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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시작

마음의 병 치유기 3

by 김해피

사실 정확히 어느 시점에 이런 마음의 병이 내게 나타났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


다만 어느 순간 갑자기 내게 온 것은 아니었다.

팀장이 된 후 몇 년간 겪어온 다양한 스트레스.

특히 업무보단 사람에 의한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인 것만은 확실했다.


내가 입사했던 이천 년대 초반과 20년이 흐른 지금, 한국사회는 너무나 많은 것이 변해있다.


최근 K콘텐츠의 세계적인 인기와 더불어 가장 큰 변화는, 아마 내가 직장인이라서 느끼는 것이겠지만, 기업에서의 조직문화의 변화이다.


과거의 대기업조직문화는 딱 한마디로 정의될 수 있다.


병영 문화의 연장선.


군대와 비슷한 수준의 문화였다.

얼차려와 같은 직접적인 가혹행위는 없었지만 요즘 흔히들 얘기하는 꼰대문화가 만연했다.

그리고 그런 조직문화에서 팀장의 권한은 실로 막강했다.

항상 매일매일이 팀장의 불호령이 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였고 연말평가기간이 되면 불이익을 당할까 다들 눈치만 보았다.

또한 아플 때 연차 사용은 고사하고 병원외출 나가는 것조차 질책을 받아가며 간신히 다녀오곤 했었다.


하지만 세월은 흘렀고, 빨리빨리라는 대한민국 문화답게 한국의 기업 문화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많은 변화를 겪었다.

사실 기존의 정상적인 것도 제대로 요구하지 못하는 꼰대문화의 빠른 변화를 나 또한 찬성하고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선을 넘는다는 것이, 그리고 자유라는 미명하에 방임 수준으로 치닫게 된 기업조직문화의 변화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자신의 일은 다하는 책임감과 의무의 전제하에 정당한 권리를 요청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니면 내가 속한 조직만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이런 잘못된 방향으로의 변화, 그리고 그 상황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해관계, 갈등.

그리고 그것을 오롯이 인내하며 감내해야 하는 내 위치가 마음의 병을 얻게 된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잘못된 변화는 내게 있어 한마디로 표현될 수 있었다.


샌드위치...


그것은 위로는 경영진, 그리고 아래로는 팀원, 그사이에 끼인 팀장의 위치를 묘사하기 가장 적절한 단어였다.


사실 경영진은 나보다 연배가 위였고, 직장선배들이었다.

그들은 나보다 조금 먼저 과거의 대기업 조직을 경험했던 이들이고, 내가 지금 느끼는 것과 같은 격세지감을 실감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경영진이라는, 그래서 사원들과 직접적으로 부딪힐 일이 적은 위치에 있었고, 그래서 아직은 과거의 직장 문화가 그들에게는 더 익숙했다.


그에 반해 팀원들인 사원, 대리, 과장은 대부분 2010 이후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MZ 세대가 그들이었고, 그들은 한창 조직문화가 선진화되는 과정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들이었다.

하여 그들에게 기존 기업조직문화는 구태의연한 과거의 산물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팀장이 되었을 당시 조직의 연령 구조 또한 기형적이었다.

나는 40대 중반이었고, 나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30대 후반인 팀원이 다음 연장자였다.


그럼에도 나는 팀장이었기에 경영진들과는 다르게 팀원들을 이해해야 했고, 격변한 조직문화에 빠르게 적응해야만 했다.

그리고 위로는 아직 과거의 조직문화에 익숙한 경영진들의 비위를 맞추며, 양쪽 세대 사이에서 끊임없는 세대 간의 갈등을 조율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묵묵히 감내해야만 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매일 느끼는 압박과 갈등이 조금씩, 그러나 빠르게 쌓여갔고, 그 과정에서 나는 어느 순간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채 마음의 병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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