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너진 일상

마음의 병 치유기 2

by 김해피

처음 처방받은 약을 복용했을 때, 차분해지는 정도를 넘어 모든 행동과 생각, 그리고 말까지 느려졌다.

또 한편으론 차분해졌다는 느낌도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지속적으로 끓어오르던 분노와 불안감이 이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도 생겼다.


다행히 약을 복용 후 이전의 증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횟수가 줄었을 뿐 불안감과 이따금씩 떠오르는 분노의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후 일주일 정도 지나니 다시 예전과 같은 속도로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게 적응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때때로 충동 조절이 잘 되지 않는 것이었다.


단순히 참을성이 없어졌다고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어느 정도 선을 항상 지키며 일상생활을 잘해왔는데 이제는 선을 넘을 수 있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복용 중인 약물의 부작용을 찾아보니 해당내용이 있었고 주치의에게도 이야기했지만, 리스크를 감안했을 때 복용하는 게 현재는 더 나은 선택이라고 하였다.

일단 숨을 못 쉬며 죽을 것 같은 고통, 특히 운전 중에 위험한 상황이 또다시 발생하면 안 되었기에 나도 그 부분에는 공감을 하였다.


그리고 가장 어려웠던 점은,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약물 복용 횟수가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최초 약 처방 시 약을 먹은 상태에서 불안한 상황이 생기면 추가로 약물을 복용하라는 주치의의 말이 있었다.

하여 반복되는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에 약물을 복용하는 횟수는 점점 늘어났다.


몇 달이 지나며 몸이 차츰 약에 적응해 가던 찰나, 문제가 발생했다.


어느 날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는 직장인 커뮤니티 앱을 열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 앱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사람을 험담하고 그런 험담으로 쾌락을 느끼는 행위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상사들은 달랐다.

경영진 등 주요 보직에 있는 사람들은 해당 앱에 수시로 접속하여 가십성 글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 내용을 공식 회의 석상에서 주제로 삼아 토론하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곤 했다.

하여 만약 해당 안건이 주제로 나왔을 때 사전에 그 내용을 모르면 낭패를 보기 일쑤였고, 때론 질책도 들었다.

그렇기에 원하지 않지만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해당 앱 게시글에는 팀장들에 대한 험담이 많았고, 게다가 어느 날 나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험담까지 올라왔다.

해당 내용을 해명할 수도 없고, 누가 적었는지 알 수 없기에 답답함을 넘어 분노와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나에 대한 사실이 아닌 험담이 잦았던 탓에 통제할 수 없는 불안과 분노가 몰려왔다. 순간 극단적인 감정에 휩싸였지만, 다행히 아내 덕분에 큰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


이후 치료를 받은 뒤에도 2~3일간은 정신적 충격과 피로가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런 내 행동이 내게 남긴 충격과 후회는 나를 다시 한번 깊은 고민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keyword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