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명절인데..

by 김하정

명절이 좋긴 합니다. 아이들이 돌아옵니다. 둘째 아이가 먼저 도착시간을 알리고 기차역까지 마중 나갑니다.

가방 외에 신줏단지 모시듯 상자를 받들고 있습니다. 학생이 무슨 선물이야? 했더니 '그래도 명절인데'

빈손으로 오기는 머쓱했답니다. 해리포터 호그와트 하우스가 그려져 있습니다. 모두 모였을 때 개봉하기로 합니다.

이번엔 큰아이가 당도합니다. 한 달 해외여행을 감행해도 될 만큼 큰 캐리어를 대동하고 거창하게 옵니다.

자그마한 상자 3개를 식탁에 올립니다. 죄 많은 대학원생이 과제에 찌들어 살기 바쁠 텐데 한 개면 됐지 과하다

한소리 합니다. 약속이나 하듯 하는 말이 '그래도 명절인데'입니다. 명절 두 번만 했다간 등록금 털겠다

혼나면서도 혼나지 않는 분위기, 주최 측에 참패입니다.

퇴근길 아빠 손에 늘 뭔가가 들려있었다는 것을, 그걸 반기는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지요.

교육이란 백 마디 말보다 시각적인 것이 우세하다는 것을, 거기에 기억이 맞물려 있으니 어벤저스급 효과입니다.

하나 마나 한 내 잔소리도 빠지면 서운한 감초로 자리한다는 것도 알지만 괜히 좋은 건 남편이 다 했다는 느낌이 들어 슬쩍 김이 새긴 합니다. 나도 잔소리 말고 좀 우아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 거겠죠.

하나하나씩 개봉하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 먹는 거라서 칼로리가 걱정되긴 하지만 오감을 자극하는 것을 이겨낼 재간이 없습니다. 제일 먼저 해리포터 상자가 궁금합니다. 9와 3/4 버금가는 마음으로 오픈합니다.

4가지의 도넛인데, 각기 다른 색깔로 덮여 있는 위로, 고유의 문양이 그려진 방패 모양의 초콜릿이 얹어 있습니다.

호그와트 기숙사 배정 배지 배틀입니다. 지혜를 상징하는 래번클로 파란 독수리는 연관이 있는 오빠에게 헌사합니다. 그리핀도르 용기의 자주색 사자는 엄마가, 후풀푸프 포용은 노란색 바탕에 회색 오소리로 둘째가 차지합니다. 마지막으로 야망에 슬리데린 초록뱀은 다들 꺼려 하다 아빠가 낙점합니다. 주문 소리도 소름 돋습니다. 이미지도 그렇지만 음식에 뱀은 좀 무리다 싶습니다. 맛은 다 공유하는 것으로 세분합니다. 스토리가 있으니 두 배로 즐겁습니다, 안목이 돋보입니다.

이번에는 양으로 승부하는 큰아이의 출품작입니다. 먼저 호두과자는 스테디셀러라 무난하게 통과, 딸기 못지는 위에 크림이 엷게 발라져 있고 그 위에 발그레한 가루가 뿌려져 있어 거기까진 예뻤는데 플라스틱 캡슐이 씌워져 있는 게 한의원 부항기를 연상하게 해서 포장에서 실패입니다. 마지막으로 내용물도 각각 옥수수. 양갱 맛. 팥. 치즈 다 다르면서 에워싸고 있는 막도 오징어 먹물. 카스텔라 색깔이라 맛 색깔 다 갖춘 파노라마급입니다.

다양함에 있어서는 큰아이의 것이 우세하지만 임팩트 면에서는 기숙사 주문까지 곁들여가며 재현하는, 스토리가

탄탄한 둘째 아이의 승입니다.

결속된 이름 가족입니다. 때론 가깝다는 이유로, 편하다는 이유로 온갖 무례가 넘나들기도 해서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중 한 사람이라도 힘든 일이 생기면 약속이나 한 듯 벤치 클리어링 할 태세가 상시 갖춰져 있는 괴력의 군단임에는 말해 뭐 하겠습니까?! 오남용만 주의하면 든든한 뒷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마음껏 충전하고 연휴 끝에 손을 겹쳐 하늘로 쏘아 올리며 세상으로 돌격할 수 있게 잘 보필하는 것이 내 임무인 듯합니다. 쌀 씻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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