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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뷔페 Part6

삶을 다운로드하는 시대

by sarihana

제6부: 나만의 레시피

제16장: 미로 설계자


나는 라이언과 함께 게임을 만들며 밤을 새웠다. 불완전한 코드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나날은 충만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마지막으로 풀어야 할 질문이 남아있었다. '왜 이런 기술이 태어난 걸까?' 이 모든 것을 시작하게 만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나는 라이언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칩의 개발자를 찾아 나섰다. 그는 '인생 뷔페'라는 화려한 미로를 설계하고는, 스스로 그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버린 존재였다.


수소문 끝에 나는 은퇴한 그 박사, 아서 해밀턴을 찾아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화려한 마천루가 아닌, 도심 외곽의 허름한 주택가에 살고 있었다. 낡은 목조 주택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래된 책과 서류 더미가 산처럼 쌓인 거실이 나타났다. 벽에는 뇌신경망의 복잡한 설계도와 함께, 색이 바랜 어린아이의 그림들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첨단 기술의 청사진과 서툰 동심이 기묘한 부조화를 이루는 공간이었다.


창가에 앉아 있던 박사는 깡마른 몸에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슬픔과 회의가 담겨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수많은 실패를 응축해 놓은 듯한 깊은 감정이었다. 나는 그에게 내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칩을 통해 얻었던 완벽한 삶, 제이슨의 붕괴, 그리고 기타를 통해 되찾은 불완전한 나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박사는 희미하게, 그러나 고통스럽게 웃었다. 그는 벽에 붙은 아이의 그림을 가리켰다. "내 딸, 엘라의 그림이라네. 아주 총명하고, 웃음이 많은 아이였지. 하지만... 아이의 뇌 속에 작은 버그가 생겼네. 뇌종양이었어."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나는 세계 최고의 뇌과학자였지만, 내 딸의 뇌 하나를 고치지 못했네. 매일 밤 연구실에 틀어박혀 완벽한 치료법을 찾았지만, 결국 나는 실패했어. 내 딸은 죽었고, 나는 모든 것을 잃었지. 그 실패의 고통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네. 실패를 지워버리자고. 고통을 삭제해 버리자고. 모두가 완벽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고. 내 딸처럼 실패로 고통받는 이들을 구원하고 싶었어."


박사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또 실패했어. 내가 만든 것은 구원의 길이 아니라 미로였어. 사람들은 그 미로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지. 칩은 고통을 지워주었지만, 동시에 삶의 의미를 지워버렸네. 실패 없이는 성장도, 깨달음도 없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지."


그의 고백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완벽함을 향한 집착이 낳은 끔찍한 비극이었다. 칩은 실패의 고통을 덜어주는 도구가 아니라, 삶의 본질을 파괴하는 도구였다. 나는 박사의 손을 잡는 대신, 조용히 내 손을 펼쳐 보였다. 기타 연습으로 생긴 굳은살과 물집 자국이 선명했다.


"박사님, 저는 이 미로에서 당신의 딸이 그렸을 법한, 저만의 서툰 그림을 그리며 길을 찾겠습니다. 실패하더라도, 제 삶의 모든 버그를 제가 직접 해결하면서요. 이 손의 상처가 제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내 손을 본 박사의 눈에서 마침내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회한의 눈물이자, 아주 작은 안도의 눈물처럼 보였다. 미로를 설계한 자와 그 미로에서 탈출한 자 사이에, 아주 길고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제17장: 돌아온 맛


박사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나는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칩을 이식하기 전, 완벽한 미래를 향한 조급함으로 달렸던 그 길을 이제는 천천히, 창밖의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달렸다. 나는 사과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들의 사랑을 비효율적이라 여겼던 과거의 나를, 그들의 걱정을 구시대의 유물이라 치부했던 오만한 아들을 용서받기 위해 돌아가고 있었다.


집 앞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오랜만에 맡는 익숙한 흙냄새와 갓 구운 빵 냄새가 뒤섞여 나를 감쌌다. 현관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나를 보고는 아무 말 없이 와서 꼭 안아주었다. 나는 그녀의 작고 따뜻한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떨었다. 그녀는 내 초췌한 얼굴과 공허한 눈빛이 아닌, 그 너머의 길 잃은 아들을 먼저 알아봐 주었다.


나는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 서툰 말로 그동안 겪었던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칩으로 얻었던 성공의 허무함, 제이슨의 파멸, 그리고 칩을 제거하며 느꼈던 고통과 희망까지. 더 이상 완벽한 아들의 가면은 없었다. 나의 목소리는 불안정했고, 말은 여러 번 끊겼다. 부모님은 그저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이야기를 마쳤을 때, 어머니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때 네 생각은 느껴지는데, 온기가 없어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단다. 괜찮아, 이제라도 돌아와 줘서 고맙다." 아버지는 묵묵히 내 등을 쓸어주시며 말했다. "가장 좋은 목재는 비바람을 맞고 더 단단해지는 법이다. 너도 그럴 게다."


그날 저녁, 우리는 함께 저녁을 준비했다. 나는 서툰 칼질로 양파를 썰었고, 매운 기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 칩이 있었다면 눈물샘조차 통제했겠지만, 지금의 눈물은 진짜였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그것도 해본 사람만 아는 고통이지." 나는 다운로드했던 완벽한 요리 기술 대신, 삐뚤빼뚤한 모양의 양파를 냄비에 넣었다. 아버지는 된장국 간을 보다 젓가락을 놓쳐 국물이 탁자 결 사이로 스며들었다. 나는 순간 흠칫했지만, 아버지는 "이 나무 식탁도 내가 만든 거라 괜찮다. 이것도 다 살아가는 흔적이지."라며 껄껄 웃으셨다. 완벽하지 않았고, 서툴렀고, 실수가 가득했지만 부엌은 온기와 웃음으로 채워져 있었다.


마침내 저녁 식탁이 차려졌다. 아버지는 직접 담근 장으로 끓인 된장국을, 어머니는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한 빵을 내놓으셨다. 내가 만든 양파 볶음은 조금 짰고, 빵은 약간 싱거웠다. 하지만 나는 된장국 한 숟갈을 뜨는 순간,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그 맛은 칩이 주었던 완벽한 미각 데이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잃어버렸던 기억의 온도를 되찾아주는 맛, 진짜 삶의 맛이었다. 땀과 서투름, 그리고 부모님의 따뜻한 눈빛이 담긴 그 맛은, 내가 '인생 뷔페'에서 경험했던 그 어떤 화려한 요리보다 아름답고 깊었다.


나는 그날 밤, 부모님과 함께 설거지를 했다.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그고,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음을, 나의 진짜 삶으로 돌아왔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제18장: 불완전한 화음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친 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기타를 쳤다. 집 안은 부모님이 보시는 낡은 흑백 영화의 희미한 대사 소리와 나의 서툰 기타 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손가락 끝에 단단히 박인 굳은살 덕분에 더 이상 줄을 누르는 고통은 없었다. 코드는 여전히 가끔 삐걱거렸지만, 그것조차 나에게는 익숙하고 정겨운 리듬이 되었다. 칩이 사라지고 다시 불완전해진 내 삶은 마치 낡은 기타의 삐걱대는 소리처럼 투박하고 정직했다.


나는 더 이상 완벽한 연주를 꿈꾸지 않았다. 다운로드했던 음악 지식은 없었지만, 내 심장이 느끼는 대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느리고 단순한 코드 몇 개를 퉁기자, 나만의 작은 멜로디가 만들어졌다. 슬프지만 따뜻하고,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오직 나만이 연주할 수 있는 곡이었다.


그때, 열린 창문 너머 옆집에서 어린아이의 맑은 노랫소리가 흘러왔다. 음이 엇갈리고 박자가 뒤틀려도, 아이는 개의치 않고 자기가 만든 노래를 즐겁게 부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연주를 멈추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이의 서툰 멜로디가 내 기타 소리와 겹쳐 거실의 공기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노래에 맞춰 다시 기타를 쳤다. 나의 삐걱대는 연주와 아이의 불안정한 노래. 두 개의 불완전한 소리가 만나 하나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인생은 완벽하게 조율된 오케스트라 연주가 아니라, 이처럼 삐걱대는 소리와 불완전한 음들이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겹쳐 만들어지는 즉흥 연주와 같다는 것을. 실패는 멜로디를 망치는 소음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음악을 더 풍부하고 특별하게 만드는 예측 불가능한 불협화음이었다.


나는 기타를 내려놓고 창가로 다가갔다. 밤의 도시 저편에, 홀로그램처럼 빛나는 '인생 뷔페' 홀의 거대한 간판이 보였다. 한때는 나를 유혹했고, 그 후엔 나를 공포에 떨게 했던 그 불빛이 이제는 그저 멀고 희미한 풍경의 일부로 보였다. 그 아래로 한 젊은이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불안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한때의 내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그를 보니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달려가서 말리고 싶었지만, 나는 그저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저 길의 끝이 미로라는 것을 깨닫는 것 또한 그의 여정일 테니.


나는 처음엔 남이 차려둔 화려한 뷔페를 꿈꿨지만, 이제는 서툴더라도 내가 직접 요리를 올리는 나만의 식탁을 차리고 있었다.


손의 굳은살, 냄비에 남은 서툰 자국, 기타 줄의 삐걱거리는 소리. 이 모든 것이 나만의 '레시피 노트’였다. 텅 비었던 접시는 이제 공허가 아닌, 나의 진짜 삶을 담을 무한한 공간이었다. 칩이 지워버렸던 불완전함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는 것을, 나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나의 삶의 멜로디가, 어둠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그 어떤 소리보다도 선명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에필로그


밤하늘에 뜬 달을 보며 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거나 엿볼 필요가 없었다.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길을 걷고 있었다. 뷔페의 화려한 불빛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지만, 더 이상 나를 유혹하지 못했다. 내가 가진 것은 텅 빈 접시가 아니었다. 땀과 노력, 그리고 실패와 깨달음으로 채워진, 오직 나만이 만들 수 있는 '나만의 레시피'였다.

나는 다시 기타를 고쳐 잡았다. 손가락은 여전히 서툴고, 삐걱거리는 소리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화음이야말로 세상 그 어떤 완벽한 연주보다 아름답고 의미 있는 나의 멜로디였다. 이 삶은, 내가 직접 만든 가장 맛있는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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