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의 일은 언제나 복잡하다. 사무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갈등은 일 문제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결국 사람의 관계 문제로 귀결된다. 누구나 “일할 땐 프로답게, 뜨겁게 협업하라” 하지만, 정작 일이라는 건 사람의 불안과 욕심, 그리고 자존심이 얽히는, 꽤 지저분한 본성이 나뒹구는 무대이기도 하다.
사무실에서 개인적인 친분을 먼저 쌓는 일은 흔하다.
점심을 함께 먹고, 티타임을 자주 하면서, 자연스레 마음이 트인다. 이런 관계는 협업 초기에 꽤 도움이 된다. 처음부터 경계의 벽을 세우지 않아도 되고, 의견을 나누는 일도 훨씬 수월하다. 하지만 그 편안함이 일의 경계까지 녹여버릴 때 문제는 시작된다. 친분이 업무의 완충제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판단의 흐림이 되기도 했다.
한 프로젝트에서 나는 파트 총괄, A는 파트원이었다.
우리의 역할은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지만, 각자의 일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진행 상황을 수시로 공유하고 논의하는 것이 필수였다. 나는 전체 일정과 품질을 관리하고 보고해야 했고, A는 세부 실행 파트를 담당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프로젝트의 흐름이 어딘가 미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종합해서 보고해야 할 내용의 파편들이 이미 윗선에 올라가 있었고, 내가 듣지 못한 피드백이 반영돼 있었다. 알고 보니 A가 자신의 작은 업무 진척을 윗선에 직접 보고하며, 혼자 결정을 받고 진행하고 있었다.
그 순간 느껴진 감정은 단순한 당혹이 아니었다.
‘왜 나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저렇게 했을까?’
‘나를 신뢰하지 않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앞서가고 싶은 욕심인가?’
하지만 진짜 충격은 그가 내가 꽤 믿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는 점이었다. 그가 내게 했던 “같이 잘해봐요”라는 말이, 그 시점 이후로 참을 수 없이 가볍고 하찮게 들렸다. A는 단순히 일의 불협화음을 가져온 것 뿐만이 아니라, 관계의 붕괴를 일으켰다.
B는 다른 프로젝트에서 만난 동료였다. 이번엔 내가 파트원, B가 파트리더였다.
처음에는 B를 신뢰했다. 업무 이해도도 있었고,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큰 강점을 가진 동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프로젝트의 “유령”이 되어 있었다. 회의 일정이 공유되지 않고, 주요 의사결정도 단독으로 이루어졌다. 심지어 내가 맡은 영역이 무엇인지조차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다. B는 모든 것을 혼자 처리했다. 혼자 회의하고, 혼자 보고하고, 혼자 성과를 가져갔다.
혹시 프로젝트 진행에 있어 내가 어떤 잘못을 했을까? 해야 할 일을 충분히 하지 않았을까? 수도 없이 곱씹고 반성했지만, 명확하게 짚이는 것은 없었다.
단순한 B 실수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느껴졌다. 그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통제 욕구의 발현이었다. ‘모든 걸 내 손 안에 두고 싶다’는 불안한 그림자.
팀장도 그 상황을 알아차렸다. “B가 너무 혼자 하려 한다.”
프로젝트는 산으로 갔고, 남은 건 친분의 폐허였다.
A와 B는 다른 인물이었지만, 그들의 행동 밑에는 묘하게 닮은 심리가 있었다.
성과의 공을 독식하고 싶은 인정 욕구, 주목받고 싶은 관종 욕구, 내가 리드하지 않으면 불안한 통제 욕구...
사실 이런 욕구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협업이라는 무대에서는 더 쉽게 폭주하는 성질의 욕구들이었다.
특히 ‘친한 사이’에서는 직언과 경계가 흐려지기 때문에, 관계가 더 빨리 무너진다. 기대와 신뢰가 두터울수록 실망과 불안의 골은 더 깊게 패였다.
나는 일련의 상황을 조금 지켜본 뒤, A와 B 각각에게 내가 느낀 불편함을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A는 “오해가 있었다”고 했고, B는 “파트 구성 자체를 몰랐다”고 했다.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변명들이었지만, 굳이 논쟁을 이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협업을 일단락 짓고, 친분도, 일 관계도 조용히 손절했다. 그 이후로 그들에 대해 남은 건 분노가 아니라 후회와 반성이었다. 나라도 조금 더 일찍 협업의 경계를 명확히 짚고 넘어갔어야 했다. ‘친하니까 괜찮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이 결국 패착이었다. 친분이 깊을수록 오히려 더 일찍, 더 분명히 경계를 세워야 했다. 그리고 친분의 깊이와 관계없이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견제와 경쟁의 심리가 본능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는 구조적인 기본값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조직 관점에서 보면, 이런 갈등은 단순 개인 성격이나 코드 문제만으로 치부하면 안된다.
리더는 구성원들 간 협업 관계의 역동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특정 인물의 독주나 패싱은 종종 ‘성과지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과 과한 인정 욕구가 숨어 있다. 그래서 리더의 역할은 단순히 ‘성과를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의 긴장을 조율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각자의 기여를 객관적으로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성과를 만들어갈 수 있는 구조와 개입의 설계도 중요하다. 팀이 신뢰를 잃는 건 언제나 “누가 더 많이 일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누구를 배제했는가”의 문제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헙업의 신뢰는 결코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으로 쌓이지 않는다.
진짜 신뢰는 역할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필요할 때 건강하게 개입할 수 있는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결국 일은 사람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함께 일하는 동안 드러나는 사소한 욕심과 불편한 감정은 관계를 시험한다. 이때 관계를 지켜주는 것은 ‘사람 좋은 성격’이 아니라, 일에 대한 명확한 원칙과 역할의 합의다.
사람은 왜 별로일까.아마도 협업의 순간, 자신 안의 불안을 감당하지 못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