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의 문을 두드리다.

- 땀 냄새와 가죽 냄새와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Q 처음 체육관 등록이 어려웠나요?

A 결심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리지 등록 이후부터는 쉬워요.


나는 동네에서 모임이나 뭘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도 동네에서 1시간 먼 곳에서 했었는데 처음 해보는 운동이니만큼 꾸준히 가야겠다 싶어서 동네와 먼 곳에서 활동하기의 규칙을 깨고 집과 가까운 곳을 지도에서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근처에 복싱 체육관이 많아서 어디로 갈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내 나름의 기준을 정해서 최대한 조건에 맞는 곳을 고르기로 했다.


- 지도자 경력, 선수 배출 체육관이어야 할 것

- 체육관의 가르침 정도(방치하는지 프로그램이 잘 짜여있는 체계적인 곳인지)

- 거리

- 인지도

- 체육관의 청결 상태

- 체육관의 분위기(재미, 관원들의 연령, 성별 등등)


그중 두 군데로 추려졌는데

A체육관은 지점이 여러 군데 있었고

B체육관은 지점은 적지만 선수 배출로 오래된 정통 명문 체육관이었다.


두 군데 고민 중에 결국 나는 B체육관을 선택했다.

이유는 A의 체육관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를 구경하다가 단체 사진이 많다는 걸 보고

외향적인 곳인가 허거덩 하고 단체 활동에 지레 겁먹어서 선택을 보류했다.

생각보다 나는 굉장히 내향적이고 혼자 활동을 즐기는 은둔자였나보다.


상담 전 날에는 소풍가기 전 아이처럼 들떠서 눈만 말똥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머릿속엔 벌써 샌드백을 치고 링 위에 서 있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 날 밤 나는 아직 가지도 않은 체육관을 몇 번이고 다녀온 꿈을 꾸었다.


살을 에는 바람이 불던 겨울이었고 자전거를 타고 B체육관에 상담을 하러 갔다.

긴장이 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렘과 동시에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자전거 핸들을 잡은 두 손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연식이 있는 건물에 들어갔다. 처음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줄 알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역시 정통 체육관이야. 이런 힘든 것도 견뎌내야지.' 하면서 올라갔는데 내가 간 곳이 하필 후문이라 엘리베이터가 없었던 것이고 다닌 지 일주일 만에 정문쪽에 승강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본 체육관의 풍경은 반짝이는 마룻바닥에 몇몇 분이 앉아서 땀을 흘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고

정체불명의 사이렌 소리와 '땡'하고 종 치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렸다.

신발을 벗고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 짧은 시간 안에 구석구석 빠르게 스캔하며 샌드백과 다양한 운동기구, 링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차가운 공기를 몰아온 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열기 가득한 체육관의 공기에 조금 당황을 했다.


"저 운동 경력은 없어요. 헬스도 안 해봤고 좀 걱정인데 잘할 수 있을까요?"


상담이 진행되면서 걱정이 안심으로 바뀌고 바로 등록을 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복싱의 첫걸음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체육관 등록이 시작의 반이다!


운동을 하면서 느낀 건 '열정은 필요하지만 링 위에서는 열정만으로 되지 않는다.'였다.

냉정함, 냉철한 이성이 필요하다.

흥분해서 정신을 놓고 주먹을 마구 휘두르면 가드가 열리고 연타로 맞는 경우가 생긴다.(경험담)

방어에 익숙하지 않으면 연타에 그냥 속수무책 당하는 것이다. 이처럼 아무런 대책없이 흥분된 상태로 돌격하다가는 어떤 위험에 내가 노출되서 일을 망칠 수도 있고 내 자신을 지킬 수가 없어진다. 그래서 복싱도 인생도 나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이란 것도 불시에 사건이 휘몰아쳐 오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훈련 장비도 내 몸에 맞아야 한다. 균형을 찾으려면 훈련이 필요한데 기술을 익히기 전 장비 착용에 익숙해져야 했다. 체육관에는 공용 헤드기어와 공용 글러브가 있는데 열정의 냄새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나중에 나는 개인 장비를 마련하게 된다. 땀 냄새와 가죽 냄새가 뒤섞이고 열정과 냉정이 공존하는 체육관에서의 생활들이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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