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킬 리더십의 탄생
K가 팀장으로 부임한 첫날, 사무실의 공기는 묘하게 달라졌다.
누군가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건 아닌데’라는 낯선 긴장감이 공기 중에 섞여 있었다. 평소 습자지처럼 가벼운 언행으로 주변에 적을 많이 두고 있던 인물이었다. 왜 하필 K가 팀장이 되어야 하는지 모두가 납득하기 어려운 눈치였지만, 회사에서의 부조리 역시 일상의 일부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조용한 체념’으로 수용했다. 그날 이후, K가 맡게 된 팀은 K가 내뿜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늪으로 빠르게 빠져 들어갔다.
“나는 왜 팀에 선임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솔직히 팀장도 필요 없다고 생각해. 자, 선임 하고 싶은 사람 손~”
이런 농담 같은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팀 회의 시간에 테이블에 올라왔고, 모두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K는 기존의 규칙을 뒤집으며 ‘자유로운 팀’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그 자유가 방향도, 기준도, 책임도 없는 ‘공중부양’ 상태에 가까웠다. 그가 가장 관심을 기울인 건 오로지 예산이었다. 비용을 줄이는 데 집착 수준을 넘어, 비용이 드는 사업 자체를 없애기에 이르렀다. 팀 회의 때마다 “그건 굳이 우리 돈으로 해야 하나요?”가 K의 단골 멘트였다. 팀의 일은 점점 줄었고, 팀원들은 눈치 보며 남아있는 일만 간신히 유지했다. 새로운 시도나 도전은 말 꺼내기도 어려웠다. K에게 팀의 존재 이유는 ‘비용을 쓰지 않는 조직’이 되는 것이었다.
동료 팀장들과의 관계도 늘 시끄러웠다.
회의 때마다 K는 불만을 터뜨렸다.
“이 일은 왜 우리 팀이 해야 하죠?”
“우리팀 인력을 왜 TF에 내어놓아야 하죠?”
부서 간 협업은 불필요한 낭비로 여겼고, 다른 팀장들과 언성이 높아지는 일도 잦았다. K는 마치 박치기를 해야 존재 가치가 올라가는 범퍼카처럼, 사내외 가릴 것 없이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다녔다. 심지어 외부 파트너 중에서도 우리가 ‘을’의 포지션에서 '모셔야' 하는 사람들에게조차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결과는 뻔했다. K 개인의 평판만이 아니라, 팀 전체의 신뢰도 함께 떨어졌다.
아이러니하게 K의 팀원들은 이상할 만큼 착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자기 몫을 해내는 인재들이었고, 업무 피드백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팀이었다. 그런 팀이었기에 K의 근본 없는 조직 운영에도 ‘휴…’ 한숨으로 삭히며 버텼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K가 내뱉는 팀원들에 대한 험담이 회사 안을 떠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A는 이래서 별로고, B는 저래서 별로고…”
심지어 사업부 회의와 같은 공식 자리에서도 K는 공공연히 팀킬을 자행했다. 팀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팀원들의 잘못으로 떠넘겼다. 더러운 말들은 더 빨리 날개를 달고 퍼지는 법. 팀원들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 문제였다.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시작됐다.
팀원들은 점점 말을 아꼈고, K의 눈을 피했다. 버티던 사람들은 결국 K에게 등을 돌렸다. K는 서운함을 팀장 권한을 휘두르며 표현했다. 평가 시즌이 다가오자, 자신에게 반기를 든 이들을 낮게 평가하며 인사기록에 상처를 냈다. 누가 봐도 지나친 대응이었다. 팀은 삽시간에 완전히 무너졌다.
K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팀원 시절의 K는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성실맨이라는 평가를 받던 사람이었다. 오히려 추진력이 과해 이리저리 부딪히며 결과를 내는 타입이었다. 그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도 분명히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왜 리더가 된 순간, 그는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주변의 평을 종합해보면, K가 흑화되기 시작한 계기는 그의 병가였다. 건강에 이상이 생겨 몇 주 쉬었다가 복귀한 뒤, K는 눈에 띄게 몸을 사렸다. 해오던 일도 줄였고, 책임은 피했다. 성과 압박이 커지자 예산을 줄이고, 일 자체를 없애고 줄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관리’했다.
게다가 그는 평가와 인사 고과에 유난히 민감한 사람이었다.
팀원 시절에는 우당탕탕이라도 자기가 맡은 일을 어떻게든 밀어붙이며 자신의 성과를 챙기려 했다. 그런데 팀장이 되고 실무를 손에서 놓게되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통로를 잃은 듯 해 보였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동료 팀장들과 불필요한 힘겨루기를 하고, 팀원들을 험담하며 자신이 더 유능해 보이도록 연출했다. 마치 “나는 그래도 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처럼. 팀장의 역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팀원같은 팀장"의 전형이었다.
그의 내면에 깔린 대표 정서는 불안이었다.
리더로서의 통제력을 잃는다는 건, 어떤 사람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지지를 받으며 오른 자리도 아닌만큼, 실무까지 내려놓아야 하자, 그는 조직 안에서 자신이 더 이상 ‘쓸모 있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 불안은 기형적인 통제 욕구로 바뀌었고, 공격으로 이어졌다. 결국 그는 자신을 지키려다, 팀을 공격하게 된 것이다. 리더십의 실패는 대개 악의가 아니라 불안에서 시작된다. K가 ‘별로’인 사람이 된 건, 갑자기 성격이 바뀌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리더라는 자리가 그 안에 있던 불안을 증폭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을 관리하거나 돌려세워줄 시스템은 조직에 없었다. 무관심한 관망과 평가만 있었지, 회복은 없었다.
사람을 평가하는 제도는 있어도, 리더를 되돌리고 회복시키는 시스템은 없다. 그게 이 팀의 사례 뿐 아닌 수많은 조직의 진짜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