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68?
딸: 음… 아빠 사진들 좀 봤는데요! 남녀가 찍힌 사진들, 연애 분위기 나는 것들이요. 그런 거 좀 얘기해 주세요! 옛날 연애사와 그때 데이트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아빠: 연애하는 사진들 말이지? 글쎄… 요즘은 카페 가고 영화 보고하는 게 보통인가? 통 모르겠네 ㅎㅎ 하지만, 저 때는 데이트 장소가 그렇게 많지 않았어. 제일 만만한 곳이 고궁이었지. 이게 사람들 데이트하는 그런 것들을 내가 사진을 다 찍어놓은 거야. 고궁의 연인들 사진이지…
딸: 고궁의 연인이요?
아빠: 그래. 요즘은 사람들이 ‘고궁 산책 간다’ 그러면 유적지처럼 조용히 걷는 느낌이지만, 옛날에는 거기가 데이트도 하고 노는 곳이었지. 학생들 미팅도 거기서 하고, 서클 활동 같은 거 해도 어디 멀리 가기 어려우니까 일단 고궁으로 갔어. 창경원 같은 곳에서는 돗자리 펴고 앉아서 도시락도 먹고, 음악도 듣고 했지. 잔디밭에 앉아서 간단하게 김밥이나 사이다 같은 거 먹었지. 지금처럼 ‘잔디 보호’ 이런 개념이 없었어. 창경원에 가면 전축 틀어놓고 음악 듣고, 사람들이 춤추기도 했어. 지금처럼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조그만 전축 들고 와서 LP 틀어놓고 놀았지. 그리고 창경원은 벚꽃 피는 봄철에는 밤에도 개장했거든.
딸: 오~ 야간 데이트도 가능했네요?
아빠: 응. 야간 개장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렸어. 관람차도 돌아가고, 분위기가 좋았지. 그리고 창경원 안에는 ‘수정궁’이라는 3층짜리 건물이 있었어.
딸 : ‘수정궁’? 뭔가 고급 레스토랑 같네요?
아빠 : 그렇지. 1층에서는 간단한 간식 같은 걸 팔았고, 2층, 3층에서는 한식이나 경양식을 팔았어. 팔각정 같은 느낌이었는데, 창문으로 공원 풍경이 보였으니 분위기 좋았지. 근데 거기서 먹으려면 돈이 좀 있어야 했지. 그래서 연인들이 그냥 도시락을 싸 와서 먹는 경우도 많았어. 문제는 거기서 장사하는 사람들이랑 자주 싸웠다는 거야. 거기 파는 음식 안 사 먹고, 집에서 싸 온 거 먹으면 장사꾼들이 뭐라고 했거든. “여기서 음식 안 사 먹으면 안 됩니다!”. 그래도 뭐, 다들 자리를 잘 찾아서 도시락 까먹고 놀았지.
딸: 한강도 연애 명소였죠?
아빠: 그렇지, 아빠가 많이 간 뚝섬 유원지, 광나루 유원지, 중지도… 중지도는 지금의 ‘노들섬’이야. ‘한강 가운데 있는 섬’이라는 뜻이었어. 한강 곳곳에서 연인들이 한강을 바라보면서 걷고, 보트도 타고, 그랬지. 여름이면 수상식당도 있어서 거기 앉아 맥주도 한잔 하고.
딸: 우와, 좋다. 완전 여름 데이트 코스네.
아빠 : 뚝섬도 마찬가지였어. 여름에는 뚝섬 수영장도 있고, 한강변에 자리 펴고 앉아서 바람 쐬기도 했어. 겨울에도 한강은 데이트 코스였지. 뚝섬에서 스케이트 타고, 얼어붙은 강 위에서 썰매 타고. 그때는 한강이 꽁꽁 얼었거든. 한강 위에서 걸어 다닐 정도였어. 요즘은 기후도 달라졌고, 또 위험하니까 못 하게 하지.
딸 : 와... 옛날 데이트는 진짜 자연친화적이었네요. 근데 아빠, 서울 근교 연애 명소는 어디가 있었어요?
아빠 : 그럼 정말 자연친화적이었지! 연애 명소로는 인천 ‘송도 유원지’가 대표적이었어. 지금 송도 신도시랑은 다르고, 바닷가에 있는 유원지였어. 바닷가에서 산책하고, 보트도 타고, 또 물 빠지면 앞에 작은 섬까지 걸어갈 수도 있었어.
딸 : 오! 낭만적이다.
아빠: 근데 여기에 재밌는 이야기가 있지. 물때 잘못 맞추면 큰일이 나는 거야.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빨리 돌아와야 했어. 늦으면 바짓가랑이 걷고 뛰어나와야 했지.
딸: 음냐음냐…, 일부러 물때 늦게 맞추는 사람들도 있었겠다 ㅎㅎㅎ 그거 완전 옛날식 로맨스잖아요!
아빠: 그렇지. 일부러 시간 잘못 계산하고, “어쩌지? 오늘 못 나가겠네~” 하는 사람들도 있었대. 그 시절엔 그게 또 하나의 연애 기술이었지. 지금처럼 핸드폰도 없고, 카카오택시도 없으니까 다 계획적으로 움직였겠지?
딸: 아빠, 그러면 엄마랑 어디서 데이트했어요? 이쯤 해서 아빠의 연애사도 듣고 싶은데요?
아빠: 엄마랑 기차에서 처음 제대로 얘기했어.
딸: 잠깐만요, 잠깐만요! 정리 좀 해볼게요. 내가 듣기로 엄마가 ‘아빠네 서울집’ 하숙생으로 살았다고 했는데? (아빠네 서울집이 뭐냐고요? 제 아빠의 고향은 전라도 광주고, 6형제 집안이었어요. 할아버지는 아들들이 차례로 서울로 올라와 공부하게 되자 동교동에 집을 한 채 마련하셨는데, 마침 방직공장이 불에 타서 갈 곳이 마땅치 않은 할아버지의 동생가족분들이 살면서 하숙집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그 하숙집에 아들들이 머물 수 있도록 하셨답니다.)
아빠: 응, 방학 때는 기숙사가 문을 닫으니까 엄마도 갈 곳이 필요했지. 그러니까 엄마가 원래는 기숙사에 있었는데, 기숙사가 문을 닫아서 한 달 동안 ‘아빠네 서울집’에서 같이 살았다는 거야. 아빠의 형제들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니 할아버지가 신촌에 집을 마련하셨지. 그때는 신촌 집에서 다 같이 살았어. 우리 형제들도 학교 다니면서 왔다 갔다 했고.
딸: 엄마는 재주도 좋네. 그런 집을 어떻게 찾은 거지? 아무튼, 그럼 엄마가 그 집에 들어왔을 때 분위기 어땠어요? 엄마가 쫌 미인이었잖아, 이대 다니는 여자에 피아노 전공하고… 설렘? 아니면 긴장?
아빠: 그때야 뭐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 다들 좁은 공간에서 사는 게 익숙했으니까.
딸: 에이 아빠, 솔직히 좀 말해봐요. 처음에 엄마 봤을 때 ‘오, 이 처자 좀 괜찮은데?’ 이런 생각 안 했어요?
아빠: 그때는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어. 집안 사정도 그렇고, 학교 다니느라 바쁘고. 그냥 ‘아, 새로운 사람이 왔구나’ 정도였지. 특별한 감정은 없었고. 다시 만난 기차에서? 방학 때 인가? 명절인가? 엄마가 고향으로 내려가는데, 나도 마침 같은 날 내려가고 있었던 거야.
딸: 잠깐만, 그럼 엄마랑 아빠가 같은 기차를 탔다는 거잖아요? 그럼 이거슨… 운…명!!! 아닙니까?! 기차라는 공간에서 우연히 만났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랑 뭐가 달라요? 이야, 운명은 이런 순간에 찾아오는 거구나. 그리고 엄마가 그때 아빠한테 뭔가 특별한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잖아요?
아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건 엄마한테 물어봐야지. ㅎㅎ 그때 ‘태극호’라는 특급열차가 있었어. 서울에서 광주까지 가는 기차인데, 아침 9시에 타면 오후 5시에 도착했지.
딸: 아니, 특급이라면서요? 8시간이나 걸려요? 요즘은 KTX 타면 두 시간 반이면 가는데…
아빠: 그때는 그게 제일 빠른 기차였어. 완행열차는 더 오래 걸렸고. 그때는 아직 고속버스도 없었고, 기차가 유일한 장거리 이동 수단이었어.
딸: 그래서! 엄마랑 기차에서 어떻게 만났냐고요? 내가 들으니깐 아빠가 식당칸에 가서 콜라를 사줬다던데?
아빠: 몰라 ㅎㅎ, 콜라인지 뭔지 기억도 안 나, 그럴 수도 있지. 식당 칸이 어떻게 돼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말하자면, 이 아빠가 똥폼을 잡고 데이트 신청을 한 거지.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때 아빠가 나름 세련된 데이트 신청을 한 거 아니겠냐?
딸: 똥폼을 잡고 데이트 신청을~ 캬~ 그것이 제가 태어나게 된 역사의 시작이구만요!!! 그러고 나서 어떻게 됐어요? 엄마가 음악선생님 시절에 학교로 무지하게 편지를 보내었다던데? 엄마가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까 봐 열심히 편지 쓴 거죠?
아빠: 뭐, 그런 것도 없진 않았겠지? 고무신 거꾸로 신고 그런 거 많이 있었잖아. 아빠가 군바리인데 열심히 편지 쓰는 거라도 해야지 않았겠냐? 하하하! 그래도 그 시절에는 기다리는 게 당연했어. 요즘처럼 핸드폰도 없고, 카톡도 없고. 정 급하면 전보를 쳤지.
딸: 전보요?
아빠: 전보라는 건 급할 때 빠르게 보내는 연락 수단이었어. 요즘이야 카톡이나 문자 한 줄이면 바로 전달되지만, 옛날에는 그런 게 없었으니까. 그래서 중요한 소식이 있을 때는 전보를 보냈지. 예를 들면 “도착 3시 광주역” 이런 식으로 짧게 보냈지.
딸: 뭔가… 카톡의 원조 느낌인데요?
아빠: 비슷하지.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전보는 직접 우체국에 가서 보내야 했다는 거야. 우체국에 가면 전신 전화국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 전보 신청을 하면 모스 부호 같은 걸로 신호를 보내서 전달했어.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빨랐어. 서울에서 광주로 전보를 보내면 보통 3시간 정도면 도착했거든. 하지만 글자 제한이 있었어. 15자인가?... 이렇게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글자가 정해져 있어서 길게 쓰면 돈이 많이 나갔어. 그래서 전보에는 꼭 필요한 단어만 넣어서 보냈어.
딸: 와, 진짜 아날로그다. 그럼 아빠도 전보 많이 보냈어요?
아빠: 그럼. 특히 대학교 때는 급할 때 많이 썼지. 돈이 떨어졌는데 빨리 받아야 한다거나, 중요한 연락이 있을 때. 그때는 그게 최고로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었으니까. 전화가 있는 집도 드물었고, 시외 전화는 특히 더 어려웠어. 시외 전화 한 번 하려면 우체국에 가서 신청을 해야 했어. 우체국에 가서 “광주 서석동 집으로 전화 연결해 주세요” 하면, 직원이 전화를 연결해 줬어. 그리고 기다리면 “박옥수 씨, 3번 부스로 가세요” 이렇게 불러줬지.
딸: 우와, 완전 옛날식 예약 시스템이네. 그럼 전화 연결되면 막 요금 엄청 비쌌겠죠? “밥 먹었어?” 이런 거 금지였겠는데요?
아빠: 당연하지. 그래서 다들 짧고 간결하게 말했어. 쓸데없는 말 하면 요금 폭탄 맞으니까. 그 시대의 기술이 다르고 사용하는 방식만 다를 뿐, 결국 사람들은 옛날부터 같은 방식으로 소통해 왔던 거야. 옛날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으니까 더 애틋했을지도 모르지… 옛날에는 전보, 텔렉스, 공용 시외 전화, 손 편지로 연애도 하고, 일도 하고, 돈도 보냈다! 지금은 다 스마트폰으로 해결하지만, 그때만의 낭만도 있었단다. 근데 지금 그렇게 했다간 아무것도 안될 것 같다. 우리가 이미 지금의 속도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 아니겠냐. 하지만, 가끔은 아날로그 감성도 그립긴 해.
딸: 그럼 저도 한 번 전보 체험해 볼까요? “아빠, 용돈 보내주세요. 네?” ㅎㅎㅎ 암튼… 그러고 나서 군대 갔다 와서 결혼한 건가요?
아빠: 응. 3년 군복무를 마친 때가… 74년 7월에 제대하고, 75년 5월에 결혼했지.
딸: 결론! 그때 아빠가 엄마한테 똥폼 잡고 콜라를 안 사줬으면… 나는 없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