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드라마, 인생택시, 길 위의 사람들
딸: 와… 이 옛날 버스 좀 봐! 문에 서있는 분은 ‘오라이~오라이~’ 하는 안내원이죠?
아빠: 맞아. 버스 차장이라는 사람이야. 요금을 받고, 사람들을 안으로 밀어 넣었어. 동전 가득 든 전대를 차고, 손으로 표를 찢어 줬지. 요금도 종이 표를 찢어 내는 방식이었고.
딸: 표를 찢는다고요? 요즘은 다 카드 찍고 타는데, 그때는 완전 아날로그였구나.
아빠: 그럼 사람이 많을 때는 이 차장들이 아주 요령 것 사람들을 태우기도 했어. 콩나물시루처럼 사람이 가득한데도 어찌나 질서 정연해지는지… 다 경험에서 나온 질서지. 이게 재미있는 것이 뭐냐면 버스 차장이 버스를 탕탕하고 두드리면 출발하는데 문을 닫았다 하면 버스운전사가 차를 휘익~돌려. 원심력을 이용하는 거지! 이렇게 한 바탕 이제 요동을 쳐 그러면 사람들이 밀리면서 이렇게 정리가 돼. 이 움직임으로 인해서 억지로 사람들이 서로 조금씩 자리를 양보하게 되면서 공간을 만들어 갔어. 요즘처럼 차선이 넓거나 환승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정말로 버스가 생명줄 같은 존재였어. 출퇴근 시간에는 사람들이 문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가득 탔고, 심지어 차장이 손으로 밀어 넣기도 했어.
딸: 지하철에 예전에 있었던 푸시맨(pushman) 같은 거네요.
아빠: 그렇지. 그리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일반 시내버스랑 좌석버스가 따로 있었어. 좌석버스는 요금이 더 비싸지만 앉아서 갈 수 있었고, 일반 시내버스는 서서 가는 게 기본이었지. 요금이 싼 대신 출퇴근길에는 꽉 찼고. 사람들은 출근할 때마다 그야말로 완전 전쟁이었지. 그래서 합승 택시가 유행했어. 요즘은 모든 것이 다 그런데, 버스도 타보면 낮에도 사람들이 많잖아. 지하철도 낮에도 사람이 많고… 그런데 옛날에는 낮에 움직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 출퇴근 시간에만 바글바글한 거야 그러니까 사람들이 택시를 혼자 타기보다는 같은 방향으로 가는 승객끼리 함께 타고 갔어. 기사들은 목적지별로 손님을 모아서 가곤 했지.
딸: 택시 합승이라니, 불편할 것 같은데요?
아빠: 지금처럼 개별 승차 개념이 아니라, 대중교통과 택시의 중간 단계 같은 느낌이었어. 내가 신촌 로터리에서 택시 잡고 "종로 3가 가자" 하면, 택시 기사는 자기만의 코스가 있었어. 지금처럼 네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사마다 선호하는 경로가 있었지. 그리고 길가에 보면, 택시 타려고 손 드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었어. 그러면 기사가 "손님, 같은 방향인데 한 명 더 태워도 될까요?" 꼭 물어봤지.
딸: 그럼 먼저 탄 사람은 뭐라고 해요?
아빠: 뭐, 싫다고 못 하지. 요금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지만 다들 그러고 살았으니까 그냥 그러라고 했던 거야. 합승이 너무 당연한 시절이었거든. 그렇게 합승이 일상화돼 있던 시절이었지.
딸: 그럼 기사님들은 같은 방향이면 최대한 많이 태우려고 했겠네요?
아빠: 그렇지. 기사들은 그냥 목적지로 가는 게 아니라, 길 따라 천천히 가면서 더 태울 수 있는 손님을 찾았어. 한 명이라도 더 태우면 그만큼 수입이 늘어나니까. 그때 택시 기사들은 월급쟁이가 아니었어. 사납금이라고, 하루에 일정 금액을 회사에 내야 했거든. 예를 들어 하루 사납금이 10만 원이면, 기사들은 그 이상을 벌어야 자기 수입이 되는 거야.
딸: 헐, 만약 10만 원 못 벌면?
아빠: 그럼 자기 돈에서 채워야 했지. 그러니까 기사들은 어떻게든 손님을 많이 태우려고 했던 거야. 요령껏 운전해서 수익을 늘려야 했으니까. 그래서 합승 문화가 자연스럽게 생긴 거야. 요즘이야 택시 합승하면 이상하게 보지만, 그땐 다 그렇게 탔어. 그때는 오히려 안 태우면 손해였어. 심지어 어떤 지역은 특정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계속 같은 택시가 왔다 갔다 하면서 합승 손님을 태우기도 했다고.
딸: 와, 지금이랑 완전 다르네요. 요즘은 합승하면 신고당할 텐데…
아빠: 그렇지. 시대가 바뀌면서 다 사라진 문화야. 하지만 그때는 다들 그렇게 사니까 불편하다고도 생각 안 했지. 그냥 당연했던 거야.
딸: 근데 지금은 왜 택시 합승이 없어졌을까요?
아빠: 불편하기도 했고, 범죄 위험도 있었거든. 그리고 80년대 후반부터 개인 승차 개념이 자리 잡으면서 사라졌어. 지금은 앱으로 택시를 부르는 시대잖아. 하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어. 그리고 이 사진 속 보이는 게 시발택시야.
딸: 으응? 집차같이 생긴 이거가 시발택시라고요? 근데 시발택시라니… 욕 같아 ㅋㅋㅋ
아빠: 한국 최초의 국산 자동차야. 1955년에 미군이 쓰던 군용차를 개조해서 만든 차인데, '시작할 시(始), 발걸음 발(發)'을 따서 ‘시발(始發) 자동차’, ‘시발택시’라고 했어. 지금 들으면 좀 웃긴 느낌이 들지? 그래도 이게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시작을 알린 차였다고. 당시에는 개인이 차를 사는 게 거의 불가능했으니까, 시발 자동차는 주로 택시로 많이 굴렸어. 그러다 보니 '시발택시'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졌지. 명동이나 충무로 같은 번화가에서는 이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었어.
딸: 근데 미군 차를 개조했다는 건 뭐예요? 원래는 군용차였나요?
아빠: 맞아. 미군이 사용하던 지프차(Jeep) 나 트럭 같은 차량들을 폐기할 때, 우리나라에서 그걸 사서 개조했어. 일종의 재활용이지. 폐기된 군용차의 엔진과 차체를 모아서 조립하고, 드럼통을 두드려서 차를 만들었어.
딸: 오, 진짜 장인 정신쩐다.
아빠: 그때는 차가 귀했으니까, 그렇지.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야. 시발택시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자동차 산업도 없었을 거야. 그리고 새나라택시도 이야기 안 할 수 없지. 새나라택시는 일본에서 완제품으로 수입된 택시였어. 300대 정도만 들어왔는데, 이후에 우리나라 신진자동차에서 조립을 시작했어. 신진자동차가 지금의 대우의 전신이야.
딸: 대우...? 그게 뭐더라? 회사 이름이죠? 근데 택시가 그렇게 적었어요?
아빠: 맞아. 한때 세계 무역을 주름잡던 한국 대기업이었지. 70년대 초반만 해도 택시가 그렇게 많지 않았어. 다들 걸어 다니는 게 당연했지. 한 정거장 거리도 그냥 걸었고, 20분 정도 걷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지금은 한 정거장 거리도 다들 버스나 지하철 타는데 그때는 걸어 다니는 것 자체가 생활이었지.
딸: 그렇구나. 그때는 지하철도 없었을 거 같은데, 멀리서 출근하려면 정말 힘들었겠는걸요?
아빠: 맞아. 특히나, 한강을 건너려면 다리가 몇 개 없어서 항상 정체였지. 제1한강교(지금의 한강대교)와 제2한강교(양화대교) 정도만 있었으니까, 버스도 택시도 오랜 시간을 걸려 이동했어 내가 현대자동차 다닐 때 위에 있던 선배가 잠실 아파트에 살았는데, 출근이 너무 힘들어서 아예 광화문에 먼저 와서 아침을 먹고 회사로 갔어. 그때는 강남이 허허벌판 시골 같아서 늘 출근시간 1시간 전에 일찍 와 있었어.
딸: 헐… 출근 때문에 그렇게까지 했다고요? 그럼 예전에 강남이 개발되기 전에는 사람들이 어디서 살았어요?
아빠: 원래 강남이라는 말도 없었어. 영등포 쪽이 서울의 중심이었고, 강남은 그냥 허허벌판이었지. 그러다 한강 다리가 하나둘씩 놓이면서 강남 개발이 시작됐고, 잠실 같은 곳에는 신도시처럼 아파트가 지어졌어. 근데 처음엔 다들 강남으로 이사 가길 꺼렸지. 강남이 서울의 중심이 된 건 비교적 최근 일이야. 예전에는 버스나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강남에서 출퇴근하는 게 엄청 힘들었거든. 버스를 한 번 놓치면 다음 차를 한참 기다려야 했고, 겨우 타도 자리 없이 꽉 찬 상태였어. 그때는 지금처럼 배차 간격이 촘촘하지도 않았고, 승객들이 줄을 길게 서서 기다려야 했거든. 근데 그땐 버스 몇 대로 수많은 출근길 사람들을 감당해야 했어. 선배가 사는 잠실 아파트 단지에서 버스를 타려면 한참 줄을 서야 했고, 겨우 타더라도 서서 오는 게 기본이었지. 차 안이 꽉 차면, 문이 안 닫힐 정도였어.
딸: 그래서 아예 일찍 나와서 광화문에서 아침을 먹은 거군요?
아빠: 응, 그게 최선이었어. 아침밥도 집에서 먹기보다는, 회사 근처에서 여유롭게 먹고 출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거지. 요즘처럼 카페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 마시는 것도 아니고, 그냥 김밥이나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어.
딸: 요즘은 얼죽아인데… ㅋㅋ 뭔가 고생은 많았겠지만, 그 나름의 출근 루틴이 있었네요.
아빠: 맞아.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지금보다는 아침 시간을 더 여유롭게 보냈던 것 같아.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끼리 인사도 하고, 같은 정류장에서 자주 보는 얼굴들끼리 묘한 동질감도 있었고.
딸: 듣고 보니, 단순히 편리한 게 다 좋은 건 아닌 것 같네요. 예전처럼 느리지만 정이 있는 출근길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빠: 맞아. 세상은 계속 변하고, 교통도 더 빨라지고 있지만, 결국 우리가 어떤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지가 중요한 거야. 바쁘더라도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면, 출근길도 그저 지루한 시간이 아니라 하루를 여는 작은 의식이 될 수 있지. 게다가 요즘처럼 헬스장 가서 러닝머신 뛸 필요가 없었어. 그냥 출퇴근하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됐거든. 그리고 친구들이랑 걸으면서 얘기하다 보면 그 거리도 금방이었어. 요즘은 다들 버스에서 핸드폰만 보잖아. 근데 그땐 다 같이 힘드니까, 자연스럽게 대화도 많이 했어. 옆 사람과 하루 일과를 나누고, 어쩌다 버스에서 만난 사람과 친해져서 친구가 되기도 했고. 심지어 같은 정류장에서 자주 만나다가 결혼한 사람들도 있어.
딸: 우와, 그건 좀 낭만적이다. 럭키비키한 멜로무비자나~
아빠: 그렇지? 불편했지만, 사람과 사람이 더 가까웠어. 아침에 길을 걸으면 동네 어르신들과 인사도 하고, 버스에서 모르는 사람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요즘은 다들 바빠서 그런 게 많이 사라졌지.
딸: 맞아… 우리 세대는 그런 경험을 잘 못 해요. 길에서 모르는 사람이 말 걸면 도망가야 해요.
아빠: 그래서 난 요즘이 편리하긴 해도,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어. 예전에는 걸으면서도 주변을 보고, 이웃들과 인사도 했는데, 요즘은 다들 목적지만 보고 가는 느낌이야.
딸: 그러게… 불편한 출근길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 사이의 작은 연결과 여유가 있었네요. 아빠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니까, 이 사진이 그냥 옛날 흑백사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순간’처럼 느껴져요.
아빠: 그렇지? 사진이란 게 그냥 찍은 장면이 아니라, 그 시절의 감정까지 담고 있거든. 너처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진은 언제든 말을 걸어올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