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와 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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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헌수



우리의 역사에 나타나는 마고라는 이름의 여인은 두 분이 계신데 한 분은 우리가 사는 땅을 만들어 주신 마고할미이고, 다른 한 분은 하늘에서 삼베를 짜던 마고 천녀님이시다.

마고할미는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머릿속에 살아온 전설 속의 존재인데 어마어마한 거인이었다고 전해진다.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 큰 섬을 베고 누우면 오른발은 동해바다에 왼발은 서해바다에 담글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커다란 사람이었다.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에 하늘이 무너져 내려 어둡고 컴컴한 세상이 되었는데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니 하늘과 땅이 다시 갈라졌고 해와 달과 별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손이 크고 힘이 좋아서 쭉쭉 긁으면 산이 되고 들이 되고 계곡이 되었다. 한바탕 오줌을 누니 온 동네에 물난리가 나고 그 물이 흘러서 강이 되고 바다가 되었다.

배가 고플 땐 산 하나를 통째로 뽑아 먹었는데 먹다 남은 찌꺼기를 뱉으니 북쪽으로 날아가 백두산이 되고 남쪽으로 날아가 한라산이 되었다. 크게 한숨을 내쉬면 흙과 돌과 나무들이 휩쓸려 멀리 날아갔는데, 이 물체들이 떨어진 자리가 황량한 만주 벌판이 되었다.

나중에는 인간세상을 다스려 보겠다고 둥근돌을 주워서 옥황상제의 흉내를 내다가 천제님의 노여움을 사고, 물장난을 치다가 물난리가 나게 하고, 새 옷을 입고 춤을 추다가 옷자락으로 태양을 가려서 흉년이 들게 하여 사람들의 원망을 듣게 되었다

더 이상 이 땅에 머무를 수 없게 되자 마고할미는 홀연히 사라졌고 할머니의 좋은 이야기와 나쁜 이야기들이 후손들의 입으로 입으로 전해지고 다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덧붙여지면서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어 우리 민족 정서의 뿌리가 되었다.


우리에게 문명을 가져다준 고맙고 소중한 두 번째 마고는 하늘에서 옷감을 짜던 천제님의 따님인 마고 공주님이다. 공주님의 솜씨는 신기에 가까워서 그녀가 짠 옷감은 가볍기가 거미줄 같았고 잠자리 날개보다 더 투명하였으며 안에서는 밖이 훤히 보였으나 밖에서는 속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천계에 사는 모든 신들이 그녀의 솜씨를 높이 칭송하였고 누구인지 몰라도 그녀의 배필은 행운아이며 다음 세상을 다스릴 큰 인물일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천제님께서도 내심 점찍어 놓은 부마감이 있었으나 공주님은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다며 내켜하지 않았다.


어느 날 공주님은 우연히 인간세상을 내려다보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동물가죽을 걸치거나 풀이나 나뭇잎을 엮어 몸을 겨우 가리고 살고 있는 모습에 민망함과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공주님은 천제님께 인간세상에 내려가 사람들에게 옷감 짜는 기술을 알려주겠다고 간청하였다. 천제님은 망설여졌으나 빨리 돌아와서 아버님의 말씀대로 결혼하겠다는 약조를 받고 나서 허락하여 주셨다.

공주님은 여러 나무들을 잘 살펴서 실을 뽑아내기에 적합한 삼나무를 찾아내고 사람들에게 심게 하였다. 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실을 뽑아내는 힘든 기술은 남자들에게 알려주어 작업하게 하였고, 실을 꼬고 옷감을 짜는 방법은 아낙네들에게 알려주어 익숙해지게 하였다.

천상세계 일은 까맣게 잊고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사람들과 이울려 살아오던 공주님의 눈에 어느 날 문뜩 소를 모는 목동의 모습이 들어왔다. 천계에서 살 때 한번쯤 본 듯한 친근한 얼굴에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한 미소는 공주님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하게 하였다. 상대편 목동도 공주님과 눈이 마주치자 꿈속에서나 본 듯한 선녀 같은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겨서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깊어지고 달콤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자연히 공주님은 삼베 짜는 일에 정성을 덜 들이게 되었고 목동 또한 소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감싸주고 가려주려 하였으나 이 소식은 하늘에 계신 천제님이 알게 되었고 아버지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하계 사람과 사랑에 빠진 딸에게 크게 실망한 천제님은 공주님을 강제로 소환하여 멀고 먼 은하수 동쪽에 있는 외딴 별로 유배시켰다.

한편 목동은 갑자기 사라진 공주님을 찾아 헤매다 지쳐 쓰러지고 그리움과 절망감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다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내려다본 공주님의 어머니이신 황후마마께서 하늘로 불러올려 새 생명을 주고 은하수 서쪽에 있는 별에 살게 하였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비가 많이 오는 날 천제님의 눈을 피해서 만나게 해 주었다.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복한 까치와 까마귀가 자신들의 머리를 맞대어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 두 사람의 상봉을 도와주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공주가 사는 별은 직녀성, 목동이 사는 별은 견우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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