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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하거나 도태되거나

by 조직실험실


사람을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원래 그런 성격이라서, 실력이 부족해서, 혹은 책임감이 없어서 문제가 생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진실이 드러난다. 개인의 결함처럼 보였던 많은 장면들이 사실은 역할과 신분이 만들어낸 구조적 한계였다는 것. 이번 글은 그런 한계를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한 사람, 현채인 U를 통해 내가 목격한 ‘빌런화’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U는 인근 부서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직원이다.

한때 회사가 그의 모국과 매우 활발히 비즈니스를 하던 시절, U와 같은 국적의 직원들이 대거 채용되었다. 그들은 언어 장벽을 낮추고, 그 나라의 문화적 특수성을 번역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본사와 법인을 오가며 문화와 사업을 잇고, 로컬의 뉘앙스를 포착해주는 그들의 존재는 말 그대로 귀했다.


U 역시 그 흐름 속에서 입사했다. 성인이 된 후 한국으로 넘어와 10년 넘게 생활했고, 한국 대학원까지 마쳤다. 둥글둥글하고 선한 성향 덕에 한국 직장 문화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다. 한국인 동료들과의 교류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 회사는 그가 가진 언어와 국적이 필요했고, U는 그 역할에 충실했다. 그 시절 U는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문제는 회사의 전략이 급격히 변경되기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여러 이유로 해당 국가의 사업 철수를 결정했고, 회사 곳곳에서 U와 같은 신분으로 근무하는 직원들에 대한 역량과 역할 이슈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역할이 사라지면, 그 역할에 기대어 존재하던 사람도 설 자리를 잃는다.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않은 한국에서, 한국 노동법 적용을 받는 현채인들은 어느 순간 회사의 무거운 짐이 되어갔다.


만약 이 회사가 외국계 기업이었다면 결과는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국적의 직원이 섞여 있는 조직이라면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구성원’을 수용하고 배려하는 기본적인 관용이 더 크게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사 직원의 95% 이상이 토종 한국인인 회사에서,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에게 주어지는 온도는 생각보다 냉랭했다. U에게서 법인과 본사를 잇는 역할이 사라지고, 순수 본사 업무로 직무 전환이 되자마자 U는 빠르게 흑화되어갔다.


U의 한국어는 일상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업무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빠르게 이메일이 오가고, 사담과 공식 업무 지시가 동시 다발적으로 혼재되어 한국어가 쏟아지는 사내 채팅창에서 U는 늘 한 박자씩 뒤쳐졌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보고서 작성, 임원에게 보고하는 정확한 톤앤매너, 문장 간 숨은 맥락 읽기… U에게는 매 순간이 난관이었다. 한국인이 모국어를 다룰 때 텍스트를 하나하나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 덩어리를 이미지처럼 흡수하는’ 무지성적이고 기계적인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U를 바라보며 역설적으로 알게 되었다. 10년이라는 체류 기간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언어 장벽을 낮추기 위해 들어온 U는 아이러니하게 존재 자체로 언어 장벽이 되어버렸다.


자연스러운 결과로 U는 팀 내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업무들에 머물게 되었고, 그마저도 혼자가 아닌 누군가의 보조가 필요했다. 작은 업무 지시라도 누군가가 옆에서 맥락 유실을 막아줘야 했다. 팀 전체가 함께 움직이는 큰 프로젝트에서는 문제가 심각해졌다. 내용이 잘못 전달되거나, 어눌한 말투로 신뢰를 잃거나, 납기가 고무줄처럼 늘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U 옆에서 ‘땜빵’을 담당하던 팀원들은 심리적으로 지쳐버렸고, 팀 전체가 U 때문에 속도가 느려진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럴 수 있다. U는 어쨋거나 외국인이니까.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 회사에 일하면서도 수많은 빌런이 양상되는 마당에, 이런 크나큰 구조적 핸디캡 정도 쯤이야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 만약 입장을 바꿔 내가 문화도 언어도 완전히 다른 아프리카(U가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말은 아니다.)로 넘어가 10년을 넘게 산다한들 아프리카 토종 회사에서 U만큼 자연스럽게 잘 지낼 수 있을까? 반문하면 자신이 없다. 얼마나 대단한지 존재 자체로 리스펙이다. 그러나 U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지점은 바로 U가 이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사실상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사 환경과 전략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산업도, 기술도, 조직도 끊임없이 바뀐다. 그것도 매우 매우 빠르게. 그래서 요즘 회사에서는 변화의 속도에 얼마나 빠르게 올라타는지를 진짜 역량으로 간주한다. 그 변화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재빨리 새로운 파도에 올라타는 것이 생존의 기술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지구인 성인이라면 리스킬링(reskilling)을 통해 평생 본인의 스펙과 엣지를 갈아끼워 살아야 하는 것이 기본이 된 세상이다. 하지만 U는 그 파도에 적극적으로 몸을 싣지 않았다. 역할이 사라진 뒤에도 그는 팀의 뒤편에 머물며, 낮은 난이도의 업무에 만족했고, 회사의 안정적인 처우와 복지에 중심을 맞췄다. 변화의 파도 앞에서 U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모국어 패치가 유용하지 않게 된 이후에, 본인의 새로운 엣지를 발굴하지 않고 매우 소극적 선택을 이어가고 있다. 그 선택이 결국 그를 ‘별로인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구조가 장벽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장벽 앞에서 멈춰 서는가, 아니면 새로운 길을 찾는가는 개인의 몫이다. 그리고 바로 그 선택이, 사람을 빌런으로 만들기도 하고, 새로운 히어로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U의 이야기는 한 개인이 조직 변화로 인해 흑화의 길로 접어든 비극적 서사이기도 하지만, 그 어느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경고로도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환경은 바뀌고 있기에, 내가 공들여 날카롭게 만든 무기가 내일은 그저 무겁고 녹슨 쇳덩어리가 될 수 있다.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은 이제 생존이고, 결국 자기 삶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기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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