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우사는 수암땅으로 파견할 인사로 발귀리를 천거하였는데 발귀리는 원래 숙신족 사람이었다. 숙신족들은 배달국의 동쪽 땅 넓은 지역에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데, 서쪽으로는 차갑고 푸른 강물이 북쪽에서 굽이 굽이 흘러 내려와 남쪽바다로 들어가고 있고 동쪽에는 크고 높은 산들이 줄지어 솟아 있어서 머물며 살기에는 거칠고 척박하였다. 숙신족들은 주로 목축과 사냥으로 생활하였고 소규모 농경을 병행하였다.
이곳은 원래 환국에 소속된 북방지역이었는데 옛날에는 추운 날씨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아서 환인님의 통치가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점점 기후가 온화하게 변하면서 남쪽지방 사람들이 많이 이주해 들어왔고 특히 서쪽강 유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신시 배달국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발전하고 번성하였다.
숙신족들은 주신, 식신, 직신, 주선 등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표음방식과 소리 내는 습관의 차이일 뿐 숙신과 같은 말이다. 훗날 배달국은 웅시국, 청구국, 숙신국 등과 합쳐지면서 조선이라 불리었는데 이 말 또한 주신에서 비롯되었다.
발귀리는 숙신족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는 현명하고 슬기로운 사람이었다. 자연의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여 자연의 이치에 숨겨있는 우주의 본성을 스스로 파악하였다. 하늘의 별자리와 해와 달의 운행을 연구하여 하늘의 본성은 하나이고 삼라만상 모든 사물에 빠짐없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귀리는 명유선사로부터 선도사상과 선도수행법을 배웠는데 명유는 천왕님을 따라서 신시로 이주해 온 선도수행자인데 수행의 최고 단계를 뛰어넘은 신선의 경지에 도달한 선인이다. 발귀리의 생각의 깊이와 깨달음을 높이 평가한 명유선사는 발귀리에게 대기 중에 흩어져 있는 생명의 기운과 우주의 호흡과 바람의 숨결을 몸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밝음과 어두움, 낮과 밤은 서로 다른 상반된 모습의 자연 현상인데 둘의 본성과 작용 또한 서로 엄연히 구별된다. 물과 불처럼 서로 섞이지 않고 회색지대는 없는 개별적이고 독자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밝음과 어두움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아니하고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어져 나타나기 때문에 영속적인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둘이 아니고 하나일 뿐인 것이다.
이와 같은 음과 양의 본성과 조화의 이치를 터득한 발귀리는 오행이란 만물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요소인 목화토금수가 어느 한쪽이 쇠퇴하지 않게 상생의 고리로 연결되고 또한 어느 한 곳이 극성하지 않게 상극의 고리로 연결되어 완벽한 조화를 추구해 나가는 자연의 질서라는 이치를 파악하게 되었다.
발귀리는 천왕님이 주재하시는 천제에 초대되어 동참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천지인의 커다란 깨우침을 얻게 되었다. 하늘의 뜻은 빈틈없는 천체의 운행질서와 동일하고 음의 기운으로 화합하는 대지의 본질과 다르지 아니하며 소우주인 인간의 마음에 거울처럼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의 내면에는 하늘의 섭리가 깃들어 있고 모든 작용과 행위에는 하늘의 의지가 담겨있다.
하늘의 참된 성품은 원만구족, 불편부당, 상생화합이다. 어느 한쪽이라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무결하며 한편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지 아니하고 공평하다. 하늘의 본성은 불후부정, 영원불변이다. 결코 시들거나 썩지 아니하고 사라지거나 소멸되지 않고 고유함과 청정성을 유지한다.
이와 같은 깨달음을 터득한 발귀리는 천제를 지내는 일은 하늘에 빌어 무엇을 내려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비우고 자연의 섭리와 하나가 되어 하늘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순리대로 따르려는 성스러운 행위라고 정의하였다.
발귀리의 깨달음을 높이 평가한 천왕님께서는 선인의 칭호를 하사하시었고 발귀리는 깨달음의 내용을 노래로 만들어 바쳤다.
수암사람들은 숙신족의 한 갈래이지만 원래 환국사람들이고 천손들이었다. 이들은 옥석을 캐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였고 더 나아가 옥이 갖고 있는 특수성과 상징성 때문에 하늘을 섬기는 성스러운 일이라 여겼다.
발귀리 선인님은 하늘을 바르게 섬기는 일은 채움이 아니라 마음을 온전히 비우는 상태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다른 형상들을 앞세워 진면목을 흐려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수암사람들에게 내려주었고, 하늘의 이름으로 지나친 요구나 보상을 바라서는 안되고 공덕을 쌓는 일은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수행과정의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고 설득하였다.
평소 선인님을 존경하고 흠모해 오던 수암사람 들은 크게 각성하고 부족한 생각에서 비롯된 어리석은 행동을 뉘우치고 곧바로 옥석생산을 재개하고 정상생활을 회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