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연구소 : 후안무치 -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제 17 화 빌런 J

by 김해피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수를 하면 인정하고 사과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실수를 해도 미안함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 이야기할 빌런 J다.



실수해도 미안하지 않은 사람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핑계와 얼버무림으로 일관하며,

자기의 잘못이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형 빌런.

그 주인공은 지원팀의 빌런 J다.

빌런 J는 앞서 소개했던 술주정뱅이 빌런 I의 팀원이기도 하다.


처음 본 빌런 J는 친절하고 상냥해 보였다.

여태껏 빌런들의 특징 중 하나는 처음엔 모두 선한 양 같다는 점이었다.


빌런 J 도 마찬가지였다.


빌런 J는 업무 능력이 떨어졌다.

사실 여러 가지 사례가 있지만, 가령 면접자와의 시간약속을 잘못 잡아 자칫 면접당사자가 면접도 참석하지 못할 뻔하고, 면접관으로 참석한 나와 다른 여러 팀원들도 회의일정 등 기타 일정을 다 바꿔야 한 적도 있는 등 잦은 실수가 많았다.

그래도 이때만 해도 빌런스러움은 당장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그녀의 빌런스러움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죄책감은 사치, 실수는 필수


회사에서는 병가 휴직 중인 직원들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고 회복에만 전념할 수 있게 약간의 경제적 지원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여 해당 사안에 대해서 담당자인 빌런 J에게 문의하였다.


하지만 빌런 J는 단호했다.

휴직 중이라면 회사에서는 어떤 경제적 지원도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몇 번이나 확인을 요청했지만 그녀는 굳건했다.


“안 돼요. 제가 알아봤어요.”


나는 해당 사안에 대해서 지원이 되는 것으로 규정집을 꼼꼼히 읽어보고 그 규정집까지 보여주었으나 그녀는 단호했다.

마치 안방마님이 곳간 잠그고 말하듯 너무나 단호했고, 나는 내가 혹시 잘못 알고 있는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그룹 담당자에게 확인을 하였다.

해당 직원은 최초 당사 담당자인 빌런 J에게 확인해 보라고 했지만, 사정을 듣고는 자신이 알아보고 연락을 준다고 하였다.


그리고 반나절만에 온 연락은 지원이 '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사실 빌런 J가 안된다는 답변을 하기까지도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

함흥차사도 아니고, 조선시대 파발을 보내는 것도, 80년대 팩스를 보내는 시절에도 그보다 답변이 빠를 텐데...

도대체 빌런 J는 뭐가 그리 바쁘고, 뭐가 그리 자신감 넘치게 잘못된 답변은 잘도 하는지..

하지만 사람이기에 실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녀에게 사과까지 바라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와 유사한 답변 정도는 할 줄 알았다.


그녀의 반응은 어땠을까?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사과는 없었다. 책임도 없었다.
그저 불편한 미소와 함께 흘러나온, 면죄부 같은 말 한마디...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후안무치의 전형적인 모습이구나..


나는 씁쓸함에 할 말을 잃었지만, 그 아비에 그 자식이고, 그 밥에 그 나물이듯, 이미 앞서 소개했던 빌런 I 밑에 정상적인 팀원이 있길 기대하는 건 사치인 듯했다.



개인정보 따위는 개나 줘 버려


그뿐만이 아니었다.

휴직 중인 직원이 회사 시스템에 지원 요청을 입력할 때, 관련 개인정보와 민감한 자료는 극히 제한된 사람만 열람할 수 있도록 권한을 설정해야 한다.

보통 결재 승인자, 해당 병가 휴직자 본인, 그리고 지원팀에서도 관련 업무 담당자 등 극히 소수의 인원만 열람을 할 수 있게끔 하여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주인공 빌런 J는 이번에도 실수를 하였다.

그는 해당 자료의 열람 권한을 전체 권한으로 설정해, 지원팀의 모든 사람이 민감한 정보를 볼 수 있도록 해버린 것이다.

이에 해당 사안의 심각성에 대해서 빌런 J에게 문의하였는데 이번에는 빌런 J가 어떤 얘기를 했을까?

놀라지 마시라.

지난번과 토씨하나 바뀌지 않았고, 다만 추가된 문장이 있다면 다음 문장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근데 어차피 제가 입력하면서 저희 팀 권한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저희 팀원들 외에는 다른 사람들은 못 봤을 거예요.”


어찌 이리 당당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말에는 사생활 침해와 수치심에 대한 이해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누군가가 본인의 민감한 정보를 이렇게 쉽게 열람하게 해 두었다면, 그 사람이 느낄 당혹감과 불편함을 상상조차 못 하는 듯했다.


이 사건을 통해, 사람은 기본적인 예의와 책임감, 배려하는 마음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수치와 불편함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말이다.


직접 당해보면, 본인도 느끼는 바가 있으려나?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빌런 J는 여러 빌런스러움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특징이 있는데, 본인이 굉장히 예쁘다고 착각하는 것이었다

사실 외모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폄하하는 것을 나는 극도로 싫어한다.

사람의 내면이 중요해서라기보다는 누가 누군가를 외모로 평가하는 것만큼 비겁한 행동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외모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대부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선천적인 것이고, 그런 선천적인 특성을 가지고 비하하거나 놀리는 것은 너무 비겁하고, 도의적으로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을 차별하거나 놀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외모로 차별을 두고 놀리는 것은 그보다는 덜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쉽게 말하는 경향들이 있다.

하여 나는 외모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행위를 싫어한다.


하지만 빌런 J처럼 자신의 외모를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잘못된 판단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과시하고, 이를 통해 특정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며 미묘하게 고개를 젖히거나, 관심 없는 자리에서도 괜히 주목받는 인물처럼 행동한다.

문제는, 그런 자기 확신과 업무 태만이 묘하게 겹쳐지며 더욱 후안무치한 인상을 만든다는 것.
업무 실수에도 미안함이 없고, 외모에 대한 자기 확신은 당당하다.

아마 그래서 자신이 실수를 해도 모두가 이를 용납해 줄 거라 생각하며 후안무치한 인상의 빌런스러움을 더욱더 증폭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거절은 미덕, 수락은 본능


내가 그런 생각이 확신이 드는 것은, 내가 팀장으로서 지원팀 인원이 고생한다고 식사 대접을 하면 그건 또 잘 받아먹는다는 거다.


업무에선 핑계만 늘어놓던 빌런 J가, 밥상 앞에서는 누구보다 솔직하다.
마치 “이건 내 권리야”라고 말하듯, 호탕하게 웃으며 젓가락을 움직인다.

그리고 빌런스럽게 잘 받아먹는다.

우걱우걱...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문제는 빌런 J 혼자에게 있지 않다.
빌런 J의 팀장, 빌런 I가 모든 걸 방치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몇 차례 빌런 J의 실수를 용납하고 넘어간 적이 있었지만, 이후 반복되는 빌런 J의 실수와 그때마다 뻔뻔한 태도에 빌런 I에게 이런 빌런 J의 태도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빌런이 빌런을 알아보는 법인가..
빌런 I는 잘못을 짚어주지도 않고, 개선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 결과, 빌런 J는 실수와 변명, 자기만족적인 태도를 반복하며,
자신이 문제라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빌런 유형 014 ‘후안무치한 인간형’

특징: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핑계와 얼버무림으로 일관

주요 스킬: 남 탓으로 돌리기, 상황 왜곡, 면죄부 같은 "네 알겠어요.", 그리고 근거 없는 자신감

위험도: 방치되면 조직 전체에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음.


빌런연구소의 교훈 하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성장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사람을 관리자가 방치하면 조직 전체가 무너진다.

후안무치형 빌런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문화를 병들게 하는 존재이다.



물론 다행인 점도 있다.

업무는 망쳐도, 식사 대접은 잘 받아먹으니 최소한 건강 걱정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