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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땡이 러너 Nov 11. 2019

가을을 달리는 일

달리기 찬가#7. 몸도, 생각도, 시간도 익어가는 계절의 러닝

글 쓰는 일을 하지만, 퇴근 후엔 몸 쓰는 일을 즐기는 직장인. 대학생이던 2012년 무렵부터 취미로 러닝을 즐기고 있다. 이런저런 운동에 손을 댔지만, 결국 러닝이 가장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뛸 때마다 잡스런 생각을 하다 보니 러닝을 하며 가장 튼튼해진 건 마음. 달리며 얻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공유한다.


가을.


운동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이 계절도 절반 이상 지났다. 아침저녁의 공기가 영하권을 맴돈다. 찬 공기에 손 끝이 얼어가면 자연스레 몸이 움츠러든다.  


그래도 이른 시간만 피하면 여전히 달리기에는 햇살이 충분하다. 달리기에 가장 좋은 온도가 섭씨 10도에서 13도 사이라고 하니, 딱 요즘 한낮의 날씨다.


다 같은 달리기 같지만, 가을의 달리기는 여름의 그것과 다름을 느낀다. 내 몸 하나로만 하는 운동이다 보니 계절의 변화는 더 크다. 당장 선선해진 공기 덕에 체력적인 부담이 적다. 높아진 하늘과 붉게 물들어가는 풍경도 다른 감각을 선사한다.


물론 쉽지만은 않다. 나와의 싸움은 여전히 힘들다. 그래도 한결 여유로워진 분위기 속에서 머릿속엔 다른 생각들이 슬금슬금 익어간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가을을 타는'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




조금 된 이야기이지만, 가을의 입구에서 함께 산책하던 누군가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가을의 햇살은 느낌이 다르다. 여름의 그것과 같이 여전히 뜨겁지만,
가을의 햇살엔 무르익음이 담겼다.


그땐 그렇게 넘겼다. 가을보다는 '늦여름'이 어울리는 날씨였기에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이후 두어 번의 태풍이 지나고 난 뒤, 어느 날 운동을 나선 길에 그 말이 떠올랐다. 땅에 늘어진 햇살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됐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달리기라고 이를 피해가지는 않는다. 한 해, 특히 숨이 차오르던 여름을 참고 견디며 훈련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시기다. 가을에 많은 달리기 대회들이 모여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달리기를 하기 딱 좋은 날씨인 것도 한몫 하지만.

춘천 마라톤 깃발이 걸린 춘천 의암호 인근 도로

그래서 가을이 오면 러너들은 거의 매주, 때로는 주말 모두를 투자해 결과를 확인한다. 여름 내내 흘렸던 땀의 결실을 확인하고, 1년 전 내가 세웠던 기록과 비교해본다. 달리기에 처음 입문한 러너라면 완주의 기쁨에 취하기도 하고, 대회의 분위기를 체감한다. 그렇게 한 시즌을 마감해간다.


굳이 운동이 아니더라도, 가을은 그런 시기다. 가까이서 보면 하루하루가 다 같은 것 같지만, 어느덧 연말이 손에 잡히는 때다. 1년짜리 달리기 코스라고 치면, 반환점을 훌쩍 넘어 결승선이 눈에 보이는 시점. 이제 목표한 기록을 달성할 수 있는지 여부가 가늠된다.


달리기에 관한 것이 아니더라도 좋다. 가을을 달리며 올해 초 내가 세웠던 계획들과, 목표들은 얼마나 이뤄졌는지를 생각하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다. 목표까지 여유가 있다면 조금 템포를 낮춰도 좋다. 반대로 여유가 없다면 페이스를 조금 올려볼 수도 있다.  


물론 막판에 힘 조금 더 쓴다고 해서 기록이 훅 줄어들지는 않는다. 가을 과일의 맛이 여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결정되듯, 내 성과 역시 지난 1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달리기도, 삶도 어느 순간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목표 달성을 위해 무리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무리한 목표였다면 다음 기회로 남기는 것도 방법이다. 좌절할 필요도 없다. 어쨌든 나는 달렸으니까.


몸이든 마음이든, 부상 없는 한 해를 보냈다면 그걸로 족하다. 다가올 시간을 보낼 경험이 생긴 것이니까.


부상을 당했어도 괜찮다. 회복하며 보낸 시간도 값진 내 시간이니까. 이 역시 다음으로 가기 위한 동력이 된다.


모두에게 사연이 있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나는 내 1년을 보냈을 것이다. 아예 달리지 않았으면 모를까, 어딘가에선 내 나름의 레이스를 소화했다.


그래서 가을의 달리기가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남은 두 달을 어떻게 보낼지. 다가올 한 해는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계절이다.


(끝)


Tip. 가을을 달리는 이들을 위한 조언

낙엽으로 덮인 길은 웬만하면 달리지 않는다. 도로에 난 홈 등 장애물들이 낙엽으로 덮여있어 부상의 위험이 있다.

혹시 모를 기온 변화에 대비한다. 얇은 바람막이 등을 입고 운동을 시작하고, 중간에 더워지면 벗어서 들고 달리자.

수분 공급에 신경 쓴다. 낮아진 기온과 늘어난 바람으로 땀이 빨리 마르는 것뿐, 여름 못지않은 수분 손실이 일어난다.

(美 러닝 전문잡지 '러너스 월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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