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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다리는 거야

사진은 기억을 일깨운다

by Sylvia 실비아

딸: 아빠! 이 사진에 하늘을 쓱 가로지르는 무언가가 있는데… 혹시 이거 UFO?! 아니면 드론?!


아빠: ㅎㅎ 드론은 무슨. 저건 제비야, 제비. 한때는 우리나라 하늘을 가득 메웠던 새였어. 지금은 보기 힘들 수도 있지만, 그 시절엔 정말 흔했지.


딸: 그럼 이거 완전 ‘리얼 버드워칭’이네요? 근데 제비가 어디 가는 길이에요?


아빠: 가을이니까 남쪽 나라로 떠나는 길이지. 제비는 철새라서 봄에 왔다가 가을이면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거든. 이 사진 찍었을 때가 아마 9월 말쯤일 거야.


딸: 9월 말이면… 가을 방학 시즌인가요? 제비도 한국에서 여름휴가 즐기고 남쪽으로 워케이션 가는 건가요?!


아빠: 뭐, 비슷하지. 따뜻한 나라에서 쉬다가 봄이 되면 다시 우리나라로 날아오니까. 예전엔 시골 마을마다 제비집이 있었고, 처마 밑에 둥지를 트는 게 흔한 풍경이었어.


딸: 와, 지금은 비둘기가 점령한 세상인데… 제비가 그렇게 흔했어요?


아빠: 그럼. 심지어 제비가 집에 둥지를 틀면 복이 온다고 해서 다들 그냥 둬뒀지. 그만큼 친숙한 새였어.


딸: 이게 바로 ‘길조’ 감성! 근데 아빠, 이 사진 찍을 때 제비가 어디쯤에 찍혔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요즘처럼 카메라 화면으로 바로 확인하는 것도 아니었잖아요.


아빠: 그때는 필름 카메라라서 찍고 나서 바로 확인할 수도 없었어. 그래서 제비가 날아가는 경로를 보면서 예측해서 찍는 거지... 필름 카메라는 한 번 찍으면 끝이라서, 감각이 중요했어. 눈으로 보고, 딱 타이밍 맞춰서 눌러야 했지. 요즘 디지털카메라는 버튼 누르면 미세하게 딜레이가 있는데, 필름 카메라는 내가 보는 순간 그대로 찍혔어. 그래서 사진 한 장 찍기 위해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경우도 많았어. 이 사진도 아마 서너 컷 찍었을 거야. 제비가 같은 경로로 계속 날아다니니까, 예상해서 기다렸다가 셔터를 누른 거지.


딸: 와… 이거 거의 저격수 아닌가요? “타깃 발견! 타이밍 맞춰서… 샷!” 같은 느낌인데?!


아빠: 사진도 기다림의 예술이야. 그냥 아무렇게나 찍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떤 장면이 나올지 예상하면서 준비해야 하지.


딸: 그런데 아빠! 이 사진… 혹시 상 받은 거 아니에요?!


아빠: 오, 어떻게 알았냐? 맞아. 이거 국전(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받았어.


딸: 어렸을 때부터 보아오던 사진이니깐요! 항상 마루에 커다랗게 걸려있었는데? 특선이면 완전 좋은 거잖아요? 예를 들면… 요즘으로 치면, 유튜브 골드 버튼 같은 거?!


아빠: ㅎㅎ 뭐, 비슷할 수도 있지. 근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내가 원래 사진 제목에는 별로 신경 안 쓰는 편인데, 여의도 박안과 원장이 이 사진을 보고 “이건 그냥 ‘가을’이 아니야. 가을이 ‘오는 중’이지.”라고 하더라고. 그 양반이 시적인 표현 같은 걸 잘해! 내가 “가을이면 가을이지 뭐가 올 무렵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지, 제비도 갈 때 되었고, 가을이 올 무렵이 맞지 않나? 그러니까 ‘가을이 올 무렵’이지”라고 해서 그렇게 했지.


딸: 오… 그 말 좀 멋있는데요? ‘가을이 올 무렵’이라… 다 이렇게 또 이런 멋진 콜라보가 있었군요. 이 사진 찍을 때, 아빠는 이게 상 받을 줄 알았어요?


아빠: 솔직히? 아니. 그냥 순간을 담았을 뿐이야. 하지만 사진은 결국,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거든.


딸: 아빠, 근데 사진 찍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요즘은 그냥 핸드폰 들고 찰칵하면 끝인데…


아빠: 너무 쉽게 찍으니까, 그게 좀 문제일까? 또 매력일까? 아빠 생각에 사진은 요리랑 비슷해. 그냥 아무 재료나 던져놓고 요리가 되는 게 아니잖아? 요리사가 재료를 보고 ‘이걸 어떻게 요리해야 맛있을까?’ 고민하듯이, 사진가도 현장을 보고 ‘이걸 어떻게 담아야 제대로 표현될까?’ 고민해야 해. 그냥 무작정 찍는 게 아니라,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딸: 진짜! 사진이 요리라고요?! 와, 이거 갑자기 철학적인데요?!


아빠: 중요한 건, 경험이 쌓여야 한다는 거야. 그냥 많이 찍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봐온 것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서, 그 순간이 왔을 때 바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해. 그냥 셔터를 누르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 이미 ‘완성된 사진’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해. 그리고 순발력이 필요하지. 순간을 잡는 순발력! 순발력이라는 건 사진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야. 나는 항상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 "사진을 못 찍는 게 아니라, 순간을 잡아내지 못하는 거다." 사진이라는 건 단순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보고, 배우고, 경험한 것들이 한순간에 응축되어 나오는 종합적인 예술이야. 현장에 도착하면, 마치 요리사가 재료를 늘어놓고 ‘이걸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하는 것처럼, 사진가도 ‘여기서 어떤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진가는 일종의 셰프야.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낼지 고민하는 것처럼, 우리가 찍는 사진도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감각과 경험이 녹아든 결과물이 되어야 해. 그냥 보이는 대로 막 찍는 게 아니라, 어떤 구도로 담을지, 어떤 분위기를 연출할지 고민하고, 보는 사람도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을 잡아야 하는 거지. 단순히 "카메라를 들고 있다"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해.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순간에는 그동안 봐왔던 것, 배웠던 것, 경험했던 것들이 모두 한 번에 머릿속에서 정리되고, 자연스럽게 손끝으로 나와야 해. 마치 컴퓨터에서 ‘엔터’를 누르는 것처럼, 사진 한 장을 찍는다는 건 그동안 쌓인 모든 것이 최종적으로 실행되는 순간이야. 아무런 준비 없이 셔터를 누르면, 그저 흔한 스냅사진이 되겠지만, 머릿속에 정리된 이미지가 있다면 그 순간 완성도가 다른 사진이 나오는 거지.

그래서 같은 장소에서 같은 카메라로 찍어도, 어떤 사람은 감각적인 사진을 만들어내고, 어떤 사람은 밋밋한 사진을 찍게 돼. 차이는 ‘순간을 보는 눈’이야. 사진은 결국 한순간을 포착하는 예술이니까. 경험이 쌓이면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어. 그리고 실수는 당연한 거야. 사진을 찍다 보면 "아, 왜 이걸 못 봤지?" 하는 순간이 꼭 생겨. 하지만 중요한 건, 그걸 다음에는 놓치지 않는 거지.

스냅사진을 찍는 순간, 실수할 수도 있지만 그걸 경험으로 남기고 발전시키는 게 중요해. 단순히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게 사진가가 아니라, 보고, 생각하고, 경험을 쌓아가면서 순간을 잡아내는 게 진짜 사진가의 역할이야. 사진을 찍다 보면, 한눈에 모든 걸 다 담아내지 못할 때가 있어.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장면을 툭 툭 툭 찍었는데, 나중에 보면 "아, 이걸 왜 못 봤지?" 하는 경우가 생기지.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모든 걸 다 포착할 수는 없으니까. 중요한 건 그 실수를 오래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다음엔 놓치지 말자" 하고 넘어가는 거야.

한 번의 실수가 영원한 실수로 남는 게 아니라, 그걸 계기로 점점 더 예리한 눈을 가지게 되는 거지. 한 장면을 볼 때, "이번에는 이걸 놓쳤지만, 다음에는 저걸 더 신경 써야겠다" 하면서 계속 배우는 거야. 한 장면을 온전히 담아내는 건 한순간의 감각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이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능력이야.

그래서 사진도 단련이 필요해. 그냥 감으로 찍는 게 아니라, 계속 찍고, 실수하고, 다시 찍고 하면서 단련이 되는 거지. 같은 장소에서도 어떤 사람은 센스 있게 찍고, 어떤 사람은 밋밋한 사진을 찍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 순간을 보는 눈, 경험을 통해 쌓인 감각이 차이를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 실수했다고 너무 연연하지 마. 중요한 건, 그걸 경험 삼아서 다음에 더 나은 장면을 잡아내는 거지. 사진은 결국, ‘계속 찍어야’ 성장하는 거야.


딸: 아빠 진짜 멋지당! 그나저나, 오늘도 엄청 바쁘게 다니셨죠? 시장도 가고, 서대문 형무소도 가고… 내가 아빠 페북으로 다 보고 있지~


아빠: 그러게 말이야. 3.1절이어서 서대문 형무소에서 행사하는 것도 보고, 시장 가서 순댓국도 한 그릇 먹고 왔지.


딸: 순댓국? 맛집인가요?!


아빠: 유명한 집이지. 근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른 집으로 갔어. 그래도 그 집도 맛있어서 배 터지게 먹었다.


딸: 아빠, 다음에는 순댓국 하나 싸 오세요! 엄마도 좋아하실걸요?


아빠: ㅎㅎ 그래, 다음에는 한 봉다리 들고 오마.


딸: 근데 아빠, 오늘 하루 종일 사진 찍으면서 무슨 생각했어요?


아빠: 결국, 사진은 사람을 담는 거야. 장소, 풍경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지.

1970-1523-제3한강교인근-영화촬영.JPG 1970년 제3한강교인근 영화촬영 - 사진 박옥수

딸: 와… 갑자기 감성 터지는데요? 와, 사진이 이렇게 재미있는 건지 몰랐어요! 그냥 한 장 보면 “오~ 잘 찍었네” 하고 넘길 수도 있는데, 거기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으면 완전 다르게 보인다니까요?! 같은 사진인데, 아빠가 설명해 주면 뭔가 필름이 한 장씩 더해지는 느낌이랄까? 그냥 멋진 사진이 아니라, 스토리가 촤르르~ 펼쳐지는 영화 같달까요? 어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일본분이랑 아빠 사진 보면서 그걸 제대로 체감했어요. 서로 영어로 대화하는데, 한남대교 남단 고가에서 아빠가 찍은 영화 촬영 장면을 보더니 갑자기 "이거 쓰리휠스카(삼륜차)잖아!"라고 하는 거예요! 저 완전 깜놀!! "어? 선생님 이 사진 처음 보는데 어떻게 아시냐?" 했더니, 일본에서도 옛날에 이런 차가 많았대요. 와… 이게 이렇게 연결된다고?! 그때 확실히 깨달았죠. 사진은 그냥 ‘예쁜 장면’이 아니라, 시대랑 사람을 연결하는 ‘타임머신’이라는 걸요! 같은 걸 봐도 아는 사람은 그 안에서 역사를 읽고, 자기 경험이랑 연결하고, 또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잖아요? 그리고 그걸 함께 이야기하면, 한 장의 사진이 사람들 사이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거예요. 이게 바로 사진이 말을 거는 순간! 그래서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거구나 싶어요. 그냥 ‘좋은 사진’이 아니라, “야, 나한테도 할 말 있거든?” 하고 다가오는 사진인 거죠!


아빠: 그러니까, 네가 사진을 볼 때도 그냥 보지 말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보려고 노력해 봐. 그러면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을 거야.


딸: 이거 그냥 사진 이야기하다가 인생철학까지 배워가네요?! 아빠 최고!


1979년-제28회 국전사진부 특선(가을이 올 무렵).jpg 1979년 제28회 국전사진부 특선 (가을이 올 무렵) - 사진 박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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