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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오빠 동생으로 산다는 건

씩씩하게 너의 길을 갔으면 좋겠다

by 여름별아빠

결혼 후 자녀계획을 명확하게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 한 명만 있으면 자라면서 ‘너무 외롭진 않을까’하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리의 바람대로 정말 소중한 딸이 생겼다. 모든 딸을 키우는 엄마들의 로망이기도 하겠지만, 특히나 아내는 훗날 어린 딸의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고, 친구같은 딸과 함께 여행과 쇼핑을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기뻐했다.


첫째 아들이 “태아곤란증”이라는 그 당시 잘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병명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둘째 딸은 임신 초기부터 특히나 신경이 많이 쓰였다. 아내는 정기적으로 산부인과에 갈 때마다 태아의 상태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예쁜 공주님이에요”


2017년 가을, 우리 집 둘째인 귀염둥이 딸이 태어났다. 여름에 태어나 태명이 “여름”인 오빠와 특별한 아이라서 태명이 “별”인 동생, 그렇게 여름별이 탄생되었다.


특별한 선물같이 찾아온 둘째 딸 별이는 우리의 바람대로 기쁨을 주며, 성장해 갔다.


첫째 아들을 키우면서는 아들이 평범한 일상을 조금씩 찾을 때마다 보람을 느낀 반면에,

둘째 딸을 키울 때는 그저 평범한 아이의 성장에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기쁨을 느꼈다.

또한, 동생이 있어 아들은 '가족이란, 작은 사회' 안에서 남매간의 우애를 쌓으며, 많은 것을 배워 나갔고, 밝은 웃음 또한 늘어났다.

간절히 소망했던 귀염둥이 딸로 인해 여름별 가족은 더 열심히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으며, 행복을 찾아갔다.


자폐오빠를 둔 동생

동생과 함께 아들 또한 많이 성장했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우리 부부도 자녀가 아들 혼자일 때는 몰랐지만, 둘째 딸이 태어나 함께 키우면서부터 현실을 보는 눈이 트이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도 아들의 상황을 인정하고, 2018년 여름, 아들은 자폐성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둘째 딸 별이는 자폐오빠를 둔 동생이 되었다.


어느 날 별이가 물었다.


“엄마, 아빠가 나중에 하늘나라 가면 오빠는 어떡해?”


느닷없는 질문에 잠시 몇 초간 말문이 막혔다.


“오빠는 지금도 잘 먹고, 잘 놀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잘 살고 있잖아. 엄마, 아빠 없어도 스스로 잘 살아갈 테니 걱정 안 해도 돼”


막상 이렇게 말은 했지만, 7살 딸이 그동안 느꼈을 걱정과 부담, 그리고 ’ 진짜 우리가 죽으면 여름이는 어떡하나 ‘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오빠보다 4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늘 양보와 배려를 강요했던 것 같다.


“왜 맨날 오빠가 어지럽히는 건 안 혼내고 나만 갖고 뭐라 그러는 건데!”


“그리고 이건 내 건데 왜 오빠 보고 가지고 놀라고 주는 거야! 오빠는 자기 물건 절대 못 만지게 하는데!”


“내가 6살 때도 엄마, 아빠는 나만 양보하라고 하고! “


한 번씩, 9살밖에 안된 딸이 왜 자신만 양보해야 되냐고 눈물을 보이며, 과거의 기억을 꺼낼 때마다,

‘망치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곤 한다.


딸의 말이 맞다. 우리에게 먼저 보살핌을 받아야 할 사람은 늘 동생보다 자폐를 가진 오빠가 우선이었다.

물론 다른 남매들도 서로 질투하고, 싸우며, 투정 부리는 일들이 다반사지만, 별이가 오빠로 인해 점점 더 세상을 빨리 알아가고 삶의 무게를 많이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별이는 엄마, 아빠, 그리고 오빠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는 아이다. 어떤 일이든 늘 가족과 함께하는 걸 좋아하고, 길을 걸을 때마다 서로 손 잡는 걸 좋아하는 아이다.


별이는 나의 버팀목


딸이 없었으면 나는 너무 재미없는 인생을 살았을 것 같다.

매일 퇴근 후, 장난스럽게 애교를 부리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아빠에게 말하는 딸은, “맑은 눈의 수다쟁이”인 아들이 주는 즐거움과 또 다른 매력의 즐거움을 준다.

주말마다 숨바꼭질, 끝말잇기, 술래잡기 등 함께 놀아달라 하는 딸이 있어 오늘을 살 수 있는 것 같다.


나의 메신저 프로필에는 언제나 메인 글로

"여름이는 나의 소망, 별이는 나의 희망“

이라는 말이 게시되어 있다.


이 말은 내가 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첫째 아들 여름이는 마치 소원같이 간절히 기원해야만 꿈이 이루어질 것 같은 소망같은 아이고, 별이는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면 이루어질 것 같은 작은 희망같은 아이다.


난 우리 별이가 여름이 오빠를 보살펴야 한다는 걱정과 부담을 버리고, 그저 자신의 길을 씩씩하게 걸어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공부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서 다양한 것들을 접하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찾았으면 한다.

그건 별이의 꿈이기도 하지만 아빠의 바람이기도 하다.


자폐오빠의 동생으로 산다는 건,

우리 가족 누구도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고, 앞으로 별이가 경험해야 할 마음의 무게조차도 감히 가늠할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 딸 별이는 너무나도 특별한 아이다.

그리고 오늘도 난 되뇌어 본다.


“여름이는 나의 소망, 별이는 나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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