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대회 D-day 후반전

첫 경기날의 오후

"그렇지! 더 들어가 봐!"

"원투 내! 주먹 내란말이야!"


싸우는 선수를 보며 뒤에서 목청껏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또한 복싱의 묘미인데 선수들의 활약도 있지만 링 밖에서 지시를 하는 세컨도 있다.

'세컨이 콜을 한다. 세컨의 콜을 받는다'.라고 말한다.


보통 세컨은 지도자(코치, 관장, 등등)들이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며 객관적인 판단으로 선수의 경기 승패를 좌우한다. 쉬는 시간에 전략을 짜기도 하고 선수의 멘탈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복싱은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도 그런 멋진 팀을 만들고 싶다.


식권을 받아서 주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식 뷔페였는데 나는 젓가락으로 밥 알을 뒤적거리며 한 알씩 먹었다. 그전까지는 별생각 없다가 갑자기 온몸이 지진이 난 듯 떨려서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같이 간 P님은 답지 않게 긴장한다며 재밌는 이야기도 해주면서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다.


10시간 기다림에 지칠 무렵 내 순서가 다가왔고 경기복을 챙겨 입었다.

준비하는 게 느려서 원래 준비해야 할 시간보다 일찍 준비해 몸을 풀었다. 평소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경기 전에 너무 몸을 풀면 안 된다, 분명 여기서 힘 빼면 링 위에서 지칠 거라고 코치님께 약한 협박을 했다.


밖에서 땀을 낸 뒤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는 안 보였던 상대 선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키도 크고 팔다리도 길쭉했다. 내 이름과 상대방 이름이 호명되자 링 위로 올라갔다.


"파이팅!"

"와아아아아!"


사람들의 환호는 어두운 동굴이 바람을 삼키는 소리 같았다. 기이한 공명음이 웅웅거리며 메아리처럼 퍼졌다. 내 귀에는 응원 소리가 끊겨 들려왔다. 예전에 동남아로 여행 갔을 때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 전 맨 얼굴에 바닷물을 끼얹고 잠수 연습을 하는 도중에 폐쇄 공포를 느꼈는데 지금 위에서 상대를 바라보는데 그 공포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심판이 링 가운데로 불러서 헤드기어, 글러브 상태를 체크하고 마우스 피스를 제대로 꼈는지 확인했다.

그러고 각자 위치로 가 시작종을 기다렸다.


"땡!"


종이 울리자마자 나는 빠르게 상대를 파악하려고 했다. 일단 명치나 바디를 노려 바디잽을 시도했지만 먹히지 않고 상대방의 긴 팔이 내 얼굴에 정타를 날렸다. 나는 맞는 순간 당황해서 이성을 버리고 무차별 공격을 하는 폭격기로 돌변해 무지성 불주먹을 상대에게 마구 퍼붓기 시작했다. 가드를 할 틈도 주지 않고 상대를 코너까지 몰아붙여 원투 연타를 날렸다. 상대방도 초보여서 다행이지 좀 더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나는 카운터를 맞고 비틀거렸을 거다.


심판이 나를 제지하고 나와 상대방을 떨어뜨리고 중립코너로 섰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해서 팔에 힘을 주어 뻣뻣한 차렷 자세로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심판은 상대에게 경기를 더 할 수 있는지 의사를 물어보고 10초 카운터를 세기 시작했다. 상대는 고개를 끄덕이고 경기를 할 수 있음을 표현했고 심판은 '박스!'를 외치며 경기를 재개했다.


"달려가!"


그렇다. 그 콜을 듣자마자 나는 정말 미친개처럼 달려들었다. 그간 스파링을 하면서 '~하지 마라', '약하게 해라.', '하면 안 돼.'라는 억압의 설움을 링 위에서 깨부수듯 상대에게 맞아도 들어가면서 연타를 날렸다. 이를 지켜보던 심판은 나와 상대를 막아섰고 나는 연타를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경기는 심판의 판단으로 중지가 되었고 나는 rsc(referee stop contest) 승으로 우승을 하게 된다.

1라운드가 끝나기 전에 판정이 난 것이다.

내 손이 하늘 위로 들리자 체육관 사람들이 기뻐하며 박수를 치고 함성이 우렁차게 퍼졌다.


손이 위로 뻗어지는 그 느낌은 황홀했다. 팔을 뻗은 채 정말 슈퍼맨이 된 것 마냥 그대로 하늘 위로 올라갈 것만 같았다. 나는 우승해서 행복했다. 앞으로도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서로 악수를 하고 상대방 지도자분께 인사를 하고 심판분에게도 인사를 하고 내려갔다.


축하해 주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 우승이 빛나고 값졌다. 지도자분들의 수고가 있었기에 편하게 경기를 할 수 있었고 P님에게도 고마웠다.


나는 그날 내 경기에 대해서 아쉬움은 없었다. 주변에서 복서답게 해라, 좀 허무하지 않았냐 했지만 글쎄. 그 당시 나는 미흡했고 그 모습 또한 나의 실력이었다. 흥분을 주체 못 해 주먹을 마구 내질렀지만 원투를 많이 내본 것에 대해 의미를 두고 싶었다.


복서답게 냉철하게 체육관에서 스파링 하듯이 폼나게 하면 좋았겠지만 대회로 인해 나의 부족한 점이 뭔지는 확실히 알았으며 앞으로 채워나가면 되니 아쉬워할 것도 없다. 샌드백치는 나, 스파링 하는 나, 실전에서의 내가 삼위일체가 될 수 있도록 많이 갈고닦는 수밖에.


상장과 우승 트로피를 받자 우승이 실감이 되고 가족들에게도 자랑했다. 우승 기념으로 맛있는 것도 먹었다. 당분간 휴식을 취했고 정말 홀가분하게 잠을 잤다. 내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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