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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야 건널 수 있었던 강

by Sylvia 실비아

딸: 아빠! 이거 진짜 실화예요? 한강을 배 타고 건넜다고요?!


아빠: 그럼. 한강에 다리가 몇 개 없던 시절엔 배를 타고 건너야 했지. 트럭도 배에 싣고, 사람도 타고, 장사꾼들은 물건 한가득이고 배에 올랐어.


딸: 진짜요? 그럼 출근길에 배 타고 출근한 거예요?

19680546-뚝섬.JPG 1968년 뚝섬 - 사진 박옥수

아빠: 맞아. 아침마다 나루터는 사람들로 북적였지. 특히 장사꾼들은 새벽부터 줄 서서 기다렸어. 배를 타야 시장으로 가서 물건을 팔 수 있으니까. 그때는 한강에 다리가 몇 개 없어서, 강 건너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 수박 같은 농산물을 저 아랫녘에서 차에 싣고 올라와도, 다리가 없으니 뚝섬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넘어가야 했거든. 봉은사 건너편에서 뗏목 배에 트럭을 그대로 실어서 강을 건너는 방식이었지. 거대한 뗏목처럼 생긴 배인데, 평평하게 넓어서 차를 그대로 실을 수 있었지. 청담부선 제1호라고 쓰여 있는 배가 바로 그런 역할을 했어.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배 자체는 무동력이야. 뒤쪽에 작은 배가 붙어서 밀고 가는 방식이지. 그러니까 앞쪽은 그냥 방향만 잡아주고, 실제로는 뒤에서 밀면서 강을 건넜던 거야.

19710131-7052-뚝섬.JPG 1968년 뚝섬 - 사진 박옥수

딸: 와… 요즘은 신호 한 번만 길어도 난리인데, 그땐 한참을 기다려야 배를 타고 건널 수 있었네요?


아빠: 그럼. 강을 건너는 일 자체가 기다림이었어. 배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배에 오르면 또 천천히 강을 건너야 하고. 근데 그 기다림이 당연했어.


딸: 그런데 한강을 건너는 게 왜 그렇게 중요했어요?


아빠: 그땐 한강 건너편이 ‘서울’이었어. 지금은 강남도 번화한 도시지만, 그땐 완전 시골이었지. 일자리를 구하려면 한강을 건너야 했고, 시장에 가려면 배를 타야 했어.


딸: 그러면, 강남 사람들은 매일 아침마다 배 타고 서울 출근했어요?


아빠: 그렇지. 청담에서 출발해서 왕십리나 동대문 시장까지 가려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했어. 특히 장사하는 사람들은 한강을 건너야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 기다림도 곧 생계였지. 특히 뚝섬은 물류 중심지였어. 한강 나루터가 있어서 수박, 배추 같은 것들이 배로 실려 왔거든. 서울 시내로 들어가는 도매시장 물건들도 여기서 다 정리됐지.

19700700-5267--뚝섬.JPG 1970년 뚝섬 - 사진 박옥수

딸: 헐! 뚝섬이 물류 허브였다니… 완전 조선시대 쿠팡 같은 느낌이네요?


아빠: 뭐, 비슷하지. 여기는 배로 수박을 실어 나르고, 시장으로 보내고, 사람들도 건너오고, 그러느라 하루 종일 북적댔어. 그리고, 옛날엔 뚝섬이 서울시 양묘장이었어. 꽃도 키우고, 배추도 심고, 수수도 있었고. 지금이야 다 한강공원으로 변했지만, 그때는 정말 넓은 농경지였지.

19680006.JPG 1968년 뚝섬 - 사진 박옥수
19700414-6067-뚝섬.JPG 1970년 뚝섬 - 사진 박옥수

딸: 서울 한복판에서 배추를 키운다? 상상도 못 했어요. 그런데 왜 하필 뚝섬에서 그런 걸 했어요?


아빠: 뚝섬은 한강변에 있어서 물이 풍부했거든. 게다가 땅이 워낙 넓어서 서울 시내 거리마다 심을 꽃나무 같은 걸 여기서 키웠어. 한강 주변은 원래 비옥한 땅이니까 농사짓기 딱 좋았던 거지. 물을 대기도 쉬웠어. 그리고 강변이라 땅이 넓었지. 지금처럼 빌딩이 들어서기 전에는 이 넓은 땅을 그냥 두는 게 아까웠거든. 농사짓는 사람들이 많았어. 수수, 배추, 무 같은 것들을 키우고, 작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꽃모종도 기르고….

19700700-7481- 뚝섬.JPG 1968년 뚝섬 - 사진 박옥수
19690525-1100-뚝섬.JPG 1969년 뚝섬 - 사진 박옥수

딸: 어머! 이 사진들은 완전 한강판 ‘키즈카페’? 벌거벗은 애들은 막 뛰어다니고, 물놀이하고…


아빠: 그렇지. 옛날에는 다들 한강에서 놀았어. 지금처럼 놀이공원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한강 유원지가 최고의 놀이터였지. 어르신들은 장구치고 춤추고,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그리고 막걸리 한 잔씩 곁들이고.

딸: 한강에서 대낮부터 막걸리를?! 요즘 같았으면 뉴스에 떴을걸요! ‘한강공원 음주 문화 논란, 세대 갈등 심화!’ 이러면서.

19680552-뚝섬.JPG 1968년 뚝섬 - 사진 박옥수

아빠: 그땐 그런 거 없었어. 막걸리는 원래 ‘일하는 사람들’의 술이었으니까. 시장에서도, 논밭에서도, 뚝섬에서도 자연스럽게 마셨지. 그리고 한 잔씩 따라주면서 정을 나누는 문화였어. 지금처럼 스마트폰 하나씩 들고 따로 노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이야기하고 놀았거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꽹과리, 장구치고 노래 부르고, 그 옆에서 춤추는 사람들도 있었어. 그러다 보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구경하다가 같이 어울리기도 하고.


딸: 완전 버스킹 문화의 원조네요!

19690518-1122-뚝섬.JPG 1968년 뚝섬 - 사진 박옥수

아빠: 맞아. 공연한다고 돈을 받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흥이 나서 하는 거야. 그러다 기분 좋으면 막걸리 한 잔 사주고, 팁도 주고. 그런 게 자연스러웠지. 그러다 비 오면 미끄럼틀 아래로 다 피신하고.

1968년 뚝섬 - 사진 박옥수

19680554-뚝섬.JPG 1968년 뚝섬 - 사진 박옥수

딸: 그러게요! 저 사진 속에 있는 게 바로 미끄럼틀이었군요?! 전 무슨 조형물인가 했어요. ㅎㅎ

아빠: 옛날 미끄럼틀은 다 시멘트로 만들었어. 이게 그냥 맨질맨질하니 반질반질했지. 일본말로 ‘도끼다시’라고 하는데, 시멘트를 대리석처럼 매끈하게 마감한 거야.

딸: 흐미… 근데 이거 너무 가파른 거 아니에요?! 저기서 내려오다가 착지 잘못하면 한강까지 날아갈 기세인데요?! 유치원도 없고 하루 종일 여기서 놀았을 거 같은데, 애들 엉덩이 불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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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968 뚝섬 - 사진 박옥수

아빠: 하하하. 그땐 미끄럼틀 타다가 바지 다 헤지는 건 기본이었지. 그래도 애들은 하루 종일 거기서 놀면서도 또 타고 또 타고. 어른들이 다 일하러 나간 동안, 애들은 그냥 한강변에서 알아서 놀았어.


딸: 와… ‘맘카페’ 대신 ‘한강 카페’였군요?! 근데 쪼그마한 애들이 애들을 왜 저렇게 업고 있어요?


아빠: 형제자매가 많으니까, 큰애가 작은애를 돌보는 게 당연했어. 그리고 걸어 다니기 힘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형, 누나들이 업고 다녔지. 요즘 같으면 유모차 태우겠지만, 그때는 그런 것도 없었으니까.


딸: 그러면 애가 막 울고 떼쓰면 어쩌죠?


아빠: 그냥 달래는 거지. 울다가 지치면 업힌 채로 자고, 그러면 또 형이 그 상태로 계속 다니고. 사진에도 보면, 형, 누나들이 동생 업고 멍 때리고 있는 장면 많잖아. 그게 그냥 일상이었어. 요즘 애들은 스마트폰 게임 먼저 배우지만, 그땐 애 보면서 먼저 배우는 게 더 많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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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뚝섬 - 사진 박옥수

딸: 아빠, 그런데 이 사진들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요?


아빠: 음… 아마도 한강 얼음판에서 빠진 사람을 구조하는 장면일 거야. 옛날에는 겨울이면 한강이 꽁꽁 얼었어. 그래서 사람들이 얼음을 건너다니기도 했고, 가끔 조심 안 하면 빠지기도 했지. 이 사진 봐봐. 한강 얼음 위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있지? 저기 한가운데서 뭔가 건져 올리고 있잖아.

1971년 뚝섬 - 사진 박옥수

딸: 오 마이갓! 저거 뭐예요? 물에 빠진 거예요?!


아빠: 그래. 어떤 사람이 얼음 위를 걷다가 그대로 빠져버린 거야. 그때는 한강이 꽁꽁 얼면 그냥 강을 걸어서 건너는 게 흔했거든. 근데 겨울 끝자락이면 얼음이 녹아가면서 이렇게 빠지는 사고가 있었지.


딸: 와… 진짜 무섭다. 근데 사람들이 다 같이 구조하는 거예요?


아빠: 그렇지. 그냥 막 뛰어가면 같이 빠질 수도 있으니까, 다들 긴 막대기를 가져와서 멀찍이서 건져 올리려고 한 거야. 한 팀은 이미 가까이 가서 사람을 붙잡고 있고, 다른 팀은 뒤에서 지원하려고 오고 있잖아. 다들 경험이 있어서 알아. 얼음 위에서는 기다리면서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걸.


딸: 우와… 이거 완전 영화 같은 장면인데요?! 근데, 저분… 괜찮으셨을까요?


아빠: 몇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어. 인사동에서 전시를 하던 때였는데, 어느 날 한 남자분이 나를 찾아왔거든. 내 사진을 보더니 갑자기 "이거 혹시 저 아닐까요?" 하드라고.


딸: 에에?! 진짜요?


아빠: 응. 그분이 1965년쯤 뚝섬에서 살던 분인데, 어릴 때 한강에서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자기를 구해준 장면이 이 사진 속에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 지금은 뚝섬에서 꽃집을 하고 계신데.


딸: 와… 운명이다! 근데 어떻게 알고 찾아오신 거예요?


아빠: 원동엽 작가라고 있어. 성동구랑 광진구 신문을 발행하면서 동네 이야기를 기록하는 친구야. 뚝섬책에 글도 써주신 분이야. 이 사진을 지역 주민들한테 보여줬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직접 찾아오신 거지. 그리고 그날 함께 사진을 본 뚝섬 토박이들이 "이 집은 누구네 집이고, 저 수상식당은 누구네 거였고" 하면서 옛날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더라. 결국, 한강에 빠진 사람은 아닌 걸로…


딸: 와… 대박! 아빠 사진이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거네요?!


아빠: 그렇지. 사진은 그냥 찰칵 찍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덧붙여지는 거야. 그때는 몰랐던 의미가 나중에서야 드러나기도 하고.


딸: 완전 타임머신이네! 사진 한 장 속에 과거와 현재가 다 들어 있잖아요?!


아빠: 맞아. 그리고 그 안에는 기다림도 담겨 있지. 얼음 위에서 누군가를 구할 때도 기다려야 하고, 사진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기다려야 알게 되고. 뚝섬의 겨울은 춥고 거칠었지만, 그 안에는 사람들의 손길과 기억, 그리고 기다림이 있었던 거지. 기다림이 불편한 게 아니라, 그 시간을 채우는 방법을 찾았던 거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술 한잔도 하면서 말이야.


딸: 우와… 아빠, 이거 영화 한 편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근데 아빠, 가만 보면 사진도 기다림의 연속이네요?


아빠: 맞아. 좋은 사진 한 장을 찍으려면 기다려야 해. 제비가 날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때까지 기다리고, 빛이 제대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고… 그냥 아무 때나 셔터를 누르는 게 아니라,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해. 그리고 결국, 가장 좋은 순간이 찾아왔을 때 찍는 거지. 사람들은 다 빨리 뭔가를 얻고 싶어 하지만, 기다림 없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없어. 한강을 건너는 것도, 사진을 찍는 것도, 다 기다림이 쌓여야 제대로 되는 거야.


딸: 요즘은 기다리는 게 지루해서 핸드폰만 들여다보는데, 그땐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이벤트’였네요? 듣고 보니, 인생도 기다림의 연속인 것 같아요. 강을 건너기 위해 기다리고,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아빠: 맞아. 그리고 결국, 기다림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중요하지. 그냥 지루하게 보내는 게 아니라, 의미 있게 채워야 해. 그렇지. 기다리는 동안 무얼 하느냐가 결국 그 사람을 결정짓는 거야. 삶도 마찬가지지.


1970년 뚝섬 - 사진 박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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