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빠가 죽으면 어쩌지?’ 갑자기 너무 우울한가요? 근데 진짜예요. 우리 아빠, 평범하지 않거든요. 아빠의 그 보물들을 세상에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게, 저는 너무 아까웠어요. 박옥수라고 치면 박옥수 목사님만 나오는 것도 아주아주 조금 짜증 나고 (유명하신 박옥수 목사님 죄송합니다~) 그래서 네이버 인명사전에 제가 등록도 했어요. (이제 사진작가 박옥수도 나옵니다!) 그리고, 아빠의 사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미국 순회공연도 다녀왔어요.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많은 전문가 분들을 뵙고 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저에게는 좀 더 대중적으로 아빠를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아빠를, 아빠의 사진을 알리고 싶어진 거예요. 그래서 결심했죠. 아빠를, 그리고 아빠의 사진을 한 사람이라도 더 알게 해야겠다.
한 장의 사진이 말을 걸어온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묵직했고,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사진은 가만히 있어도 이야기를 건네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사진은 한순간이지만 그 안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 이야기들을 저도 듣고 싶었어요. 이 글은 그런 사진들을 남겨온 한 사람, 그리고 그의 곁에서 그 시간을 함께 지나온 또 다른 사람, 바로 사진가 아버지와 그의 딸인 제가 함께 만든 기록입니다. 사실 저는 ‘아빠의 사진실력에 얹혀서 인생 포즈만 취하던 딸’이지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빠의 사진집에 담긴 사진들을 보다 보니, 사진 속에서 이야기들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은 순간을 담지만, 그 안에는 사람과 시간, 삶의 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어요.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건 남겨야 한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습니다. 기록되지 않으면, 너무 많은 것이 사라져 버린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아빠의 사진과 그 안에 담긴 시절과 삶을 글로 남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글은 단순한 사진 에세이라기보다는 사진을 둘러싼 시대, 사람,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며, 기억을 나누고 감정을 이어주는 ‘대화의 다리’입니다.
앞으로 이야기에서 저는 저의 아빠이자, 사진작가 박옥수라는 한 사람의 삶과 예술, 그 안에 담긴 깊은 감정과 철학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통해 우리가 잊고 지낸 것들—기다림, 공감,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들—을 다시 느끼게 하는 것. 그리고 그 기록의 과정을 통해 저 자신도 아빠와 다시 만나고, 시대와 감정을 연결하고자 했습니다.
준비한 시리즈는 총 네 개의 이야기 묶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아빠의 사진이 포착한 옛 서울의 풍경과 그 안에 살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골목길, 시장, 버스, 거리에서 포착된 사람들의 표정과 풍경이 그 시절의 삶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2) 사진 한 장에 담긴 기다림과 감정, 그리고 그 안에서 깨어난 기억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사진을 찍기까지의 과정과, 사진이 제게 말을 걸어왔던 순간들을 따라가 봅니다.
3) 사람의 결이 살아 숨 쉬는 아빠의 사진들, 그리고 아빠의 사진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진이 어떻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사람을 담고 기억을 이어가는 따뜻한 기술로서의 사진을 조명합니다.
4) 사진이라는 매체의 본질, 그 의미와 변화에 대해 아빠와 나눈 대화를 담았습니다. 사진은 왜 찍는가, 무엇을 남기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남은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딸인 저의 시선으로 본 아빠의 모습과 이 기록의 의미를 정리했습니다. 저에게 아빠는 단지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담고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글이 당신에게도 그런 하나의 기억이 되기를, 혹은 당신 안의 이야기를 꺼내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빠는 ‘내 사진으로 다 말하는 거지… 무슨 설명이 꼭 필요하겠니…’ 하시지만 막상 아빠가 사진전시를 하실 때면, 자연스럽게 관람객분들에게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확실히 사진이 달라 보이고, 더 재밌어지고, 더 의미 있는 사진으로 보이는 것이 너무 좋더라고요. 아빠 말대로 그냥 봐도 전해지는 감성과 울림이 있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면 또 다른 감성과 울림이 다가온단 말이죠. 그런데 아빠가 안 계시면 그런 설명은 누가 해줄 것이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솔직히, 아빠가 사진 찍는 거야 옛날부터 봐왔고, 전시회도 따라다녔고, 상도 많이 받으셨으니까 ‘우와 우리 아빠 멋있다~’ 생각하고 살았죠. 그랬는데요…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하게 아빠랑 사진 이야기를 하고 나면 막 혼자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냥 예쁘네~ 멋지네~ 하고 넘기던 사진들이, 아빠 이야기를 듣고 나면 갑자기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숨은 이야기 찾기처럼!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아빠를 통해서 더 듣고 싶었어요. 그냥 보면 ‘아, 예전엔 이랬구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아빠는 그 사진을 찍기 위해 어떤 특별한 일을 겪을 수도 있잖아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죠. 사진에 찍히는 사람들의 ‘진짜 표정’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순간을 찍고 싶어서 거의 하루 종일 기다린 적도 있데요. (와… 이거 너무 멋있잖아요? 거의 ‘생활의 달인 – 진심 편’ 수준.)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죠. ‘아, 우리 아빠는 그냥 사진 찍는 사람이 아니구나… 이 사람, 인생을 찍고 있었던 거네?’ 사람들 인생에 슬쩍 들어가서, 눈치 안 채게 그 사람의 가장 진심 어린 순간을 담아내는 기술. 아빠는 늘 말씀하세요. “사진은 순간을 담는 예술이지만, 그 순간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사진도, 인생도, 함께할 때 더 아름다우니까.” 아빠는 “기다림이 사진이고, 인생이다”라고 하십니다. 아빠는 술도 한 방울도 못하시고, 담배도 끊고, 오직 사진 찍는 재미로 사시는 분이에요. 이 정도면 정말 사진에 미친 거 아닙니까? (반면 엄마는 술도 잘 드시고, 깔깔깔 호호호 재미난 분인데, 어떻게 이렇게 재미없는 남자랑 만나서 금혼식을 하도록 사랑하고 사시는지 궁금하시죠? 그 이야기도 펼쳐질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 핫플이었던 어린이날 운동장!
– 창경궁에서 트위스트 추는 청춘들
– 한강 얼음판에서 빠진 사람을 구하는 장면
– 시장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엄마들
– 꽃미남이셨던 유명 철학자의 진지한 강의 현장
– 이젠 이 세상에 없지만, 사진 속에서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우리나라의 위대한 예인들…
아빠 사진은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들이 가득해요. 하지만 아빠의 사진을 보면, 그냥 옛날이야기 같다가도, 지금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과 감정이 느껴져요. 사람은 시대가 달라도, 결국 비슷한 감정으로 살아가는구나~ 싶어요. 아빠의 사진에 담긴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에 제가 던진 ‘엉뚱한’ 질문들, 그리고 그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준 아빠의 말들… 읽다 보면 아마 여러분도 느끼실 거예요. ‘사진은 가만히 있는데… 왜 이렇게 마음을 건드리지?’ 그거, 맞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어릴 적부터 저는 아빠를 ‘약간 비범한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사진, 글씨, 그림, 가구 만들기 등등… 못하는 게 없는, 무슨 ‘레전드 아빠’랄까요? 그런 아빠가 사진 앞에 서면, 참 묘한 진지함이 흐릅니다.
“사진은 기다림이다.”
“사진은 사람을 담는 것이다.”
아빠는 늘 그렇게 말하세요. 요즘처럼 필터를 씌운 셀카를 쉴 새 없이 찍는 것과는 다르게, 아빠의 사진에는 그 공기와 온도, 사람의 표정과 냄새까지도 담겨 있었어요. 아빠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그 사람의 ‘진심이 비치는’ 순간이기도 했죠.
제가 아는 아빠는 늘 뭔가를 기록하는 사람이었어요.
“아빠, 이제는 내가 아빠의 기록을 기록할게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은 사진가 아빠와 제가 함께 나눈, 유쾌하고도 찡한 사진이야기입니다. 오래된 사진, 여러 이야기들과 귀한 사람들, 전통 예술가들의 숨결이 깃든 사진들 그리고 최근의 작품까지 다양한 사진들을 매개로, 저는 아빠의 삶을 다시 ‘읽고’, 사진을 새롭게 ‘듣습니다’. 글 속 대화는 어느덧 과거와 현재, 전통과 오늘, 사진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가 됩니다. 사진 한 장 한 장 속에 담긴 삶의 결과 사람 냄새, 우리가 잊고 지낸 따뜻한 순간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함께 느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들은 아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저와 아빠의 이야기’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중간중간, “딸이 왜 이렇게 말을 많이 해?” 하실 수도 있어요. 근데… 이 글은 원래 그런 거예요! 아빠랑 딸이 오손도손 수다 떨듯이 여러분도 중간에 껴서 같이 웃고, 같이 감동받으시면 좋겠어요. 사진 속 이야기와 함께 아빠의 진득한 인생담이 어우러져 있으니 여러분은 저희 두 사람의 대화에 슬며시 끼어 앉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렇게 말하게 될지도 몰라요. “이 사진… 진짜 말을 하네요!”
아빠, 그리고 우리 모두의 소중한 순간들을 기억하며-
이 기록이 오래도록 누군가의 마음에 따뜻한 흔적으로 남기를 소망합니다.
긴 프롤로그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년 여름의 끝자락에서
딸 박진희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