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다운로드하는 시대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던 목소리는 더 이상 미래의 예고가 아니었다. 칩 이식 수술을 예약하고 나온 거리에서, 그것은 이미 완성된 현실이었음을 깨달았다. 뉴럴링크 칩은 세상을 완전히 재편하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 ‘구시대’의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도심의 한 카페에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보았다.
카페 안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주문을 받는 바리스타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동작으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스팀 밀크를 만들었다. 그의 손목 스냅 각도, 우유 거품의 밀도까지 모든 것이 교과서 그 자체였다. 그의 얼굴에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나 피로감 같은 인간적인 감정이 전혀 없었다. 주문은 손님들의 생각만으로 키오스크에 전송되었고, 그는 그저 뇌로 전달받은 명령에 따라 최적의 맛을 구현하는 로봇처럼 움직였다. ‘마스터 바리스타’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한 그의 뇌는 인간적인 실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거리에는 ‘알고리즘 세대’라 불리는 새로운 인류가 활보했다. 그들은 더 이상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모든 정보와 통신은 칩을 통해 뇌에서 직접 이루어졌기에, 그들의 시선은 늘 정면을 향해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늘 정확한 초점을 유지했고, 걸음걸이는 목적지를 향해 최단 거리로 설정된 내비게이션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수많은 인파가 오갔지만 서로 부딪히는 법이 없었다. 각자의 칩이 실시간으로 주변 보행자의 동선을 예측하고 최적의 회피 경로를 계산해 몸에 명령을 내리기 때문이었다.
내 옆 테이블에서는 두 남자가 비즈니스 미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었지만, 단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방대한 양의 데이터와 계약 조건이 그들의 뇌 사이에서 직접 오고 갔다. 이따금 서로의 관자놀이 부근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이는 것이 유일한 신호였다. 잠시 후, 그들은 완벽하게 같은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없이 헤어졌다. 감정적 오해나 불필요한 언쟁이 제거된, 가장 효율적인 소통 방식이었다.
창가에는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앉아 있었다. 그들 역시 말이 없었다. 남자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여자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남자가 칩을 통해 커피의 맛과 향,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파형을 그녀에게 직접 ‘공유’한 것이다. 그것은 분명 일종의 교감이었지만, 설렘이나 애정이라기보다는 완벽하게 동기화된 데이터 교환처럼 느껴져 어딘가 섬뜩했다.
학교는 박물관의 유물이 되었다.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뇌에 칩을 이식하고 필수 지식 패키지를 다운로드받았다. 더 이상 배움의 과정에서 겪는 좌절과 성취의 기쁨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의 노력과 땀,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얻어내는 깨달음의 순간들은 이제 '비효율'이라는 단어로 낙인찍혔다.
나는 이 차갑고 완벽한 세상에 매료되었다. 나의 불안과 망설임, 끝없는 고민이야말로 이 시대가 말하는 가장 큰 '비효율'이 아니던가. 나는 커피를 마시기까지 5분이나 고민했지만, 저들은 생각과 동시에 최적의 카페인을 섭취한다. 나는 길을 걸을 때마다 수십 번씩 방향을 고민하지만, 저들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목적지로 향한다. 그들을 보며 나는 확신했다. 저 완벽함이야말로 내 텅 빈 접시를 채워줄 유일한 해답이라고. 나의 인간적인 결함들을 치료해 줄 구원이라고. 수술 날짜가 기다려졌다.
제5장: 비타 렌타 (Vita Lenta)
칩을 이식하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은 "비타 렌타"라 불리며 구시대의 유물처럼 취급당했다. 그들은 사회 시스템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버그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내 오랜 친구 라이언도 그중 하나였다. 칩 이식 수술 날짜를 받아놓고, 나는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야겠다는 알 수 없는 충동에 휩싸여 그의 아파트로 향했다.
그의 좁은 아파트는 마치 시간이 멈춘 섬 같았다. 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진한 원두커피 향과 먼지 쌓인 책 냄새, 그리고 과열된 기계의 열기가 뒤섞여 있었다. 벽에는 손으로 그린 게임 캐릭터 스케치와 복잡한 세계관 설정 메모가 빼곡히 붙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낡은 컴퓨터와 빈 커피 컵, 납땜 인두 같은 구시대의 도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나는 그 혼돈 속에서 묘한 안정감을, 동시에 숨 막히는 비효율을 느꼈다.
라이언은 며칠째 씻지도 못한 듯한 초췌한 얼굴로 모니터에 매달려 있었다. 화면 속 게임 캐릭터는 자꾸만 엉뚱한 벽을 뚫고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춤추듯 혼란스럽게 움직였다.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만든 게임의 버그를 고치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지쳐 있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투사처럼, 살아있다는 증거처럼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봐, 이게 대체 몇 달째야?" 나는 그를 한심하다는 듯, 또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봤다. "너도 알잖아. 칩만 있으면 '코딩 전문가' 프로그램을 다운받아서 10분 만에 해결할 버그야. 왜 이렇게 미련하게 고생해?"
그는 내 말에 대답 대신 희미하게 웃으며, 다시 코드 몇 줄을 수정했다. 그러자 캐릭터가 마침내 벽을 뚫지 않고 멈춰 섰다. "됐어!" 라이언이 짧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 작은 성공에 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이 내게는 너무나도 낯설었다. 투자자들이 그에게 조롱하듯 던졌던 말이 떠올랐다. "왜 굳이 느린 길만 고집해? 다운로드할 수 있는 결과를 왜 땀 흘려 만들어?" 그들의 말은 나에게도 당연하게 들렸다. 왜 굳이 좁은 길만 고집할까. 왜 실패와 좌절의 비효율적인 과정을 반복할까.
내 질문에 라이언은 마침내 의자를 돌려 나를 마주 보았다.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지만, 이내 확고한 빛이 서렸다. "왜냐하면... 이건 적어도 내가 겪은 실패잖아. 이 버그, 내가 만들었어. 수백 번 실패하고, 밤새 머리를 쥐어뜯었지. 그리고 마침내 내 손으로 해결했어. 다운로드한 지식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거야. 이 과정 전체가 내 이야기, 내 게임의 일부가 되는 거라고."
그의 말은 답답하게 들렸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게는 완벽한 성공만이 중요했는데, 그는 실패조차 자신의 일부로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그의 비효율적인 노력이 한심하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내 안에서 잊고 있었던 뜨거운 무언가가 움찔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대학 시절, 작은 코딩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친구들과 밤새 환호했던 기억의 잔해 같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잃어버린 생명력의 온기였다.
나는 그의 삶을 경멸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가진 불완전함의 온기가 부럽기도 했다. 그의 방을 채운 커피 향과 지저분한 열정, 그의 눈에 서린 피로와 성취감이 뒤섞인 빛. 이 모든 것이 차갑고 완벽한 바깥세상에는 없는, 진짜 살아있는 것들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나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애써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너처럼 살 자신은 없네." 그 말을 남기고 나는 그의 아파트를 나섰다. 문이 닫히는 순간, 따뜻하고 혼란스러운 아날로그의 세계와 차갑고 질서정연한 디지털의 세계가 완벽히 분리되었다.
칩 이식 수술을 하루 앞두고, 나는 마지막으로 부모님을 찾아갔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익숙한 동네에 들어서자, 창밖의 풍경이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수십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벚나무 가로수와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놀이터. 모든 것이 느리고, 변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혹은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듯한 풍경이었다. 이 완벽하지 않은 풍경이 언젠가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될 줄은 그땐 알지 못했다.
집 앞에 차를 세우자 어머니가 마당에서 허브 화분에 물을 주다 말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드셨다.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 얼굴에 세월의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나는 그녀의 미소가 낯설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그리워서 가슴 한쪽이 아릿해져 왔다. 칩이 지배하는 세상의 매끄럽고 계산된 표정들만 보다가,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어머니의 주름진 미소를 마주하니 마치 다른 시대의 유물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부모님은 평생 한 가지 직업, 아버지는 목수, 어머니는 제빵사로 살아왔다. 이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비효율적'이고 '구시대적'인 삶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손은 늘 정직한 땀과 노력의 흔적으로 거칠었고, 그 손으로 만든 가구와 빵에는 느리고 정직한 요리법으로 빚어낸 따스함이 배어 있었다. 아버지가 만든 서툰 모양의 의자는 내 몸에 꼭 맞았고, 어머니가 만든 투박한 빵은 그 어떤 고급 베이커리의 빵보다 깊은 맛이 났다.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저... 내일 칩 이식 수술해요."
내 말에 어머니는 들고 있던 수저를 멈췄다. 쨍그랑, 하고 수저가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어머니는 불안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실망, 슬픔, 그리고 내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깊은 걱정. 나는 그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 뷔페에 차려진 무한한 가능성, 완벽한 성공, 그리고 실패 없는 미래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걱정은 내게 낡고 불필요한 감정처럼 느껴졌다.
"이거 하면 이제 뭐든 될 수 있어요. 의사도, 변호사도, 뭐든요. 방황도 끝이고, 더는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나는 부모님을 안심시키려는 듯, 혹은 나 자신을 설득하려는 듯 말했다. 아버지는 묵묵히 다가와 내 어깨를 토닥였다. 나무껍질처럼 거칠지만 따뜻한 손이었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괜찮아. 네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왠지 모르게 슬픔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되든, 우리 아들이라는 것만 잊지 마라."
어머니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렇게 기계에 의지하지 않아도, 너는 이미 충분히 똑똑하고 훌륭한 아이야. 실패 좀 하면 어때서... 그게 다 널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건데..."
나는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복잡한 감정들을 애써 외면했다. 내게는 그저 이 모든 불안과 망설임이 사라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부모님의 사랑과 걱정은 고마웠지만, 그것은 곧 사라질 구시대의 유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 밤, 따뜻한 집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마음은 이미 내일 아침의 차가운 수술실과 그 너머의 화려한 '인생 뷔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내가 잃게 될 마지막 온기, 그 불완전함 속에 담긴 진짜 사랑의 무게를 알지 못한 채. 창밖의 낡은 놀이터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