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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뷔페 Part3

삶을 다운로드하는 시대

by sarihana

제3부: 뷔페의 첫 접시

제7장: 화려한 미로


칩 이식 수술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했다. 짧은 수면 후 회복실에서 깨어났을 때, 세상은 어제와 똑같아 보였다. 하지만 내 안에는 새로운 우주가 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간호사는 내게 접속 방법을 알려주었다. "눈을 감고, 당신의 의식을 이마 중앙에 집중하세요. 시스템이 당신의 신경망과 동기화를 시작할 겁니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침대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았다. 처음에는 완전한 어둠뿐이었다. '정말 된 건가?' 의심이 들던 순간, 시야의 한가운데서 작은 빛의 점이 나타나더니, 이내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며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찬란한 빛의 터널로 변했다. 마치 워프 드라이브를 하는 우주선처럼, 나는 빛의 터널을 미끄러지듯 통과했다. 짧은 로딩 시퀀스가 끝나자, 차갑고 인공적인 여성의 음성이 내 머릿속에 직접 울렸다.


[신경망 동기화 완료. '인생 뷔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의 접시는 비어있습니다. 첫 번째 요리를 선택하십시오.]


음성과 함께 내 눈앞에는, 아니 내 의식 속에는 거대한 홀이 가상현실처럼 펼쳐졌다.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내 뇌 속의 인터페이스였다. 천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드높은 공간은 금속과 유리, 그리고 푸른색 LED 조명으로 이루어진 듯했다. 벽에는 무한히 이어진 듯한 거울이 설치되어 있어, 홀 안의 모든 빛과 형상이 끝없이 반사되며 현란하고 아름다운 미로를 만들어냈다.


홀 중앙에는 긴 테이블이 거대한 뱀처럼 구불거리며 놓여 있었다.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투명한 진열장 속에는 '딥러닝 전문가', '블록체인 해커', '노벨상 수상자' 같은 이름표가 붙은 경험 패키지들이 차가운 금속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물리적인 칩이 아닌, 다운로드 가능한 데이터 덩어리였다.


나는 그 가상의 공간을 떠다니듯 움직였다. '노벨상 수상자' 패키지에 의식을 집중하자, 그 경험의 '미리보기'가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수십 년간의 고된 연구 끝에 해답을 발견했을 때의 짜릿한 희열, 스톡홀름 시상대에서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느끼는 벅찬 감동이 1초도 안 되는 찰나에 내 전두엽을 스치고 지나갔다. '블록체인 해커'를 바라보자, 거대한 기업의 철벽같은 방화벽을 뚫고 핵심 데이터에 접근했을 때의 아슬아슬한 쾌감이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될 수 있었다. 단 하나의 경험을 선택하여 다운로드하면, 평생의 고민과 불안이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텅 빈 이력서 앞에서 절망하던 내가, 이제는 인류의 위대한 성취들을 쇼핑하고 있었다. 해방감과 함께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동시에 등줄기를 타고 스며드는 서늘한 감각이 나를 붙잡았다.


[경고: 새로운 경험 패키지 다운로드는 기존 신경망의 일부를 영구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선택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시스템의 차가운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내게는 그것조차 달콤한 유혹으로 들렸다. 지금의 나를 재구성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바였다. 나는 기꺼이 과거의 나를 지우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수많은 경험 패키지들 사이를 탐색하는 내 의식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마치 내가 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텅 빈 접시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마지막 순간, 내 눈은 ‘예술가’라는 이름의 패키지에 멈췄다. 한때 내가 서투르게 꿈꿨던 직업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실패의 기억이 담긴 꿈을 다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내 시선은 그 옆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 패키지로 향했다. 그것은 '완벽함', '정확성', '생명'이라는 키워드로 빛나고 있었다.


[외과의사. 예상 다운로드 시간: 3분 12초.]


내 안의 마지막 온기가 이 차가운 금속빛에 흡수되기 직전이었다. 나는 모든 망설임을 지우고, 마음속으로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다운로드 시작."





제8장: 외과의사의 손


"...다운로드 시작."


내 의식 속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뇌가 통째로 전기에 감전된 듯한 충격과 함께 정보의 폭포수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것은 단순한 지식의 주입이 아니었다. 수십 년 경력의 어느 외과의사가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모든 것이었다. 밤샘 공부로 핏발이 섰던 의대 시절의 고통, 첫 수술 집도 때의 아찔한 긴장감, 환자의 죽음 앞에서 느꼈던 처절한 무력감, 그리고 마침내 생명을 구해냈을 때의 벅찬 환희까지. 타인의 삶이 파편화된 영상과 감정 데이터가 되어 내 신경망에 폭력적으로 각인되었다. 나는 비명을 지를 수조차 없었다. 내 것이 아닌 기억의 파도 속에서 나의 존재는 흔적도 없이 잠겨버렸다.


길고도 짧은 3분이 지나고, 다운로드가 완료되었다는 시스템 음성과 함께 시야가 암전되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낯선 수술복을 입고 차갑고 환한 수술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심전도 모니터의 규칙적인 경고음, 수술팀의 나직한 소음이 현실감을 부여했다. "여긴 어디지? 내가 왜..." 공황 상태에 빠지려던 찰나, 뇌 속에서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소리가 들렸다.


[외과의사 프로그램 실행. 환자: 급성 대동맥 박리. 수술을 시작합니다.]


순간, 나의 불안과 공포는 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차갑고 냉철한 이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움직였다. "메스." 내 입에서 나온 것은 내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내가 모르는 권위와 확신이 서려 있었다.


메스를 잡는 순간, 내 손은 더 이상 내가 알던 손이 아니었다. 지난 22년간 연필과 키보드만 잡아왔던 서툰 손은 사라지고, 수만 시간의 훈련으로 다져진 완벽하고 안정된 외과의사의 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다운로드한 수십 년 수련의 완벽한 손놀림이 내 신경을 타고 흘렀다. 손끝은 마치 나를 조종하는 인형사처럼 정교하게 움직였고, 내 몸은 한 치의 오차 없이 환자의 심장을 향해 나아갔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혈관의 복잡한 경로, 장기의 정확한 위치, 실패 없이 수술을 마칠 모든 방법까지.


하지만 그 완벽함 속에서 나는 철저히 고립되었다. 내 머리는 환자의 상태를 분석하고, 최적의 수술 경로를 계산했지만, 내 안의 '나'는 마치 내 몸이라는 극장의 가장 뒷좌석에 앉아, 내가 주연인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나의 손이 만들어내는 완벽한 움직임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손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손에 담긴 긴장감,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 그리고 성공했을 때 느낄 짜릿함은 내 것이 아니었다.

수술 중 환자의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수술팀 간호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내 몸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혈관을 확보하고 응급 약물을 투여했다. 내 뇌는 수만 건의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해결책을 0.1초 만에 찾아냈다. 인간적인 당황이나 공포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 비인간적인 완벽함에, 관객이었던 나는 소름 끼치는 경외감을 느꼈다. 나는 신이 된 듯했지만, 그 신은 스스로의 의지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그저 잘 만들어진 로봇과 같았다.





제9장: 감정 없는 성공


수술은 완벽하게 끝났다. 마지막 봉합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무리되자, 수술실 안에는 짧은 정적이 흘렀다. 삐- 삐- 삐- 안정된 리듬으로 울리는 모니터 소리가 성공을 증명하고 있었다. 내 뇌 속에서 시스템이 차갑게 보고했다.


[수술 성공률: 99.97%. 예상 시간보다 12분 34초 단축. 미션 완료.]


그와 동시에, 칩이 정해준 감정 데이터가 내 신경망으로 주입되었다. 안도감, 성취감, 환희. 나는 그 감정들의 이름을 알 수 있었고, 뇌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정확히 인지했다. 심장 박동이 살짝 빨라지고, 엔도르핀이 분비되는 화학적 작용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내 안에서 스스로 솟아난 것이 아니었다. 마치 혀끝에 감칠맛은 느껴지지만, 속은 여전히 텅 비어 허전한 음식처럼. 다운로드된 희열은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훌륭해! 완벽한 수술이었어!" "신입이 해냈다고는 믿을 수가 없군. 손놀림이 거의 신의 경지였어."


수술복을 벗고 나온 나에게 동료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그들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경외와 놀라움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두꺼운 유리벽을 통과하는 소리처럼 멀게만 들렸다. 나는 그저 텅 빈 미소를 지으며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그램이 내 안면 근육을 움직여 가장 적절한 표정을 만들어주었다. 그들은 내가 이룬 성공을 보고 있었지만, 그 성공의 뒤에 '나'는 없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탈의실에서 혼자 남았을 때, 비로소 프로그램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뇌를 가득 채웠던 방대한 의학 지식과 냉철한 판단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익숙한 나의 불안과 공허함이 다시 그 자리를 채웠다. 나는 피 묻은 수술복을 벗으며 거울 속의 나를 보았다. 낯선 얼굴이었다. 방금 전까지 신의 손을 가졌던 남자의 흔적이 눈빛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세면대의 찬물을 틀어 얼굴에 끼얹었다.


그때, 수술을 총괄했던 베테랑 외과 과장이 들어왔다. 그는 수십 년간 수술실을 지켜온 사람이었다. "정말 대단했네. 특히 혈압이 떨어졌을 때, 자네의 판단은 나라도 쉽게 못 했을 거야. 그런 위기 대처 능력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건가?"


그의 순수한 질문이 비수가 되어 심장에 꽂혔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 3분 만에 다운로드했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애써 웃으며 얼버무렸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겸손하긴. 오늘 밤엔 자네가 주인공이니 한잔 사겠네!"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의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나는 영웅이 아니라, 가장 교묘한 사기꾼이었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성공이었다. 누구나 꿈꾸는 완벽한 성취. 나는 신이 된 듯했지만, 그 신은 감정 없는 로봇과 같았다. 나는 성공의 정상에 서 있었지만, 그곳은 고독하고 차가운 황무지였다. 내 손에는 외과의사라는 명패가 쥐어져 있었지만, 그 손에 담긴 것은 내 땀과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다.


자취방으로 돌아와,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주저앉았다. 텅 빈 접시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요리로 채워졌다. 하지만 나는 그 맛을 느낄 감각 자체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성공의 맛은 이토록 쓰고, 공허했다. 어둠 속에서 나는 낯설어진 내 손을 그저 하염없이 내려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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