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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족 사람들은 아기공주님이 임검이 되어 고향땅으로 돌아오신다는 소식에 들떠있었다. 거리를 청소하고 궁궐을 단장하며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웅족 사람들은 공주님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 여왕님에 대한 안타까움과 어미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타향에서 자란 아기 공주에 대한 측은함도 함께 섞여 있었다. 한편 새로 맞이할 공주님 시대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부풀어 있었는데 그것은 과거 여왕님 시절 잘 살았었다는 기억과 향수가 가슴깊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픈 여왕님을 모시고 신시로 내려왔다가 공주님을 돌보기 위하여 남아있던 일곱 시녀들도 모두 공주님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하였고, 공주님의 부군이자 풍백의 아들인 방천은 함께 큰일을 할 수 있는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불러 모았다. 적지 않은 인원들이 공주님과 동행하기로 마음먹었고 천왕님께서는 큰 배를 마련해 주어 이들의 용기 있는 결심에 힘을 실어 주셨다.
열렬한 환영과 아낌없는 성원 속에 공주님은 웅시국의 임검이자 여왕이 되셨고 나라 발전을 위하여 세 가지 사업을 계획하였는데, 첫 번째 사업은 천제단을 세우는 일이었다. 천제를 올리고 하늘을 숭배하고 따르는 일은 천손이 되기 위한 첫걸음이고 더 발전하여 하늘의 본성을 이해하는 높은 정신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면 신시주민들에 대한 열등감도 사라질 것이라는 판단들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제단을 건립하는 사업은 여왕님의 남편이신 방천군께서 신시에서 데리고 온 장인들과 힘을 합쳐 진행하기로 하였다. 제단은 원형모양을 삼단으로 둥글게 쌓아 올리기로 하였는데, 하단의 둘레길이는 약 120보 정도로 계획하였고 중단은 90보, 상단은 60보 정도의 크기로 만들기로 하였다. 각단의 높이는 사람키 정도의 높이로 쌓기로 했으며 제단의 둘레에는 위아래가 뚫린 원통모양의 토기를 배치하기로 하였다.
삼단으로 제단을 만드는 것은 천지인을 상징하며 위아래 구멍이 뚫린 토기는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원활히 상통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제단 상단에는 커다란 신단수 나무를 옮겨 심고 널찍한 고인돌로 제단을 마련하여 하늘의 뜻을 내려받고 사람들의 정성을 바쳐 올릴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궂은 날씨가 많아서 공사의 진행이 다소 느려지기도 했지만 주민들 모두가 발 벗고 나서서 애쓴 덕분에 신시배달국의 두 번째 천제단이 웅시국에 세워지게 되었다. 천제단이 완성되자 여왕은 온갖 제물을 마련하고 온 나라 주민들을 불러 모아서 성대하게 천제를 올리며 웅시국 사람들도 모두가 천신숭배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사오니 천손가족의 일원으로 받아 주시기를 간절하게 빌었다.
여왕님의 두 번째 숙원사업은 여신묘를 짓는 일이었다 여신묘는 역대 여왕님의 신상을 흙으로 빚어 모셔놓은 사당과 같은 곳으로 여왕님들의 과거 입적을 찬양하고 존재를 신격화하여 경배하는 신성한 성소이자 신전인 것이다.
신전을 세워서 여신상을 모셔놓고 경배하고 기도할 수 있게 하는 일은 자아를 개발하여 자존감을 높이고 자신감을 되찾아 주체성을 확립하게 하려는 정신문화 사업이었다.
어제는 오늘에 닿아있고 오늘은 내일로 이어진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고 현재 없는 미래도 없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인연과 업보의 고리로 뗄 수 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과거의 일은 부끄러울 수도 있고 만족스러울 수도 있지만 사라지게 하거나 지워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부끄럽다고 감추거나 외면한다면 그 미래는 더욱 창피하고 초라해질 것이고 자랑스럽다고 교만하거나 경거망동하게 되면 더 이상의 자랑스러운 미래는 없을 것이다.
지난 과거를 바르게 평가하여 반성할 것은 깊이 뉘우치고 본받을 만한 일은 계승 발전 시키는 것이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태도라는 역사인식이 여왕님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신상은 반지하 형태로 건축되었는데 전시공관은 王자 모양으로 배치되었다. 크기는 남북으로 70보 정도이고 동서로는 약 50보 정도였다. 통나무로 기둥과 골격을 세우고 진흙으로 벽면을 바르고 토기로 기와를 만들어 지붕에 얹었다. 칸칸이 창문을 뚫어서 바람이 잘 통하고 햇빛이 잘 들어오도록 하였다.
신전의 중앙에는 여왕님의 모친이신 곰네여왕님의 좌상을 주신으로 모셨는데 보통사람의 세 배 정도 크기로 웅장하였고 눈은 옥을 다듬어 만들어서 빛을 받으면 영롱하고 신비로운 광채가 발산되었다. 중앙신전과 더불어 북쪽 신전과 남쪽신전에도 서너 개씩의 여신상을 모셨고 또한 어미곰의 신상도 특별히 제작하여 모셔놓고 근본을 잊지 않도록 하였다.
신전이 완성되고 참배가 시작되자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모여들었고 참배행렬은 쉽게 끊기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고 하루 종일 신전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번의 방문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두 번 세 번씩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멀리 신시에서 소문을 듣고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신전참배의 효과는 전혀 짐작하지 못한 곳에서부터 빠르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신 수준을 높이려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웅시국 사람들은 엉뚱하게도 여신묘 자체를 자랑스러워하였고 아무도 꿈꾸지 못했던 신전을 자신들 손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타 지역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웅시족들은 자신감을 되찾아 배달국의 중요한 일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여왕님의 세 번째 사업은 신시에 모셔두고 돌아오지 못한 어머님의 묘소를 웅시국으로 이장하는 일이었다. 웅시족들의 묘지형태는 적석총인데 돌무덤의 일종이다. 묘혈을 파서 석실을 만들어 시신을 안장하고 그 위에 돌을 사각형의 모양으로 삼단 또는 사단으로 층층이 쌓아 올리는 석곽묘이다.
석곽묘를 만드는 일은 수시로 해오던 일이라서 크게 어려울 것은 없었다. 유골을 수습해서 이장해 오는 일도 아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다지 힘든 일도 아니었다. 한 가지 쉽게 생각할 수만은 없는 부분은 딱히 설득시킬만한 사유도 없이 묘지를 옮기는 것에 대한 신시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이 기회에 인연을 끊으려 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배은망덕하다는 지나친 감정다툼으로 이어지게 된다면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의 결과가 후회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여왕님은 남편을 시아버지인 풍백에게 보내 이일을 상의해 보도록 하였다. 풍백은 묘지를 옮겨가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다고 충고하면서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여왕님이 직접 참배하러 신시를 찾아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며 방문한 김에 천왕님을 알현하고 가시는 것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천왕님께 말씀드려 지금의 자리에 적석총 무덤을 새로 만들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보겠다고 놀랍고도 반가운 해결방안을 마련해 주었다.
천왕님의 배려로 배달국에서 제일 큰 적석총이 조성되었는데 사각형 한 변의 길이가 50보 정도 되고 높이가 사람키의 다섯 배 정도 되는 5층짜리 석곽묘였다. 다소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어느 곳에서나 잘 보이는 명물이 되었다. 일부러 구경하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을 위하여 입구를 열어놓고 안으로 들어와 볼 수 있게 배려하였다.
여왕님의 세 가지 사업은 그럭저럭 10년의 세월에 걸쳐 완성되었다. 많은 물자들이 이리저리 이동하였으며 다수의 사람들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살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한겨레 한민족의 운명공동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