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술 혁신의 배경(1)

인류 4대 혁신 발명품의 국가, 공산당 유일 이념이 공존하는 국가

by 노바티오Novatio

'나는 중국을 잘~안다!' 라고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일단 피하거나 걸르고 보는 것이 신상에 좋다.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겸손한 사람은 아래처럼 표현한다.


"나는 중국 여러 도시 중에서 베이징 직할시 정도만 약간 압니다, 그것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중국의 특정 도시를 기준으로 뭔가를 좀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믿어도 된다.


내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책의 제목은 '한 권으로 이해하는....'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책들이다.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복잡한 사회적 현상은 그렇게 '한 권으로 이해하거나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도 하다.


어느 사회나 양면성을 띠고 있다. 한국도 세계 경제순위 13위 혹은 14위를 차지하지만, 서울역 인근 등 사회의 이면에는 여전히 노숙자 쉼터가 운영 중이다.


서울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다른 도시들에서도 노숙자들은 존재한다. 다만, 우리 눈에 쉽게 띄지 않을 뿐이다.

중국이 트럼프의 '무역 독재'에 대응하여 84% 관세 부과로 보복하다 (Source: BBC News, 2025-04-10)

한국인 전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한 개‘라고 가정하면, 인구비례만 기준으로 해도 한국보다 27배 정도의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은 ‘27배 많은 다양성‘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한국이 미래에 중국인들과 더불어 살거나 경쟁을 하려면 한국 스스로 최소한 27배 이상의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개인과 사회 양쪽 모두에서 자유로움이 보장되어야 한다. 생각의 자유로움, 행동의 다양성을 아무렇지 않게 수용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다.




중국은 어쩌다가 ‘미국이 저렇게 심하게 견제’할 정도로 기술 강국이 되어 가고 있을까?


중국은 어쩌다가 미국 대통령 말 한마디로 결정되어 부과한 높은 관세율에 대부분의 나라가 수용하거나 전전긍긍할 때 오히려 ‘더블 스코어의 역관세로 미국을 되치기’ 하며 맞짱을 뜰 정도로 강해졌을까?


중국의 기술 혁신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는 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 정부 리더십이 추진하는 정책개별 기업의 혁신 공정을 같이 살펴보아야 균형잡힌 관점을 유지할 수 있다.


중국은 한쪽으로는 화약, 나침반, 종이와 인쇄술 등 세계 문명발달에 가장 중요한 발명품들을 탄생시킨 혁신의 DNA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중국의 혁신적인 발명품들은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확산되며 1600년대 이후 서구 산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중국 한나라 시대로 추정돠는 나침반(Source: www.smith.edu)

식민지 확대에 필요했던 바다 항로 개척(나침반), 식민지 지배에 필요한 무기(화약), 기록과 커뮤니케이션(편지)의 수단이었던 종이인쇄 기술이 없었다면 과연 유럽이 1700년대에 발전할 수 있었을까?


참고로 영국,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등 식민지 개척의 선두주자였던 유럽의 주요 국가는 산업혁명에 필요한 거의 모든 원재료와 노동력을 거의 헐값에 혹은 무료로 점령한 식민지배 국가에서 조달했다.


중국은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격변의 장기적인 기간을 겪으며 심각한 기술적, 경제적 정체에 빠지기도 했다.


고대에는 학자들이 보던 책을 몽땅 불태운 것도 모자라, 살아있는 지식인들을 그대로 땅에 생매장한 분서갱유(B.C 213)가 있었다.

충칭에 있는 문화 혁명 묘지. 최소 1700 명이 사망했으며 400~500 명의 시신이 묘지에 묻혔다. (Source: Wikipedia)

현대에 들어와 1960년대 후반부터 약 10년 동안 자신들의 손으로 자국의 문화와 지식재산을 모조리 파괴한 ‘반달리즘‘(Vandalism, 훼손행위)의 전형인 '무산계급 문화대혁명'(无产阶级文化大革命: 1966년 5월-1976년 10월)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문화대혁명'이란 용어는 문화가 좋은 쪽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중국의 '문화대혁명' 앞에는 '무산계급'이란 용어를 꼭 붙어야 그 성격이 온전히 드러난다.


가진 것이 없는 (플로레타리아) 무산계급에 의한 혁명이었으니, 그 동안 가진 자(지식인, 부르조아)들이 쌓아놓은 사회 전반의 문화를 '자국민들'이 모조리 때려부순, 세계 역사에 보기 드문 사건이다.


이 기간은 과학계와 정규 교육이 공격받고, 대학과 학술지가 폐쇄되며, 지식인들이 육체노동을 위해 유배지로 보내지는 등 중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거의 10년 동안 중국은 새로운 과학자나 공학자를 양성하지 못했다. 나라는 기술적으로 고립되었고, 경제는 정체되었다.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가 주도형 자립 프로젝트는 주요 돌파구를 마련할 잠재력을 보여주었으나, 일반 국민들의 삶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중국은 1964년에 핵 클럽의 다섯 번째 회원국이 되었고, 1970년에 위성을 발사했으며, 그 후 수십 년 동안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

Moon Chung-in, 'Understanding China's peaceful rise', CGTN, 27-Feb-2024


변화의 씨앗은 1974년에 저우언라이 총리가 "4대 현대화"를 제안하면서 뿌려졌는데, 이는 농업, 공업, 국방, 그리고 과학기술의 현대화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과학기술이 국가 전략으로 다시 부상한 것은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과 떵샤오핑의 부상 이후에야 이루어졌다.


1960년부터 1978년까지의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에 이은 후유증으로 인한 자발적 고립과 이데올로기적 격변의 시기는 중국 스스로를 상당한 기술적 부채 국가로 만들었다.


이런 의미에서 떵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은 단순한 실용적 선택이 아닌 국가적 생존 문제 중 하나였다.


(다음에 계속)


<참고자료 References>


Kelly Ng, 'China retaliates against Trump's 'trade tyranny' with 84% tariffs' BBC News, 2025-04-10

Joel, R. Campbell, 'Becoming a Techno-Industrial Power: Chinese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Center for Technology Innovation at Brookings (Institute), April 2013

Science and technology in China - Wikipedia, accessed September 6, 2025,

(China's) Four Modernizations & Deng Xiaoping Leadership of China (1978–1989) on Britaninica & Wikipedia

Moon Chung-in, 'Understanding China's peaceful rise', CGTN, 27-Feb-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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