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옛날엔 여기가 핫플?!

구경거리가 귀하던 시절

by Sylvia 실비아

딸: 아빠, 이 사진 좀 설명해줘 봐요. 사람들이 엄청 몰려 있는데, 도대체 뭐 보는 거예요?


아빠: 이거? 어린이날 행사 사진이야. 그 시절엔 이런 공식 행사나 퍼레이드가 가장 큰 볼거리였거든.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TV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으니까, 사람들이 직접 나가서 구경하는 게 당연했어.


딸: 그러니까 어린이날에 퍼레이드 같은 걸 실제로 보려고 사람들이 저렇게 모였다고요?


아빠: 그렇지. 어린이날 행사뿐만 아니라, 전국체육대회, 연고전 같은 스포츠 이벤트도 인기 있었어.

19740928-8021-연고전뒷풀이.JPG 1974년 연고전 뒤풀이 - 사진 박옥수

딸: 연고전? 고연전? 유튜브에서 많이 봤는데… 응원전이 더 재밌는데 말이죠… 아빠 내가 아사달(홍대 응원단)이어서 내가 쫌 알죠~ 근데 그게 그때도 있었어요?


아빠: 알쥐알쥐. 우리 딸이 응원 간다고 그 짧은 똥꼬치마 입고 돌아다니는 꼴을 보느라 아주 힘들었지. 하하… 그래 연고전, 고연전 그게 그때도 있었단다. 매년 하던 라이벌전이지. 서울운동장에서 열리면, 경기 끝나고 이긴 팀은 종로로 행진하고, 진 팀은 을지로로 빠졌어. 근데 결국엔 시청 앞에서 다 만나서 난리법석이었지. 연고전은 단순한 응원전이 아니라, 서울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축제였다고 보면 돼. 사진처럼 경찰도 대거 투입돼서 질서 유지해야 했을 정도였으니까... 이처럼 예전에는 구경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정부가 주최하는 행사들도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어. 예를 들면 어린이날 같은 경우, 정부에서 엄청난 규모로 행사를 열었지. 문교부에서 기획하고, 신문 기자들까지 다 동원돼서 보도했어.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알아?


딸: 뭔데요?


아빠: 어린이날에는 신문도 안 나왔어. 기자들도 공식적으로 쉬는 날이었거든.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 시절에는 어린이날이 그만큼 중요한 행사였던 거야. 어린이날은 나라에서 엄청 크게 챙겼어. 효창운동장, 동대문 서울운동장 같은 곳에서 대형 행사가 열리고, 놀이기구도 설치하고, 선물도 주고 그랬지. 그날만큼은 진짜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어. 신문도 쉬고, 기자들도 다 놀았으니까! 그때는 신문이 조석 간이었거든. 하루 두 번 나왔는데, 어린이날엔 신문을 안 냈어. 대신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를 했으니까. 그 시절엔 구경거리가 많지 않았으니까, 이런 날이면 온 가족이 총출동했지. 너는 어린이날 하면 뭐가 떠오르냐? 놀이공원? 선물? 그런데 예전에는 어린이날이 진짜 ‘큰 행사’였어. 그냥 하루 쉬는 날이 아니라, 온 가족이 나서서 함께 구경하는 날이었다니까.


딸: 그런가? 내 기억에 어린이날에는 도시락 싸서 아빠 엄마랑 놀이공원 같은 데 갔던 거 같은데요?


아빠: 놀이공원? 그때는 놀이공원 같은 데 가는 게 아니라, 서울운동장이나 효창운동장 같은 큰 경기장에서 어린이날 행사가 열렸어. 처음에는 효창운동장에서 하다가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동대문 서울운동장으로 옮겨졌지.


딸: 운동장에서 무슨 행사를 했는데요?

19700505-7439-어린이날-서울운동장.JPG 1970년 어린이날 서울운동장 - 사진 박옥수

아빠: 구경할 거리가 어마어마했지. 지금 생각하면 완전 서커스야. 특전사들이 하늘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데, 발뒤꿈치에 연막탄을 장착하고 연기를 뿜으면서 내려왔어. 파란 하늘에 오색 연기가 펼쳐지면서, 밑에서는 "와~" 하고 환호성이 터졌지.


딸: 우와, 멋있었겠다.

19700505-7426-어린이날-서울운동장.JPG 1970년 어린이날 서울운동장 - 사진 박옥수

아빠: 그뿐인 줄 아냐? 경찰 사이드카 부대가 등장해서 운동장 트랙을 따라 정확하게 정렬해서 지나가고, 그중에서도 몇몇은 묘기를 보여줬어. 자전거 묘기처럼 오토바이를 한 손으로만 잡고 타거나, 동그란 링에 불을 붙여놓고 그걸 통과하는 퍼포먼스도 했지.

19700505-7423-어린이날-서울운동장.JPG 1970년 어린이날 서울운동장 - 사진 박옥수

딸: 헐, 영화 스턴트맨들이 하는 것이네요.

아빠: 그렇지! 그리고 운동화 회사들이 자기들 브랜드 홍보도 엄청 열심히 했어. 지금 석가탄신일 봉축행렬처럼, 운동화 모양을 크게 만들어서 행진을 했어. "아폴로 운동화" 같은 브랜드는 커다란 운동화 모형을 앞세우고, 사람들이 깃발 흔들면서 걸어갔지.

딸: 아폴로운동화? 푸핫! 암튼 그건 완전 브랜드 홍보 전인데요?

19700505-7443-어린이날-서울운동장.JPG
19700505-7445-어린이날-서울운동장.JPG
1970년 어린이날 서울운동장 - 사진 박옥수

아빠: 맞아. 어린이날이 단순한 놀이 행사가 아니라 기업들도 홍보할 수 있는 자리였거든. 그래서 각 회사들이 자기 제품을 보여줄 수 있도록 행렬을 만들었어. 거기에 각 대학 체육대 학생들이 철봉 같은 체조 장비를 세워서 공중제비 돌고, 단체 기계체조도 선보였지.


딸: 그럼 행사가 몇 시간씩 이어졌겠네요?


아빠: 최소 두 시간은 했지. 행사 초반에는 이런 퍼포먼스들이 펼쳐지고, 중간에는 공식 행사로 넘어갔어.

딸: 공식 행사는 뭘 했어요?


아빠: ‘착한 어린이 상’ 같은 표창을 주는 시간이 있었어. 학교에서 추천을 받아서 모범 어린이들에게 상을 주는 거지. 도지사나 교육감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직접 상을 주기도 했고.


딸: 부모님들도 다 따라왔겠네요. ‘착한 어린이 상’ ㅋㅋㅋ 제이미맘이라면 법조인(?) 모멘트 발굴로 딱인데요? (이수지 님의 대치동 엄마 버전)


아빠: 당연하지. 어린이날은 온 가족이 함께하는 날이었으니까. 지금처럼 개인적으로 놀이공원 가는 게 아니라, 운동장에 모여서 다 같이 행사를 즐겼어. 도시락도 싸 오고, 돗자리 깔고 앉아서 공연 보고 그냥 어린이를 위한 날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하는 날이었어. 요즘처럼 놀이공원 가고 선물만 받는 날이 아니라, 모두가 모여서 같은 걸 보고, 같은 순간을 즐겼던 날이었지.


딸: 와, 진짜 대단했네요.


아빠: 효창운동장이나 동대문 서울운동장에서 주로 개최했어. 특히 동대문 운동장은 전국 체전 같은 큰 행사들도 열리는 곳이라 사람들한테 친숙한 장소였지.


딸: 전국 체전?

196510-000019-제46회전국체육대회 광주.JPG
196510-000018-제46회전국체육대회 광주.JPG
1965년 제46회 전국체육대회 광주 - 사진 박옥수

아빠: 지금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핫하지만, 그때는 전국 체전이 그런 역할을 했어. 전국 체육대회는 지금의 올림픽 못지않은 열기가 있었어. 개최 도시가 돌아가면서 바뀌었는데, 체전이 열리는 도시들은 완전 축제 분위기였어. 경기장도 짓고, 도로도 정비하고, 숙소 문제도 해결해야 하니까 도시 전체가 변하는 계기가 됐지. 선수단과 관계자들이 민박도 많이 했어. 아빠 집도 전국 체전 때 전라북도 선수단 본부로 지정돼서 선수들을 재운 적이 있었어. 동네마다 몇 명을 수용할 수 있는지 조사하고, 배정을 했었지.


딸: 대박… 완전 마을 사람들이 총출동하는 느낌이네. 호텔에서 자면 안 되나요?


아빠: ㅎㅎㅎ. 요즘은 호텔에서 다 해결하지만, 그땐 체전이 열리는 지역에서는 모든 숙박 시설이 꽉 차고 호텔이 다 수용할 수가 없었지. 그래서 집을 내주는 게 당연한 일이었어. 그리고 체전이 끝나면 그 도시가 한 단계 발전했지. 올림픽처럼 말이야.


딸: 선수들이 일반 가정집에서 묵었다고요? 신기하다!


아빠: 맞아. 지방에서 개최될 때면 그 지역 주민들이 선수단을 위해 집을 내줬어.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그 도시에 대한 애정도 커졌겠지? 개막식도 엄청 화려했어. 도시마다 특색 있는 행사도 열리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니까 정말 큰 이벤트였어. 게다가 그 시절에는 사관학교 체육대회도 엄청났어. 육군, 해군, 공군 사관학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치열하게 경쟁했거든. 지금은 이런 행사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나라 전체가 이런 스포츠 이벤트에 열광했었어.


딸: 확실히 지금이랑 다르네요. 지금은 다들 개취(개인 취향)대로 놀잖아요. 예전에는 온 나라가 하나의 이벤트에 다 같이 몰입했던 느낌이에요.

196910-1140-제50회전국체전.JPG
196910-1145-제50회전국체전.JPG
1969년 제50회 전국체육대회 광주 - 사진 박옥수

아빠: 맞아. 그리고 박정희 시대에는 '군관민'이라는 표현이 있었어. 군대, 관공서, 민간이 하나가 돼서 움직이는 구조였지. 하지만 나중에는 '민관군'으로 바뀌었어. 사람 중심으로 바뀌는 과정이었던 거지. 말하자면 시민들을 위한 정책과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던 거야. 예전에는 모든 결정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어. 나라를 운영하는 방식 자체가 군대식이었고, 조직적인 움직임이 우선시됐지. 하지만 점점 경제가 발전하고,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사람 중심’으로 바뀌게 된 거야. 정책을 만들 때도 국가가 주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민의 생활과 요구를 고려하기 시작했지. 특히, 이런 변화는 교육, 문화, 복지 같은 분야에서 두드러졌어. 예전에는 모든 것이 ‘국가를 위한’ 것이었다면, 이후에는 ‘국민을 위한’ 정책으로 전환됐지. 어린이날 행사도 마찬가지야. 처음에는 단순히 정부가 기획한 국가 행사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 중심의 행사로 바뀌었어.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한 거지. 그러니까, 시대가 바뀌면 ‘핵심 가치’도 바뀌는 거야. 예전에는 집단과 조직의 질서를 중요하게 여겼다면, 이제는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어. 결국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거지.


딸: 그러니까 결국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의 가치관도 바뀐 거네요.


아빠: 그렇지. 하지만 당시에는 다 같이 참여하는 행사들이 많아서, 지금보다 공동체 의식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야. 그리고 그게 단순히 행사에 참석하는 걸 넘어서,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과 연결을 만들어주는 역할도 했지.


딸: 그때는 불편한 것도 많았겠지만, 뭔가 따뜻한 느낌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소박하지만, 그때는 그게 가장 즐거운 일이었겠네. 지금은 놀이공원이나 쇼핑몰이 있잖아. 그땐 그런 게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밖에서 다들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를 찾았던 거구나.


아빠: 맞아. 편리함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가끔은 돌아봐야 해. 그때는 오히려 다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았어. 요즘은 편리하지만, 각자 놀다 보니 그런 정서가 사라졌지. 구경거리가 많아졌지만, 함께 감탄하고 감정을 나누는 순간은 줄어든 것 같아. 예전에는 사람들과 직접 부대끼면서 볼거리 자체보다 ‘같이 보는 재미’가 더 컸으니까. 요즘은 각자 휴대폰으로 중계 영상을 보고, 온라인으로 반응을 공유하는 시대잖아. 편리하긴 하지만, 그때처럼 ‘같이 느끼는’ 경험은 적어진 것 같아.


딸: 이제 보니까, 이 사진도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과 분위기를 담고 있네. 사진 속 저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빠: 그때 그 순간을 정말 즐기고 있었겠지.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까지 담고 있으니까. 그래서 과거를 볼 땐, 그냥 보는 게 아니라 ‘느껴야’ 해.

keyword
이전 02화시발택시… 지금 욕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