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화 빌런 B
뽀얗고 항상 미소를 띤 얼굴, 그리고 친절한 말투까지.
누구든 빌런 B를 처음 만나면 선한양처럼 보였고, 나 또한 그랬다.
빌런 B는 누구를 대하든 항상 친절했다.
때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아부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빌런 B의 부드러운 미소 앞에서 그런 의심은 금세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그 친절은 가면에 불과했다.
빌런 B의 진짜 얼굴은 내가 팀장이 되고 난 후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빌런 B는 어느 날부터 내게 다가와 팀원들을 하나 둘 헐뜯기 시작했다.
대부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었고, 사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그런 비난이 입에서 오르내리는 경우를 봐왔기에 처음에는 빌런 B의 푸념정도로 이해하고 들어 둘 수 있었다.
"저 친구는 일을 제대로 못합니다. 그런데 어제도 일찍 퇴근했더라고요"
"외주 업체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일한 결과를 보면 수준이 너무 낮아요"
빌런 B는 언제나 새로운 사람들을 나에게 험담했다.
같은 팀원뿐 아니라 심지어 타 팀 팀장, 임원, 그리고 퇴사한 전임 팀장까지...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는 늘 빌런 B의 험담을 들어주고, 달래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사실 업무만으로도 바빴는데 빌런 B의 불만까지 거의 매일 들어주다 보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또한 빌런 B는 자신의 불만에 대해서 내가 피드백을 주지 않거나 공감을 하지 않으면 그것 조차도 불만의 대상으로 보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빌런 B의 '레퍼토리'는 늘어만 갔고, 결국 나 역시 빌런 B의 뒷담화 대상이 되었다.
어느 날, 직속 상사인 임원과 내가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팀장님, 빌런 B를 너무 믿지 마세요"
임원이 내게 얘기했다.
나는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임원이 대답했다.
"아. 빌런 B가 입이 좀 가벼워서, 다른 사람들 말하고 다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사실 팀장님 얘기도 저한데 했었습니다. 저는 별거 아니라서 따로 말씀을 안 드렸던 거고요."
나는 대답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빌런 B는 결코 앞에 나서지 않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늘 조용했고, 문제 상황이 터져도 가만히 있었다.
대신 그는 일대일의 은밀한 공간에서 불만과 독설을 쏟아냈다.
그 대상에는 나도 있었고, 나는 빌런 B가 나에 대해서도 뒷말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빌런 B 가 나를 잡고 다른 이의 험담이나 가십성 얘기를 하면 너무 힘이 들었다.
심리 성향 테스트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회사에서 워크숍을 갔다.
앞서 등장했던 빌런 R로 인해 안 그래도 엉망인 조직문화는 더욱더 엉망이 된 상태였고, 빌런 R 도 그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팀워크를 다지기 위한 워크숍을 진행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로 간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진행했던 공개 심리 성향 테스트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남 앞에서 의견을 드러내길 꺼리며, 작은 상처에도 쉽게 상처받는다.
주변에서 먼저 알아서 보듬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빌런 B는 겉으로는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뒤에서 은밀하게 조직을 흔드는 교란자였다.
그의 무기는 업무 능력도, 권력도 아닌 '말', 아니 '거짓말'이었다.
사실이 아닌 가십을 교묘히 섞어 이간질을 일삼았고, 팀원 간의 갈등, 팀 간의 불화, 심지어 남녀 갈등까지 조장했다.
-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