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 날리는 무아지경 땐스땐스
딸: 이 사진, 여기서 사람들이 길바닥에서 춤을 추고 있네요? 대낮에 왜 춤을 추는 거죠?
아빠: 이게 창경원에서 열린 춤판이야. 일제강점기 때 창경궁을 동물원과 유원지로 바꿔놓으면서, 사람들이 여기서 놀게 됐거든. 벚꽃이 만개하는 봄이면 엄청난 인파가 몰렸어. 벚꽃 아래서 젊은이들이 휴대용 전축을 틀어놓고 트위스트 춤을 췄지.
딸: 트위스트? 디스코 같은 건가요?
아빠: 디스코보다 조금 더 옛날 춤이지. 허리를 돌리고 손을 흔들면서 추는 춤이야. 그때는 이런 야외 춤판이 유행이었어. 지금 클럽이나 페스티벌 같은 느낌이랄까?
딸: 분위기는 완전 나이트클럽 같은데 대낮에 벚꽃 아래에서 춤추고 노는 거라니, 웃기기도 하고 진짜 낭만적이네요. 음악도 별로 크지 않을 것 같은데, 정말 무아지경으로 춤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정지된 사진이지만 먼가 어깨가 들썩들썩하는 느낌적 느낌이 느껴지는군요 ㅎㅎㅎ! 근데 지금 창경궁에 동물원도 없고, 그런 춤판도 다 없어진 거 아닌가요?
아빠: 맞아. 창경궁을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면서 동물원과 유원지 시설을 없앴어. 벚꽃도 다 베어내고 대신 소나무를 심었고. 옛날에 비해 한산하지만, 역사적인 의미를 되찾은 셈이지.
딸: 진짜 사진 속 창경원은 지금과 많이 다르네요. 여기는 놀이공원처럼 보인다.
아빠: 맞아. 원래 창경궁이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궁궐의 역사적 의미를 없애려고 유원지로 바꿔버렸지. 동물원을 만들고 벚꽃을 심고, 사람들이 놀러 와서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어.
딸: 궁궐이 유원지가 됐다니, 좀 이상하긴 하네요. 그럼 원래는 왕이 살던 곳이었던 거자나요?
아빠: 그렇지. 원래 창경궁은 조선 시대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궁궐 중 하나였어. 그런데 일제는 우리 전통을 지우기 위해 이곳을 동물원과 놀이공원으로 만들었어. 심지어 창경원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면서 궁궐이라는 정체성도 흐리게 했지.
딸: 벚꽃이 예쁘긴 하지만, 그게 궁궐을 없애기 위한 의도였다니 좀 씁쓸하네요.
아빠: 맞아. 당시 일본은 자신들의 문화와 정서를 한국에 심으려고 했어. 벚꽃을 심은 것도 그런 이유였고. 해방 후에도 한동안 창경원이라는 이름이 유지됐는데, 결국 1980년대에 다시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되찾았어. 동물원도 이전하고 궁궐 복원 작업이 진행됐고.
딸: 그럼 아빠는 창경원일때 가본 적 있어요?
아빠: 물론이지. 봄이면 온 가족이 창경원으로 소풍을 갔어. 특히 밤 벚꽃놀이가 아주 유명했지. 낮에는 동물도 보고, 유원지처럼 여기저기 다니며 놀았고. 지금 생각하면 궁궐에서 그런 놀이를 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당시엔 즐거웠어.
딸: 이 사진 좀 봐봐... 사람들이 깨알같이 가득차 있네! 창경원에서 배도 타고 했던 거예요?
아빠: 그렇지. 춘당지라고, 창경궁 안에 있는 연못 위로 케이블카가 다녔고, 보트를 탈 수도 있었어. 지금처럼 조용한 연못이 아니라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이었지.
딸: 연못 위로 케이블카가 다녔다고요? 그건 정말 상상도 못 하겠는데. 몇 명이나 탈 수 있었어요?
아빠: 네 명이 탔지. 그게 연못 위를 가로지르면서 운행됐어. 사람들이 연못을 내려다보면서 창경궁을 색다르게 구경하는 거였지. 그러니까 완전한 유원지였지. 놀이기구도 있었어. 그때는 놀이기구를 흔히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거든. 창경궁 안에는 관람차도 있었고, 작은 비행기 놀이기구도 있었어. 그리고 창경궁 하면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게 벚꽃이야. 봄이 되면 벚꽃이 활짝 피는데, 그때는 야간 개장도 했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사람들이 몰려들었어. 그래서 밤에도 개장을 했던 거야. 서울에서 벚꽃놀이 하면 창경궁이 필수 코스였지. 지금처럼 한강이나 여의도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딸: 아빠가 찍은 옛날 사진을 보면, 정말 분위기가 지금이랑 많이 다르네요. 옛날엔 궁궐에서도 그렇게 자유로운 공간이 있었구나.
아빠: 그렇지. 창경궁에는 유원지뿐만 아니라 작은 공연장도 있었어. 예전엔 남산에도 야외음악당이 있었는데, 창경궁에도 비슷한 곳이 있었어. 일요일마다 해군군악대 같은 곳에서 시민위안공연을 했어.
딸: 그럼 창경궁이 단순히 궁궐이 아니라, 문화와 놀이가 함께 있는 공간이었네요.
아빠: 맞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시설들은 하나둘씩 사라졌어. 동물원도 없어지고, 놀이시설도 철거됐고. 지금은 궁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지.
딸: 조금 아쉽기도 하네요. 물론 지금의 창경궁도 멋있지만요.
아빠: 맞아. 그 시절의 창경궁은 문화재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이야.
딸: 그 시절 창경원을 경험해보지 못한 게 아쉽다. 아빠 덕분에 그때의 창경원이 얼마나 흥미로운 곳이었는지 알게 됐어요.
아빠: 옛날 사진들을 보면 그 시절이 조금은 보일 거야. 그때의 창경궁은 정말 특별했거든. 그 시절에는 놀러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보니까 휴일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서 종로 5가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이 미어 터졌지. 약간 지금의 홍대나 성수동 같은 느낌이랄까? 아니다. 지금 그런 곳들은 비교도 안되게 사람이 많았지. 왜냐하면 그때는 서울 사람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많이 왔거든. 그때는 서울로 학생들이 유학을 많이 왔자나. 그러면 유학 온 자식들이 어디에 살겠니? 좋은데가 기숙사일테고, 사촌의 집에 얹혀 살거나 하숙, 자취를 하는건데, 갈데가 없는거지. 사람들이 모여서 갈만한 곳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야. 그래서 창경원이 좋은 놀이터였던 거지. 뱃놀이도 하고 밤벚꽃 구경도 하고. 야사쿠라라고 했어 밤 야(夜)자에 사쿠라를 더해서… 밤에 벚꽃 아래서 손을 잡고 걸으면 을마나 낭만적이었겠냐. 요즘처럼 카페에서 데이트하는 게 아니라, 벚꽃 아래서 같이 걷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애를 했지. 창경원의 벚꽃은 정말 장관이었어. 특히 밤이 되면 조명을 밝혀서 환상적인 분위기가 됐지. 사람들은 돗자리를 펴고, 휴대용 전축을 틀어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기도 했어. 트위스트 같은 춤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젊은이들이 모여서 춤판을 벌이기도 했고. 지금 생각하면 궁궐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지?
딸: 엄청 신기해요. 근데 아빠, 창경궁이 창경원이었다가 다시 창경궁이 된 건 언제예요?
아빠: 1983년부터 복원 작업을 시작했어. 동물원과 식물원을 서울대공원으로 이전하고, 창경궁이라는 원래 이름을 되찾았지. 동물들이 떠난 후에는 조선 시대 궁궐의 모습을 복원하려고 했고, 궁궐의 의미를 되살리는 작업이 계속됐어.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들었던 게 원래부터 잘못된 일이었으니까, 그걸 바로잡은 거야. 창경궁은 원래 조선 시대 왕실의 생활공간이잖니.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바뀌면서 궁궐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지. 그놈들이 궁을 놀이공원으로 만들어 버린 거야. 동물원을 만들고, 놀이시설을 설치하고, 심지어 벚꽃나무까지 심었지. 벚꽃이야 지금 보면 예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애초에 창경궁의 원래 모습이 아니었어. 일제가 자기들식으로 조선을 ‘문명화’한다고 하면서 궁궐을 유원지로 만들어 버린 거지. 그러다 보니 봄만 되면 창경원에 벚꽃 보러 오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 한밤중에 가로등 불빛 아래서 벚꽃 구경하는 게 유행이었지.
그런데 해방이 되고 나서도 한동안 창경원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썼어. 원래 궁궐이었던 곳을 놀이공원처럼 남겨둔 거야. 그러다가 1983년에야 다시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되찾았지. 일본의 흔적을 없애려고 벚꽃나무를 다 뽑고, 궁궐을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려고 했어. 지금 창경궁에 가보면 벚꽃 대신 소나무들이 가득하지? 그게 그때부터 시작된 거야. 1986년 8월에 옛 모습대로 회복하여 1986년 8월에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지. 이건 창경궁만의 일이 아니야. 경복궁도 마찬가지였어. 원래 경복궁에는 중앙청이라는 건물이 있었는데, 이게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청사로 쓰였던 곳이야.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그대로 쓰다가, 1970년대에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활용됐어. 그러다가 김영삼 정부 때 완전히 철거를 해 버렸지. 그게 1995년이야. 중앙청을 폭파해서 없애 버리고, 경복궁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된 거야. 그러니까 창경궁이나 경복궁이나 다 마찬가지야. 일제의 흔적을 지우고, 원래의 궁궐을 되찾기 위한 과정이 있었던 거지. 중앙청이 철거되면서 그 유물들은 독립기념관에 보관됐어. 건물 자체는 사라졌지만, 그 역사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거야. 이런 걸 보면 역사는 단순히 건물 하나를 남기고 없애는 문제가 아니야. 우리가 그 시절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리고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남길 것이냐가 중요한 거지. 창경궁은 단순한 궁궐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야. 그걸 알고 가면, 지금 우리가 보는 창경궁이 또 다르게 보일 거야.
딸: 와~ 설민석 썜 너투브 보는 줄~ 그런 걸 어떻게 다 기억하는 거예요? 이제 보니 우리 아빠가 사진작가가 아니고 역사 선생님인가봐! 근데 아빠처럼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창경궁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창경원이 주는 정서적 추억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금보다 그때가 더 친근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궁궐을 되찾은 게 맞는 일이야. 역사는 기억해야 하니까.
딸: 그렇겠네요. 아빠 사진을 보면서 옛 추억에 잠기는 사람들도 있겠어요. 근데 그때도 사진 많이 찍었어요?
아빠: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없었으니까 사진을 쉽게 찍진 못했지. 하지만 중요한 순간을 남기려고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어. 벚꽃 아래에서 찍은 사진은 정말 소중한 기억이었지.
딸: 그때 창경원에서 놀았던 사람들에겐 그 시절이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아빠: 맞아. 그래서 역사를 바라볼 때 중요한 게 균형이야. 창경원이 된 건 일제의 의도였지만, 거기서 보낸 사람들의 추억은 소중한 것이지. 하지만 궁궐의 원래 의미를 되찾는 것도 중요했어. 역사는 단순히 좋고 나쁘고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야. 다만, 우리가 그 변화를 기억하고 배우는 게 중요하지.
딸: 아빠가 말하는 걸 들으니까, 서울이 진짜 많이 변했구나 싶어요. 그리고 우리가 사는 도시의 모습도 결국 시대와 문화에 따라 계속 바뀌는 거고.
아빠: 그렇지. 도시의 변화 속에는 사람들의 삶과 기억이 쌓여 있지. 그리고 언젠가 지금의 서울도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할 거야. 중요한 건 그 변화를 이해하고 기록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