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체와 하체가 따로 노는걸요
Q 운동할 때 장비를 구매하는게 좋을까요?
A 있으면 좋아요. 장비는 운동의 날개니까요.
부상도 예방할 수 있고 좋아하는 디자인을 골라서 장비를 갖추면 운동도 재밌어질거에요.
나는 처음에 운동 장비를 구매하지는 않았다.
운동하는데 굳이 새로운 걸 사서 돈을 써야 하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랬던 내가 운동을 하면서 하나 둘씩 개인 장비를 마련하는데 이것 또한 나중에 이야기 해보겠다.
그런고로 집에 있는 운동복과 러닝화를 준비했다.
바깥에서 신는 운동화 말고 체육관에서 신을 수 있는 별도의 운동화가 있어야 했다.
집에 있는 러닝화를 세탁해서 신발 가방에 넣고 백팩을 메고 밖으로 나갔다. 백팩에 신발 하나만 있어서 그런지 가방이 가벼웠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체육관을 다녔다. 거리가 조금 있긴 해도 자전거가 편했다.
체육관에 도착해서 문을 여니 후끈한 열기가 훅 끼쳤다.
코치님이 반갑게 맞이해주셨고 탈의실 안 사물함에 가서 짐을 정리했다. 깨끗이 세탁한 러닝화도 신었고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응원을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처음 하는거라 어색하기도 했고 수업 시작 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는데 뭘하고 있어야 하지 괜히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나는 내가 물통을 가져오지 않은 걸 깨달았다. 다행히 정수기에 일회용 종이컵이 있어서 물을 마셨지만 쉽사리 긴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체육관을 좀 다닌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몸을 풀고 연습을 하고 있었고 아이들이나 초보자들은 한켠에 앉아서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몸을 풀고 스트레칭을 하려고 했는데 아는 스트레칭이 없어서 그냥 발목만 돌리다가 구석 빈자리에 앉아서 처음 분위기를 익힐 겸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코치님의 목소리에 후다닥 일어나서 코치님과 가까운 앞자리에 섰다.
본 운동에 앞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는데 거울이 바로 앞에 있으니까 엄청 부담스러웠다.
평생 살면서 이렇게까지 내 스트레칭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한 적이 있었나.
분명 내 모습인데도 낯선 사람을 바라보는 듯 어색함이 밀려왔다.
스트레칭이 끝나자 코치님은 원투를 배우지 않은 완전 초보와 이미 원투나 기본기를 갖춘 관원들을 나눴다. 기본기를 더 배워야 하는 사람들은 뒤로 물러나 따로 지도를 받았고 나머지는 거울 앞에서 쉐도우 복싱을 시작했다. 나는 슬그머니 뒤로 빠지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허공을 향해 주먹을 뻗는 사람들, 리듬감 있게 스텝을 밟으면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놀림이 마치 춤처럼 보였다.
'나도 혼자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자, 여러분은 지금부터 스텝을 뛰어볼건데요. 복싱의 기본 중에 기본! 스텝이 중요합니다."
"대각선으로 서서 앞 뒤 방향으로 한 번 뛰어보세요. 절 보면서 따라해보세요."
- 기본 자세
1. 오른손잡이는 왼발이 앞으로 오른발을 뒤로 45도 정도로 옆으로 간격 유지
1-1 왼손 잡이는 오른발이 앞으로 왼발을 뒷 발로 자세를 잡는다.
2. 무릎은 살짝 굽히고 발뒤꿈치는 살짝 들린 상태로 있는다.
3. 체중은 발가락 쪽에 둔다.
- 앞으로 이동
1. 앞발 먼저 나가고 뒷발은 앞 발의 거리만큼 따라오기
빠르게 할 때는 뒷발을 박차고 나가야 한다.
- 뒤로 이동
1. 뒷 발 먼저 뒤로 이동
2. 앞 발이 따라감
3. 뒤로 갈때도 발 간격 유지하기
코치님의 시범이 끝나고 나도 앞뒤로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 왜 내 하체가 먼저 앞으로 가고 나중에 상체가 따라가는 거지? 같이 가야 하는데.
거울 속 나는 바람에 날리는 종이 인형처럼 흐느적거리더니 기름칠 안한 로봇처럼 삐걱대고 있었다.
거울 속의 나는 지금 어떤 동작을 하고 있는지 어디가 틀렸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분명 코치님은 꼼꼼하게 잘 알려주는데 몸은 마음을 전혀 못 따라갔다.
코치님 상체와 하체가 따로 놀고 있는데요...? 저 괜찮은가요? 라는 표정으로 코치님을 바라보자 코치님은 나의 스텝을 살펴보더니 다시 자세를 교정해주었다.
옆에 다른 관원들을 보니 배운 지 한 달은 된 것처럼 금방 익히고 칭찬까지 들으면서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스텝을 뛰고 있었고 빠르면 다음 원투 단계까지 나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주눅들지 않았다. 배운 지 하루도 안 된 초보가 체육관에서 스텝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용기있고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안되면 연습하면 되니까 누가 나보다 잘하는건 어쩔 수 없는거고 중요한 건 내가 내 스스로 만족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거울을 보고 일정한 간격으로 앞 뒤로 움직일 수 있는지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스텝 연습만 하니까 땀도 나고 다리에는 묵직한 통증이 스며들었다.
운동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머릿속에는 온통 스텝 생각뿐이었다.
'왜 이렇게 안되는거야. 그냥 대각선으로 일정하게 뛰는건데...'
잘하고 싶었다. 이상하게 욕심이 났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서 근처 공원에서 콩콩이 연습을 했다. (콩콩이 : 콩콩 뛰는 복싱 기본 스텝을 말함)
사람들이 없는 외진 곳에서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혼자서 스텝을 다시 밟아봤다.
삐걱거림은 조금씩 사라지고 발걸음이 유연해졌다. 발끝이 바닥을 톡톡 찍을 때마다 하루 종일 뭉친 마음까지 풀리는 기분이었다.
체육관을 매일 나갔다.
개인 운동하는 사람들, 쉐도우 복싱하는 사람들, 샌드백을 치는 사람들 옆에서 콩콩이 스텝을 연습했다.
콩콩이가 어느 정도 자연스러워졌고 원투까지 진도가 나갔다.
"자 그럼 원투 단계로 넘어갑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포기하지 않고 버틴 보상같아서 벅차기도 했다.
한 달이 지났다. 스텝과 함께 원투를 뻗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스텝과 원투에 적응하지 못했다. 한 달 전의 나라면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걸 두고 스트레스를 받았겠지만 너무 조급해하면 금세 지칠 것 같아 이번에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천천히 해도 괜찮아. 중요한 건 계속 하는거니까.'
'지금 기본기를 제대로 안해두면 나중에 나한테 불리한 상황이 올거야.'
못해도 했고 안돼도 계속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