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 이야기 5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보석반지사탕이 유행 중이다. 그래서 그런지 꿈속에서 보석반지사탕을 먹는 꿈을 몇 차례 꾸었다. 어제도 꿈속에서 보석반지사탕을 찾아서 계속 헤매고 다니다가 잠에서 깼다.
잠을 설쳐서 그런지 요 며칠 학교만 가면 잠이 와서 주체를 못 하고 고개가 기울어졌다. 1교시부터 고개가 책상으로 기울어지더니 3교시부터는 기억이 없다.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점심 종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새로운 학년이 되면 아버지는 항상 담임선생님을 만나셨다. 그러곤 몸이 약한 아이라 수업 시간에 자더라도 자게 놔두고 열이 나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며 부탁하셨다. 그 부탁으로 인해 그날도 학교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나를 깨우지 않았다.
닭 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참을 수 없는 잠에 빠져든다. 고개가 한없이 앞뒤로 좌우로 까딱까딱 거린다. 점심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먹고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든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논길을 지나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가는 길에 보석반지 사탕 꼬다리가 떨어져 있다. 좌우를 살피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주워서 내 손가락에 끼워본다. 코끝으로 가져가본다. 달콤한 향이 아직 남아있다. 차마 입으로 가져가지는 못하고 흠칫 놀라며 꼬다리를 빼서 논둑으로 휙 던진다. 먹어 보고 싶다. 오랜만에 먹어보고 싶은 게 생겼다.
“할머이, 내 보석반지사탕 한나 묵어보고 잡네이.”
“거그, 찬합 열어 봐라이. 어제 묵다가 거그다가 뒀능갑드만.”
“?????????????????.”
교자상 위에 올려진 도자기 찬합 1층에 먹다 남은 보석반지사탕 하나가 들어있다. 2층도 열어본다. 비닐도 뜯지 않은 새 보석반지사탕이 3개가 들어있다.
“엊그제 자전거포 삼춘이 새벽예배 갔다 오는 길에 니 봤다고 하드라야.“
“새벽에 내를 봤다고 글등가???”
“요 만물수퍼 앞에서 머 묵고 잡냐 했더니 니가 먼일로 그거이 묵고 잡다 했다던만.”
“내가??? 나가??? 그랬능갑네이.”
“나가 그 말 듣고 2개 사갔고 왔는디 니도 오늘 삼춘한테 받아갔고 2개 들고 왔든만.“
보석반지사탕을 손가락에 끼워서 손목을 괜스레 까딱까딱 움직여본다.
“그거슨 그라고 가스나가 아침 댓바람부터 어딜 쏘 다녀쌌냐이.”
“아이고 그랑께말이네. 할머이 요새 소태마냥 입이 쓰담서 한나 먹으소.”
무슨 음식이든지 먹으라고 하면 항시 마다하는 만례씨가 어쩐 일로 사탕을 받아 든다.
“줘봐라이. 니가 요새 무장 무장 안묵어싼께 나까정 입이 퍼석퍼석하니 머시 묵고 잡들 안허당깨.”
만례씨 손에서 사탕봉지를 다시 들고 와서 사탕봉지를 뜯어 보석반지사탕을 만례씨 검지에 끼운다.세월에 굵어진 뼈마디에 반지가 마디 끝까지 들어가지가 않는다. 다시 빼서 다른 손가락에 끼우려는데 만례씨가 잡아서 입으로 냅다 가져가서 사탕을 입에 문다.
사탕을 먹는 꿈을 꾸었던 게 아니고 진짜로 먹었었구나. 소공녀 책에 푹 빠져있어서 몽유병이겠거니 짐작했다. 자는 것도 깬 것도 아닌 상태로 배고픔에 만물슈퍼 앞을 서성이던 나를 자전거포 삼촌이 발견했던 모양이다.
먹다 남은 사탕을 입속에 가져간다. 익숙한 그 맛이다. 이게 왜 그렇게도 먹고 싶었을까? 사탕 때문에 입맛이 사라진 건지 잠을 못 자서 입맛이 사라진 건지 날이 갈수록 입맛이 통 없다.
그 뒤로 몇 달이 되도록 몽중의 새벽산책이 지속되자 만례씨는 나를 새벽예배에 데리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볼품없는 몸뚱이는 점점 더 성냥개비처럼 볼품없어져 간다. 덩달아 만례씨까지 무장 무장 말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