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대회 D-day 전반전

첫 경기날의 아침

D -day

해뜨기 전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이 방을 비추었다.

심장이 콩닥거려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눈을 뜨니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제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가족들한테는 대회 하루 전에 "나 대회 나간다~."라고 말을 한 것이다. 가족들은 처음에 놀란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줄 알았다며 수긍하기 시작했다. 표정에는 걱정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다가 잘하고 오라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계체량이 있어서 물도 안 마시고 밥도 못 먹었다. 아침밥은 챙겨 먹는 편이라 배가 너무 고프고 고단했다. 냉장고 안에 음식들이 날 기다릴 텐데.


데려다준다는 엄마를 극구 말리며 집을 나섰다. 운동복에 운동 가방을 메고 아무도 없는 동이 트기 전 하늘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먼지도 착 가라앉은 아침 공기가 꽤나 상쾌했다. 학교, 회사를 가는 아침이랑은 다른 느낌이다. 10월의 날씨는 여름에 땀 흘린 나에게 고생했다며 보상을 주는 듯했다.


대회에 참가하는 관원들과 체육관에서 만나 같이 출발하기로 했다. P님은 과일과 간식을 챙겨 와서 응원단 겸 매니저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도착하니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보였고 다른 체육관 사람들이 고루 섞여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때는 정신이 없어서 링을 볼 여유도 없었다.

체육관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해서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었다. 관람석이나 별도의 의자가 없어서 돗자리를 준비해야 한다.


계체량 시작


체중을 재려고 줄을 섰다. 잠을 못 자서 몽롱하고 계속 꿈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현실감이 없어져서 이것도 꿈인가 생시인가 헷갈렸다.

무사히 계체가 통과되고 모든 감각이 되살아나서 꿈에서 깨어나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정신이 번쩍 들면서 위압감이 느껴지는 링이 눈앞에 보였다.


링 위를 올라가서 바닥을 밟아보았다.

평소 체육관에서 밟아본 링이랑 다른 느낌이었다. 링 위를 뛰어보기도 하고 점프도 하고 스텝도 밟으면서 상태를 확인했다. 계체라는 큰 산을 넘어서인지 긴장이 풀렸고 뭘 먹을지 고민이 들었다. 일단 P님이 가져온 과일과 간식을 먹었고 가족들이 준비해 준 주먹밥을 먹고 체중에 대한 압박감이 사라지니 고삐 풀린 말처럼 주섬주섬 뭔가를 계속 먹었다.


"아, 너무 홀가분하다. 체중 걱정 안 하고 마음껏 먹을 수 있다니."


내 경기 순서는 점심 이후에 시작돼서 지금부터 10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여성부 성인부 이렇게 나뉘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초반 경기는 초등부 중고등부 아이들이 나와 시합을 했고 링 아래에서는 체육관마다 응원과 함성으로 겨루면서 열기가 후끈거렸고 땀과 거친 숨으로 가득해 습기도 장난이 아니었다. 우리 체육관 사람들이 나올 때마다 여러 명이 손을 겹쳐 이름을 불러주며 파이팅을 외치고 손을 하늘 위로 뻗는 동작이 적들을 거침없이 물리치고 쳐들어가는 기세 좋은 장군 같았다.


모두가 체중 관리하면서 대회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 걸 안다. 과정이 모여 결실을 맺는 장면을 나는 지금 보고 있는 거다. 나 역시 발목 부상도 있었고 강도 높은 훈련에 당황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버텨서 대회 당일 무사히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대단했다.


같은 팀으로 함께 의지할 수 있고 초면이어도 내적 친분을 느끼며 서로 응원하는 모습이 멋졌다.

안 맞고 더 많이 때릴수록 함성이 커지고 나는 내 경기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함성이 아득해지고 들리지 않을 정도로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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