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랑하는 법
절절 끓는 초반의 마음 200g
애정 가득했던 상대의 말 30g
함께했던 약속들 100g
아직도 기다리는 마음 500g
굳어버린 마음 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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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절 끓었던 초반의 마음에 데이지 않게 조심히 그릇에 담아주세요
2. 그 위로 아직도 기다리는 마음을 2번에 나누어 넣으며 살살 저어주세요
3. 잘 섞인 마음들에 함께했던 약속들을 조금씩 넣고 섞어주세요
4. 꼭 계량한 굳어버린 마음을 잘게 부수고, 애정 가득했던 상대의 말과 섞어주세요
5. 3번에 4번을 넣고 잘 저어줍니다.
6. 하루정도 햇빛을 피해 굳혀주면 완성! 완성한 마음은 최대한 예쁜 상자에 담아 품어주세요.
7. 주의) 너무 차가워지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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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오래되면 편안함이 온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하나도 모르겠으면서, 그러기엔 이르다고 생각하면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이해를 붙잡고 다시 주방에 선다.
어디 있었더라, 하는 상대의 애정 가득했던 말을 기어코 찾아내기만 하면
절절 끓는 내 마음은 처음과도 같아서 만들기가 쉽다.
아직도 기다리는 마음은 수전에서 나오는 물 같아서 열기만 하면 흘러내리니
더 준비할 것도 없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순서를 잘 지켜야만 마음이 오래 보관되기에
나는 늘 다 잊어버린 사람처럼 레시피를 보고 또 보고 마음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지 않아도 오래 사랑하는 법이 있다는데,
난 아직도 그 레시피를 구하지 못해서 매번 이렇게 만들어야만 한다.
이상하지, 함께 약속할 땐 내가 이러지 않아도 됐던 것 같은데.
생각이 깊어질수록 이미 굳어버린 마음의 양이 늘어나기 때문에
나는 생각을 하다가도 일부러 멈춰버린다.
그러지 않으면 기껏 만든 마음이 다 굳어버려서 망쳐지고 말거든.
꼭, 꼭 넘치지 않게 넣어야만 한다.
몇 번쯤 넘치고 나니 마음을 보관할 새도 없이 굳어버린단 걸 알고 나서는
다른 것들은 조금 넘쳐도 넘어가지만 이 부분은 늘 신경 쓴다.
물론, 애정 가득했던 상대의 말이 신선할수록 계량하기 편해지지만
늘 신선하진 않으니까.
아마 그랬다면 이런 마음 따위 만들지 않았어도 되잖아,
또다시 굳을뻔한 마음을 붙들고 애써 부수어 섞다 보면
힘들어서 눈물이 날 때가 많다.
너무 단단해서, 이것 하나 신선하지 않은게 힘들어서.
그렇지만 이것만 넘겨내고 나면 내가 원하는 예쁜 상자에 담아
조금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마음이 완성되니까
괜히 망치지 않도록 울지 않는다.
실수로라도 들어가면 힘껏 섞은 마음들이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퍼지니까.
아예 만들지 않았음 않았지
기껏 거의 다 만들었는데 퍼져버리면 그것만큼 힘 빠지는 일도 없다.
나한테 모든 게 다 달려있기에 힘이 빠져버리면 주워 담을 수도 없어서
보관은커녕 다 비워내져 버리기 때문에
아직 기다리는 마음이 클수록 아플 수가 있다.
상대는 뭐 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지만
내 마음만이라도 내가 예쁘게 만들어서 지켜야-
아니 보관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
다시 하기에도 지쳤거든.
그렇게 하루라는 시간을 꼬박 퍼지지도 굳지도 않게 잘 참아내면
적당히 굳고 적당히 식은 마음이 완성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자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이 마음을 잘 담아서
햇빛 아래에 실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잘 숨겨 놓으면
썩기 전까지 내내 먹을 마음이 완성된다.
이 글은 내가 다시 보기 위해 남겨놓는 나의 레시피,
어떻게든 오래 사랑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남기는 레시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