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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땡이 러너 Nov 25. 2019

한계를 인정해 보셨나요

달리기 찬가#8. 욕심이 만든 부상, 나를 돌아보는 시간

글 쓰는 일을 하지만, 퇴근 후엔 몸 쓰는 일을 즐기는 직장인. 대학생이던 2012년 무렵부터 취미로 러닝을 즐기고 있다. 이런저런 운동에 손을 댔지만, 결국 러닝이 가장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뛸 때마다 잡스런 생각을 하다 보니 러닝을 하며 가장 튼튼해진 건 마음. 달리며 얻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공유한다.


또 부상이다. 이번엔 발목.


어느덧 3주가 넘었다. 러닝은커녕, 다른 운동조차 제한되다 보니 이젠 우울할 지경이다.


부상은 2019년 10월 말 있었던 춘천 마라톤 대회에서 입었다. 대회 초반 첩첩이 쌓인 사람들을 뚫고 나가려 평소보다 속도를 급격히 높였다.


바로 앞의 주자를 피하려 방향을 트는 순간, 바닥에 움푹 파인 홈에 오른발이 빠졌다. 발바닥이 닿아야 할 위치에 발 끝 닿았다. 어느새 발목이 꺾이며 한 바퀴를 굴렀다.


왼쪽 무릎도 강하게 아스팔트 바닥에 쓸렸고, 손에 들고 달리던 스마트폰은 완전히 부서져 결국 새로 사야만 했다. 무릎의 상처는 3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샤워를 할 때마다 쓰리다. 신체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비용이 컸다.


더 이상 뛸 수 없어 부상자 회수차량에 올랐다. 러닝에 입문한 뒤 처음 타 보는 차였다. 창 너머로 보이는 러너들은 느리더라도 완주했다. 자기만의 속도로 안전하게 달리는 이들을 보며 부상의 이유를 생각했다.


결국 다 욕심 때문이다.


달리기는 혼자 하는 운동이다. 누구와 격렬하게 몸을 부딪힐 일도 없고, 기구를 이용하다가 다칠 일도 없다. 환경도 그렇다. 자전거나 (진짜!)고라니 등이 뛰어들지 않는 한, 대부분의 도로에선 외부 요인에 의해 다칠 일은 거의 없다.


결국 부상의 대부분은 내가 원인이다. 주로 운동능력과 욕심의 '미스매치'에서 온다. 대회에서의 무리한 주행 때문이든,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반복적인 훈련 때문이든, 본인의 운동능력을 뛰어넘었을 때 부상을 당하기 쉽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고백컨데, 2019년은 달리기와는 거리가 먼 해였다. 연초 대회를 시작으로 시즌을 개시했지만, 여름 내내 사이클링에 빠져 러닝 훈련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대회를 앞두고도 체계적인 준비를 거의 하지 않았다.


내 상태를 알았기에, 대회 전날만 해도 '정말 살살 완주만 하고 와야지'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대회 당일 아침이 되자 욕심이 났다. 경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올해 자전거도 많이 탔으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선에 섰을 때엔 주변 러너들이 뿜어대는 흥분감에 마음도 들떴다.


출발 직후 몸도 가벼웠다. 얼마 달리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 정도는~"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뛰어 왔으니까. 운동을 안 한 건 아니니까.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결과는 좋지 못했다.


자신의 능력보다 더 노력을 기울일 때 우리는 성장한다. 운동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성장과 욕심은 다르다. 내 현재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거기에 '벽돌 한 장'을 더 얹어 가는 것이 훈련이다.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한 번 무리하는 것과 성장을 착각하지는 말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내 한계를 인정하는 거다. 언제나 천장은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변한다. 노력과 경험에 따라. 높아질 수도, 낮아질 수도 있다. 내가 봐야 할 것은 지금의 내 상태와 한계점이다. 한계를 정확히 알아야 돌파도 가능하다.


말은 쉽지만, 내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이정도는 아닌데"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퇴보했다는 생각에 변명도 하게 된다. 그래도 한 번 인정하고 나면 해방감이 크다.  그렇다고 '난 이제 망했어', '될 대로 대라'라는 식의 자조는 아니다.


인정은 과거의 나를 벗어던지고 지금 내 수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래서 내 한계를 인정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객관화한 마음이 단단히 버티고 서면, 분위기에 쉬이 휩쓸리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후회할 만한 일이 덜 만들어진다.


늘 얘기하듯, 달리기만 그런 것은 아닐 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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