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폐사지에서

by 박재옥 시인


황매산 아래 영암사지 금당 터

서성거리던 등산객들 산으로 오르고 나자

폐사지에는 나와 돌사자만 남는다

혼자 앉아서 사라진 절집의 규모를 궁리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 바탕에 흰줄 무늬 나비 한 마리

팽팽한 정적의 수평을 헤집고 다니는 곡선이 부드럽다

나비의 궤적을 쫓다가 그만 눈이 번쩍 뜨인다

나비는 절이 번성했던 시절 주지승의 혼령이었던 게다

천 년 동안 비워둔 절집 소식이 궁금해서 잠시 마실 나온 거다

그래서 초석 위에 앉아서 더듬이로 회상하다가

기단으로 옮겨가서 명상에 잠기는 거다

그러니 폐허가 아름다운 게지

저승과 내통하는 문을 숨겨두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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