 뚝섬 - 사진 박옥수

딸: 그런데요, 여기 보니까 ‘아리랑 매점’, ‘나일강’, ‘오작교’ 같은 이름들이 있는데요? 이거 뭐예요? 가게 이름이 완전 감성 터지는데요?


아빠: 그게 다 한강에 있었던 수상식당들이야. ‘아리랑 매점’은 간단한 간식을 팔았고, ‘나일강’은 본격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었어. 그리고 ‘오작교’는 이름 그대로 한강에서 연인들이 데이트하던 명소였지.


딸: 헐! 나일강이면 그 이집트 나일강?! 와, 스케일 크다. 요즘 같으면 "한강 라운지" 같은 감성 이름을 붙였을 텐데, 그땐 왜 이렇게 이름들이 재밌죠?


아빠: 그 시절 감성이었지. 요즘처럼 ‘맛집’이라는 개념이 정착된 게 아니라, 그냥 "나일강보다는 아리랑 매점이 낫더라" 같은 입소문을 듣고 가는 정도였어.


딸: 그러면 당시에 ‘핫한 맛집 랭킹’ 같은 게 없었던 거네요? 요즘은 인스타그램 보고 "여기 존맛탱!" 이런 거 보고 가잖아요.


아빠: 그런 거 없었지. 대신 “아리랑보다는 오작교가 낫더라” 같은 이야기들이 있었어. 가게마다 특징이 좀 다르긴 했거든.


딸: 그러면, 그때도 한강에서 ‘인증샷 필수’ 같은 거 있었나요? 요즘은 한강 오리배 타고 ‘감성샷’ 찍는 게 국룰인데.


아빠: 인증샷은 없었지만, 수상식당은 나름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였어. 특히 ‘오작교’ 같은 곳은 한강 야경을 보면서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연인들이 많이 찾았지.


딸: 와… 한강 위에서 밥 먹고, 보트도 타고… 완전 ‘레트로 감성’의 끝판왕이네요?! 근데 요즘 같으면 한강공원에서 짜장면 시켜 먹어도 될 텐데…


아빠: 요즘은 짜장면이 흔하지만, 그때는 짜장면은 아무 때나 먹는 거 아니야. 졸업식 같은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이었어. 그리고, 그때는 짜장면 배달도 없었어


딸: ㅋㅋㅋ 요즘은 졸업식 하면 스테이크 써는데, 그땐 짜장면이 고급 코스였군요.


아빠: 맞아. 그래서 수상식당에서 밥 먹는 건 꽤 사치였어. 대부분 사람들은 도시락을 싸왔지. 김밥, 삶은 계란, 감자, 고구마 같은 걸 싸와서 먹었어. 김밥이 최고고 그다음에 무슨 감자 고구마 이런 거 쪄가지고 가고


딸: 그걸 다 왜 무겁게 그렇게 쪄가지고 다녔데? 배달의 민족에다가 시키면 되지!


아빠: 배달의 민족이라 ㅎㅎ허. 요즘은 그렇지. 뚝섬 유원지에서는 수상식당뿐만 아니라, 육지 쪽에도 간이식당이 많았어. 가족들이 놀다가 배고프면 가서 국밥이나 불고기 백반 같은 걸 사 먹었지.


딸: 오!!! 수상식당 + 노점상 = 한강 푸드코트! 그러면 뚝섬은 완전 서민들의 핫플이었겠네요?


아빠: 맞아. 반면에 광나루 유원지는 조금 더 부유층이 많이 찾는 곳이었지. 워커힐 근처라서 외국인들도 많았고, 분위기가 좀 달랐어.


딸: 그럼 뚝섬은 ‘대중형 테마파크’, 광나루는 ‘프리미엄 리조트’ 같은 느낌이었겠네요?


아빠: 그렇게 보면 되지. 여기 한강 위에 배가 잔뜩 떠 있는데… 이건 뱃놀이하는 거야. 요즘은 유람선 타고 한강 야경 보는 게 인기지만, 그때는 이런 뱃놀이가 한강에서 제일 핫한 놀이였어.


딸: 와~ 그냥 노 젓는 거 말고 진짜 ‘놀기 위한 배’였던 거네요?!


아빠: 그렇지. 요즘으로 치면 한강 라운지 같은 거지. 가족 단위로 배를 빌려서 타거나, 친구들이 모여서 전세 내고 놀기도 했어.


딸: 진짜요? 그럼 요즘 감성으로 치면 ‘한강 프라이빗 파티 보트’ 같은 거네요?!


아빠: 비슷해. 배를 타고 한강 가운데까지 나가면, 거기서 밥도 먹고 술도 한잔 하고, 강바람 맞으면서 쉬는 거지.


딸: 완전 분위기 미쳤다…! 근데, 배를 타고 한강 한가운데로 가면… 그럼 거기서 뭐 했어요? 그냥 둥둥 떠 있는 거예요?

19700700-5265--뚝섬.JPG 1970년 뚝섬 - 사진 박옥수
19690900-6196.JPG 1970년 뚝섬 - 사진 박옥수

딸: 뭐요?! 배 위에서 낚시까지? 이거 완전 풀옵션 패키지였네요! 근데요, 이렇게 배를 타고 놀면 다시 돌아올 때 힘들지 않았어요? 노 젓는 것도 일이었을 것 같은데…


아빠: 맞아. 배 빌릴 때 노 젓는 사람을 따로 고용하는 경우도 많았어. 그 사람들은 하루 종일 강에서 일하니까, 힘 하나는 장사였지.


딸: 와, 그럼 배마다 전담 노 젓기 스태프까지?! 완전 제대로 된 서비스였네요.


아빠: 그렇지. 그리고 배에서 내려올 때까지 한강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거야. 요즘처럼 바쁜 일상 속에서 짬 내서 ‘호캉스’ 가듯이, 그때는 이렇게 한강에서 하루를 보내는 게 특별한 일이었지.


딸: 아… 이거 듣고 나니까, 요즘 한강에서 배달음식 시켜 먹는 게 되게 초라하게 느껴져요. 그때는 진짜 한강을 제대로 즐겼다 싶어요. 그때로 돌아가서 한 번만 해보고 싶다. 이거 진짜 너무 멋진 경험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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