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는 빠듯한 일정 속에 진행되고 있었다.
보고서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고, 각자 맡은 역할을 분배해 긴장감 있게 일을 쳐내는 중이었다. 그 날도 오전 내 긴 회의를 마치고, 함께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회사 로비 한가운데서 P가 갑자기 눈물이 글썽이더니, 울먹이며 말했다. “제가 도움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 장면은 얼핏 보면 몇몇 선배들이 P를 에워싸고 궁지로 내모는 유사 집단 괴롭힘의 현장 같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함께 웃으며 밥을 먹었고, 내내 프로젝트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위기는 진지했지만 화기애애했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 P를 배제하거나 압박한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는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P의 눈물은 늘 이렇게 느닷없이 등장했다.
P의 평소 모습은 비교적 온순했고 부드러웠다.
P를 ‘착한 후배’로 기억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서 나는 곧 깨달았다. 순한 사람이라는 인상 뒤에는 이상하리만치 자기 자신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P는 부정적인 피드백에 극도로 취약했다. 본인의 주장이나 의견, 혹은 그것들이 모인 보고서나 산출물 등에 개선 의견을 받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혹은 타인의 어떠한 언급이 없는 상황에서도 본인이 남들보다 미진하다고 '스스로' 느꼈을 경우, 무조건 눈에 습기가 차오르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부정적인 해석과 서사가 내면에서 창조되는 듯 했다. 프로젝트에서 마주했던 P의 모습도 외부의 압박 없이 스스로 무너진 양상에 가까웠다. 누군가가 자신을 인정하거나 칭찬하지 않으면, ‘내가 부족하다는 뜻이겠지’라고 받아들였고, 회의 중 본인의 의견이 그냥 지나쳐지면 ‘아무도 내 말을 중요하게 듣지 않는다’는 극도의 불안과 좌절이 찾아왔다.
P의 자존감은 철저하게 외부에 의존했다.
누군가의 인정이 있어야만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고, 그 인정을 받지 못하면 존재가 흔들렸다.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결함을 들키는 것이 두려워, 피드백을 받기 전에 먼저 감정(눈물)으로 선을 그었다. 피드백을 주는 쪽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면, 비판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흘러내리는 P의 눈물은 타인의 부정 반응을 차단하고 조절하기 위한 방어의 언어에 가까웠다.
눈물의 결과는 잔인했다.
P의 눈물이 터질 때마다 팀 전체가 경직되었다. 여성 직원의 눈물에 유난히 약한 팀장은 민감하게 반응했고, 맷집이 비교적 좋은 주변인들이 늘 잠재적 가해자가 되었다.
“P를 다치게 하지 마라.”
"P 울리지 말고 그냥 좀 도와줘라."
오히려 P의 눈물샘을 자극하지 말라는 과도한 피드백을 받곤 했다. ‘괜히 울리면 귀찮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모든 대화가 조심스러워졌다. 그 결과, P는 점점 피드백에서 멀어졌다. P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의견을 꺼내는 것조차 부담이 되었다. P의 눈물은 조직의 심리적 안전을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었다. 습관성 눈물이 사무실에서 이렇게 폭력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P를 통해 처음 배우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자, 가장 큰 부작용은 P에게로 되돌아왔다. 보호체계 안에서 편안히 머물렀던 P는 10년차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입 같은 태도를 유지했고, 계속 눈물을 흘렸다. 사실상 피드백이 멈추었고, 성장의 기회는 자동으로 차단되었다. 조직이 P가 다치지 않게 지켜준 것은 맞지만, 동시에 P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그렇게 P는 조직 속에서 ‘안전하게 머물러 있는 숙련되지 않은 빌런’이 되어버렸다.
P는 그저 자기 안의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조직은 그 불안을 마주하기보다는 덮어주었다. 감정을 존중하는 것과, 감정을 면죄부로 만들어주는 것은 다르다. 누군가의 눈물을 이해하려면, 그 눈물이 말하고 있는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 “지금 무엇이 불안한가요?”라는 질문이 없었던 자리에는 침묵과 정체만이 자랐다.
결국 문제는 ‘개인’뿐 아니라 ‘조직’에도 있었다. 조직은 P의 감정을 관리 대상으로만 취급했다. 감정의 근원을 탐색하기보다, 감정을 일으키지 않게 만드는 방향으로 팀이 운영되었다. 그러나 진짜 심리적 안전감은 ‘감정을 탐색할 수 있는 곳’에서 만들어진다. 누군가의 눈물로 조직에 불편함이 제공되는 순간, 그 불편함을 학습의 신호로 해석하고 전환하는 것이 리더십의 역할이다.
사람은 본래 나쁘지 않다. 다만, 자기 감정을 성숙하게 다루어내지 못할 때 종종 ‘별로’가 된다. 그리고 조직이 개인의 ‘별로’을 방치하거나 강화할 때, 평범한 회사는 조용히 병들어간다. 결국 건강한 조직은 문제를 덮지 않고, 불편한 감정 속에서도 서로의 경계를 탐색할 용기를 가진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