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깨어 있는 시간, 나는 잠들어 있다.

당신께 이토록 염치가 없을 줄이야.

by 지구인 이공이오

새벽 4시 반, 휴대폰에 톡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발신자는 어제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깨어 있었을 당신들이다.

당신들에게 밤사이에 연락 온 게 처음이어서, '화재사고'라는 단어 자체도 너무 낯설어서

뭘 해야 하는지 지금 연락을 하는 게 맞는 건지도 몰라서 뇌정지 상태로 잠시 그대로 멈춰 있었다.


이곳에 온 지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매일매일 알고 배워야 할게 자꾸 튀어 올라서 고3수험생 모드에 진입한 체

아슬아슬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오늘, 또 하나의 숙제가 +1 된 상황이었다.


어젯밤 10시 즈음부터 자정을 넘어선 시간까지 화재사고 관련 진행사항을 시간대별로 올려놓은 당신들의 톡을 하나하나 다시 읽어 내려갔다. 지역 화재사고 발생 시 당신들도 함께 사고 현장에 출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만큼 드물지만 한번 발생하면 당신들에게도 너무나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일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 와중에도 관리자인 저에게 보고하기 위해서 진행상황을 하나씩 시간대 별로 나열해서 톡을 남겨 준 거였다.


그런데 당신들이 처음 톡을 보낼 10시 즈음해서 저는 잠들어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당신들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당신들의 '갑작스러움, 당황스러움, 정신없음'을 아무것도 모른 체 너무나도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평소 밤 10~11시 취침, 새벽 4~5시 기상 패턴의 일상을 살아온 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가늠하지 못한 채 늘 편안한 일상처럼 그렇게 잠들어 있었다.


새벽 5시 즈음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톡을 보냈다.

'어제부터 너무 고생 많이 했다고, 밤 사이 수고 많았다고'

그리고 차마 어젯밤 잠들어 있어서 톡 확인이 늦어졌다고

그래서 회신이 늦어져서 너무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염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가 당신들의 시간을 온전히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장 마음이 쓰인다고 하면서도

당신들에게 어떤 일들이 얼마큼 일어나는지 아직은 전부 알지 못해서

뭔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들으면

당신들의 일하는 모습을, 당신들의 말들을...

그러면 제가 좀 더 당신들에게 필요한 걸 제대로 해줄 수 있는 관리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오늘은 충분히 미안해하고 내일부터 더 많이 노력하기를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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