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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크로스 체크한 이야기

연상연하

by Sylvia 실비아

딸: 엄마! 아빠랑 어떻게 만났는지 이야기 좀 해줘요! 아빠집에 엄마가 하숙생이었잖아! 완전 응팔이야기 같고 재미난데 아빠가 부끄러운지 자꾸 모른다고 하고 자세하게 이야기를 안 해주시네~


엄마: 부끄러운 게 아니라 오래돼서 생각이 안 나는 거 아니야? 가만있어봐라. 엄마도 가물가물한데… 그게 1학년 마칠 때였어. 엄마가 기숙사에 살았잖아. 방학이 되면 기숙사에서 나와야 했고. 근데 엄마는 음대학생이어서 방학 때에도 교수님한테 피아노 레슨을 계속 받아야 했었어. 알바도 해야 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기숙사 같은 방을 쓰던 가정과 전공하는 친구가 자기 친구가 신촌에 사는데, 거기 문간방이 비었다고 같이 살자고 하드라고. 둘이서 같이 자취를 하면서 살자는 거지. 같이 그 집을 보러 갔지. 옛날 집이라 조그마한 툇마루가 있었고 부엌은 공동으로 쓰고 하는 거더라고. 12월부터 방학이고 3월이 되어야 개학이니까. 괜찮은 생각이다 하고 자취를 시작했지. 근데 왠 걸 그 친구가 한 달도 안돼서 고향집에 내려가겠다는 거야.


딸: 아이고, 우리 엄마 어뜩해. 힝~ 대학교 1학년생이믄 완전 애기인데. 혼자서…


엄마: 그 친구는 서울에서 할 일도 없고, 심심하고 엄마처럼 피아노 알바를 하러 다니는 것도 아니니까 내려가겠다니 뭐 어쩌겠어. 그래서 나 혼자 남았지. 그래서 혼자 밥을 해 먹고 지내는데, 주인아저씨- 그러니까 너희 작은할아버지지 -, 그 큰 딸이 연대 종교음악과를 다녀서 나랑 아는 사이가 되었는데 걔가 하는 말이 “너 혼자 어떻게 밥을 해 먹니? 밥값 좀 더 내고 우리하고 같이 밥 먹자” 하더라구.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한 거지.


딸: 오오오~ 드디어 만남이 시작되는 겅가?


엄마: ㅎㅎㅎ 들어봐~ 안방에 밥상 두 개가 딱 차려지는데, 하나는 여자들이 먹는 밥상이고, 하나는 남자들이 먹는 밥상이었는데, 아빠랑은 밥상에서 마주친 기억이 없어. 생각해 봐. 아빠는 맨날 카메라 메고 나가는 사람 아니었겠니. 내가 알바를 늦게까지 하게 된 날이랑 음악회를 갔다가 오느라 늦게 오는 날이 있었는데 그때 나와서 문을 열어줬던 거지.


딸: 오오오~ 그때가 바로 ‘띠로리~’하고 사랑이 싹트는 순간?


엄마: 얘 좀 봐 웃겨 죽겠네. 근데 더 웃긴 건 뭔 줄 아니? 그때 박옥수 씨는 대학생이 아니라 고 3학생이었던 거야! 시험을 보러 왔던 모양이지? 근데 나한테 일부러 그런 건지, 어떤 건지 고등학생 티를 하나도 안 내더라고! 그래서 나는 당연히 대학생인 줄 알았지 모니!?!


딸: 그렇네! 우리 엄마가 한 살 많잖아? 크으으~ 그 시절에 연상연하 커플은 잘 없었을 텐데…


엄마: 그래~! 나 대학교 1학년이었던 거고 아빠는 고3 학생이었던 거야! 그때 네 아빠가 사진 한다고 고등학생인데도 불구하고 무지 세련 되가지고, 대학생인 줄 알았지 고등학생인 줄은 전혀 몰랐지. 옷도 교복 입은 것은 본 적도 없고, 딱 대학생처럼 행동했던 거 같아. 아빠는 그때 고등학생인데 벌써 국전에 입선하고 해서 대학도 특채로 들어갔을 거야. 암튼 그런 식으로 얼굴 몇 번 본 게 다였지. 둘 다 콧대가 높아서 아는 척도 안 하고, 진짜 그 집에 방학 내내 살면서 말 한마디도 안 했지.


딸: 남녀칠세부동석! 뭐 그런 시절이었던 것은 아니구?


엄마: 무슨~! 너네 큰아빠 하고 삼촌 하고는 말도 잘 나누고 얼마나 잘 지냈는데~


딸: 아빠가 유독 조용한 편이기는 하쥬~


엄마: 나는 남자가 숫기가 없어서 그런가 했고, 또 사람이 워낙 겸손해서 그런가 보다 했지. 실은 고집쟁이고 콧대가 높아서 그런 건데 말이야. ㅎㅎㅎ 아무튼 그러고 한참 지나서 여름방학 때 집에 가는 기차 안에서 만났잖아!


딸: 그래 여기서부터가 바로바로 나의 탄생 스토리야! 나의 탄생 스토리!


엄마: 그때 아빠가 엄마를 식당차에 데려갔단 말이지. 그 시절에 식당칸은 부자들만 가는데야. 나는 속으로 햄버거나 스테이크 같은 거를 사줄 줄 알았지. 근데…


딸: 나 알아!!!! 콜라 사줬지? 콜라 사줬어! 엄마가 여러 번 이야기해 줬잖아~ 근데 이렇게 풀스토리는 처음이네! 아빠는 고딩이었다니 ㅋㅋ. 와아~ 재밌다. 아빠가 한 얘기랑 엄마랑 한 얘기랑 다 이야기로 써야지!!!


< 어렸을 적부터 들어온 기차 + 식당칸 + 콜라 이야기가 이렇게 양측의 확인으로 완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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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5일! 아빠와 엄마가 결혼하신 지 50주년이 되었어요. 50년을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아빠, 엄마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두 분에게 작은 선물로 리마인드 웨딩 촬영을 진행했답니다. 30주년 때 아빠가 빨간 장미 30개를 엄마한테 선물하던 기억이 나고, 40주년 때는 뭘 하셨는지 모르겠어요. 어버이날을 맞아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아빠가 은근슬쩍 다가오는 25일이면 50주년이라고 그러시는데, 제가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요? 요즘에 리마인드 웨딩도 하고 그러니 “우리도 하자! 드레스, 턱시도 입고 사진 찍자!”라고 했는데 그때는 “에구~ 남사스럽게 그런 걸 뭐 하려 하냐~”하시더니 막상 당일 날이 되니 두 분 다 모델 포스가 뿜뿜! 하게 촬영을 엄청 즐기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우리 아빠, 엄마 정말 멋지고 이쁘죠?

두 분 지금 모습처럼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KakaoTalk_20250801_203213464.jpg 2025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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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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