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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글) 옆집방앗간을 기웃거리다

잠깐 들어가 봐도 되나요?

by 여름별아빠

"대문자 T도 이렇게 글을 써요? “


“책 전혀 안 읽을 것 같은데 어떻게 글을 써요?”


두 달 전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 주변 분들의 반응이었다.


그렇다. 부끄럽지만 난 40년 넘게 살아오면서 교과서나 수험서 등 시험공부와 관련된 책 이외에 읽어본 책이 손에 꼽을 정도로 책 읽는 걸 싫어했다.

이상하게도 책 읽는 게 지루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 흔한 소설이나 수필, 시집, 심지어 만화책도 거의 읽지 않았으니 이쯤 되면 거의 “책과 담을 쌓았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빈약한 우리집 거실 책장


책보다는 TV를 보는 편이었다. 그래도 조금의 양심은 있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즐겨보는 드라마나 예능은 거의 보지 않고,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았다.


그래서 우리 집은 그 흔한 케이블 TV 없이 오로지 지상파 방송만 보고 있다. 가끔 아파트에서 서비스로 제공해 주는 종합편성채널이 하나라도 추가되는 날이면 아내와 딸은 아주 환호성을 지른다.


난 책을 읽지 않는 대신 다큐멘터리에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주로 습득한다.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참신한 자막표현이나 내레이션 등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가 글을 쓸 때 참고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책은 읽기 싫지만 다른 방편으로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시는 분들께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시는 걸 추천드리고 싶다. 다큐멘터리도 시사, 여행, 교양, 체험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쓸 때는 분명 한계가 있었고, ‘나이가 들면 입맛도 변하듯’, 나 또한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많은 작가분들의 글과 연재되었던 브런치북들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참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라는 것을 느끼며, 많이 자책하는 중이다. 책이나 글을 많이 안 읽어도 나만의 글을 쓸 수 있다고 믿었던 나의 생각은 큰 자만심이자, 오판이었다.

글을 쓰는 연습보다 많은 글을 읽는 연습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최근에야 절실하게 깨달았다.




또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글은 함축적이고, 간결한 표현으로 상대방을, 정확하게는 윗분들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배웠다.

20여 년 전, 직장상사가 말했다.

“야, 구구절절 쓰는 50장, 100장 보고서는 누구나 다 쓸 수 있다. 100장짜리 보고서를 1장으로 쓸 수 있어야 진짜 잘 쓰는 거다. ”

라는 말을 새겨들으며, 늘 글을 줄이고, 줄여서, 한 장으로 만드는데 집중했다.

그 시절, 이직시험 준비를 할 때도 출근길 지하철에서 나만 알아볼 수 있도록 조그마한 수첩에 공부했던 내용들을 줄이고, 또 줄였다.


그러다 보니 늘 단어에만 집중했고, 어느덧 글을 줄여 쓰는데 익숙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문장을 만들고 이야기를 푸는 방법을 잊어버렸던 것 같다.


브런치에 기승전결에 따라 여러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내시던 작가님들을 보며,


“글 쓰시는 분들 정말 대단하시다.”


라는 것을 새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두 달여 전, 작가 신청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두 개의 글만 저장되어 있는 상태로 브런치 연재를 시작했던 나 자신이 너무 무모한 도전을 했던 것 같다. 5화까지는 그럭저럭 어떻게든 글을 썼지만, 그 다음부터는 매주 연재의 압박을 적지 않게 받았었다. 출장길 기차에서도 글을 썼고, 잠들기 전에도, 출근길 버스에서도 틈나는 대로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조금씩 조금씩 글을 쓰고 저장했다.

이번 마지막 글을 앞두고 1화부터 썼던 글들을 다시 되돌아보니, 너무 두서없는 내용들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도 처음 10화를 목표로 달려왔는데 2화를 더해 어느덧 마지막 12화까지 왔다는 것에 아주 조금의 자기만족을 해보며, 나 자신을 칭찬해 본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어느 날, 5화쯤 글을 썼을 때 아내가 선물을 주었다. 그동안 핸드폰 문자로 글을 쓰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쿠*에서 거금 15,000원을 들여서 무선 블루투스 키보드를 선물해 주었다.

나의 글쓰기 도구, 둘째가 만든 핸드폰 거치대와 아내가 사준 키보드


그걸로 부족했는지 아내와 나의 친지들은 이제는 십시일반 응원댓글로 나를 후원(?)해주고 있다.

‘이 응원금 모아서 내년에는 꼭 쓰리스타에서 저렴한 노트북이라도 하나 장만해야지 ‘라고 부푼 꿈을 안고, 카페 한 구석, 바깥 풍경을 보며,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소소한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지금껏 살면서 블로그도, 카페활동도, SNS도 해보지 않아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방법조차 알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답글도 달고, 다른 작가분들의 글을 읽고, 구독도 하고, 댓글도 달고, 라이킷도 누른다.(비록 아직 너무 많이 서툴고 수줍지만)


이처럼 브런치 글쓰기는 나에게 글을 읽는 법, 소통하는 법, 용기 내는 법 등 많은 것을 알려주며, 삶의 변화를 주었다. 글을 읽고 쓰면서 나의 인생철학과 앞으로의 삶의 방향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의 두 번째 직장인 지금의 직장에서 근무한 지도 10년이 되었다. 이전 직장에서 9년여를 근무하고, 지금의 직장에서 10년, 그렇게 내 직장생활은 늘 10년 주기로 바뀌는 대운처럼,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직장생활 20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내년은 안식년처럼 마음 편하게 1년을 보내려 한다.


그동안 난 욕심(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을 손에 쥐고 놓치지 않기 위해 늘 힘을 주고 살았다. 있는 힘껏 꽉 쥐어진 손은 늘 긴장상태였다.

이제 욕심을 놓은 채 힘을 빼고, 활짝 펼쳐진 손으로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더 쓰다듬어 주고 싶다.

그렇게 매일매일 짜냈던 참기름은 당분간 그만 짜고, 그저 참깨향을 맡으며, 소소한 일상을 즐기고 싶다.




지금껏 참기름 짜는 방앗간 주인으로 열심히 살았으나, 정작 옆집 참기름은 맛보지 못한 채 “내 참기름만 맛있다” 고 자부하는 “우물 안 개구리”였습니다. 이제는 “똑똑” 노크하고 옆집 방앗간에도 들러 다양한 맛의 인생 참기름을 맛보고 싶습니다.

저의 방앗간은 잠시 재정비 후, 새로운 제조기술을 배워서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덜 정제되어 밋밋한 참기름 같은 글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읽어주시고 관심과 응원 보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여름별아빠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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