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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라는 산을 오르는 엄마

아끼던 참기름병이 깨졌다.

by 여름별아빠

"악"

대만의 우라이마을 정상 부근에서 엄마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2025년 1월, 엄마와 함께 한 가족여행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어릴 적부터 엄마는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본인에게는 늘 아끼고, 누나와 나에게는 한없이 베푸는 분이셨다.

늘 매사에 똑 부러지시고 강하셨던 엄마는 흔히들 말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힘든 일에도, 슬픈 일에도 늘 평정심을 잃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런 엄마가 누나와 내가 결혼 후 각자의 가정을 꾸리며, 집을 나가면서 걱정이 많아지신 것 같다. 특히 내가 첫째 아들을 낳고부터는 더 그러셨던 것 같다. 오매불망 기다렸던 첫 손자가 발달장애를 안게 되었으니 걱정이 얼마나 많으셨을까 싶다.

당장은 힘들게 손자들을 키울 자식 걱정, 그리고 언젠가 혼자 남겨질 손자들 걱정에 엄마는 매일 ‘걱정’이라는 산을 힘겹게 오르시는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엄마는 지금도 예전처럼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시지만 나의 눈에는 걱정 많은 모습이 뚜렷이 보인다.

우리 남매는 이렇게 희로애락 가득한 세상에서 즐겁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고, 우리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엄마, 아빠께 감사하며, 잘 살아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올해 칠순을 맞이하신 엄마를 위해 삼대(三代)가 함께하는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엄마, 아빠, 아이들과 함께 너무 먼 장거리 비행은 힘들겠다 싶어 가까운 동남아 쪽으로 알아보던 찰나, 평소 엄마가 역사와 문화탐방을 좋아하시고, 비행거리도 비교적 짧은 대만이 제격이다 싶어 대만 타이베이 일대를 여행지로 결정했다.

태어나서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해외여행도 처음일뿐더러, 당연히 삼대(三代)가 함께하는 해외여행도 역시 처음인지라,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렇게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다 같이 가는 해외여행을 드디어 가게 되었다.

너무나 행복했던 대만여행 첫째 날


아침 일찍 김해국제공항에 모인 삼대(三代) 가족, 다들 여행 가는 즐거움에 들뜨고 설레는 표정이었다.

공항에서 아침을 먹고, 출국수속을 하고, 비행기에 탑승해 가족 모두 맨 앞줄에 나란히 앉아 구름을 뚫고 창공을 가르는 비행기와 함께 설레는 마음을 안고 대만으로 떠났다.(우리는 혹시나 아들이 힘들까 봐, 또 다른 분들께 피해를 줄까 싶어 비행기를 타면 가급적 늘 맨 앞줄에 탄다.)

공항에 도착해서 우리가 여행 내내 타고 다닐 차량과 가이드를 만났다. 가이드는 대만에 유학 온 젊은 분이었고, 차량은 우리 가족만 타고 다닐 수 있는 소형버스로 편하게 일정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대만에서의 설레는 여행을 시작했다. 엄마가 특히 보고 싶어 하셨던 국립고궁박물관을 관람하고, 부산의 남포동과 비슷한 분위기인 시먼딩을 구경했다. 아들은 그곳에서도 곱창국수를 아주 맛있게 먹으며, 대만 음식문화도 두루 섭렵하는 누구보다 뛰어난 음식소통능력을 보였다.

숙소는 대만의 랜드마크인 101 타워 바로 옆, 우리나라에도 귀신이 나온다고 해서 방송에 소개된 유명한 특급호텔이었다. 방에서는 101 타워 야경이 아주 가깝게 보였고,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 방으로 미리 예약해 두었던지라, 아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방을 왔다 갔다 하며, 낄낄깔깔거리고, 즐거워했다.

잠시 휴식 후 101 타워에 있는 딤섬으로 유명한 딘타이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다들 입맛에 잘 맞으셨는지 맛있게 드셨고, 특히 엄마는 딤섬 만드는 모습을 구경, 아빠는 금문고량주를 맛보시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셨다.

그렇게 삼대(三代)가 행복한 여행 첫째 날이었다.

딘타이펑에서 즐거운 식사


악몽 같았던 대만여행 둘째 날


여행 둘째 날 오전, 엄마는 유명한 관광지도 좋아하시지만, 그 지역 사람들의 일상과 생활을 함께 접하시는 것도 좋아하신다. 그래서 가족 다 같이 101 타워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누가크래커를 사러 이동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늘 타던 지하철이었지만, 우리나라와 다르게 기역자로 꺾여 있는 좌석과 서로 등을 맞대는 좌석이 있는 대만 지하철을 보고는 마치 처음 지하철을 타는 사람처럼 다들 신기해했다. 여행 둘째 날 출발도 이렇게 즐거운 시작이었다.

오후는 원래 다른 일정이었으나, 엄마가 좋아하실 것 같은 우라이마을로 일정을 바꿔 그곳으로 향했다. 타이베이에서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우라이마을에 도착하니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우라이마을 정상에 올라 한 바퀴 구경을 하고 내려오던 길이었다. 비가 와서 바닥은 상당히 미끄러웠다.


“조심해라”

앞서가던 아들이 휘청거리자, 엄마가 뒤에서 소리치셨다. 그렇게 아들을 붙잡고 조심히 내려오고 있던 찰나,


“악”

엄마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빗길에 미끄러져 넘어지신 엄마는 손목을 잡고 계셨는데 얼핏 보아도 손목이 완전히 부러지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엄마, 괜찮을 거예요. 빨리 가요.”


그때부터 마음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엄마를 부축해 드리며, 차에 타고 빠르게 타이베이 시내로 향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타이베이 시내에 들어서니 퇴근시간이 되어 교통체증 때문에 차는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돼버렸다.

어렵게 교통체증을 뚫고 타이베이시립병원에 도착해서 진료를 보는데 현지 의사도 엑스레이 사진과 손목을 보며, 손목골절이 심하다고, 여기서는 오래 치료를 못하니 한국에 가서 빨리 수술하라고 권했다. 그렇게 부목을 대는 임시조치만 하고, 진통제만 처방받아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여권과 핸드폰이 들어있는 엄마의 가방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부랴부랴 나는 가이드와 함께 택시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가서 가방을 찾아보았다. 가방은 없었고, 당황하며, 경찰서에 가보려던 그때, 현지 운전기사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가 타던 차 의자 밑 깊숙한 곳에 끼어있던 가방을 찾아서 연락한 것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렇게 가방을 찾고 숙소에 도착하니 몸에 기운이 다 빠지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다행히 엄마는 진통제를 드시고, 침대에 누워 안정을 찾고 계셨다. 나와 아내는 그때부터 가이드에게도 연락하고 가장 빠른 비행 편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마땅한 비행 편은 없었고, 우리는 남은 일정 이틀을 소화하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마치 힘들게 짜내서 아끼고 아끼던 명품 참기름병을 실수로 미끄러져 깨져버린 날이었다.”

악몽같았던 우라이마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정심을 되찾다


그렇게 셋째 날이 되고, 우리는 남은 일정을 계획대로 진행할 순 없었다. 일정을 바꿔 엄마, 아빠는 숙소에서 쉬고 계시고, 우리 가족은 가까운 타이베이 시립 동물원이라도 구경 가기로 했다.

타이베이 시립 동물원은 평소 우리나라에서 잘 보지 못했던 코알라, 판다, 하마, 코뿔소 등 다양한 동물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아프셔서 그런지 아이들의 반응은 영 시큰둥했다.

그렇게 동물원을 갔다가 숙소에 돌아오니 엄마, 아빠가 막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고 계셨다. 엄마, 아빠는 우리가 걱정할까 봐 안심시키려고 그러신 건지, 아니면 멀리까지 여행 와서 그냥 호텔 방에 머무르는 게 아쉬우셨던 건지 호텔 주변을 둘러보고 왔다고 하셨다.


“101 타워 주변에도 산책하기 좋고 볼 게 많더라.”


“바로 옆에 타이베이 시청도 있던데 거기도 가봤다. “


엄마의 그런 모습에 괜스레 더 죄송스럽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매일 걱정의 산을 오르시는 엄마는 여태까지 걱정의 산행 덕분인지 본인이 아픈 순간에도 강인한 모습을 보여 주며, 평정심을 찾으려고 애쓰셨다.

여행의 마지막 밤 저녁식사는 101 타워 전망대에서 야경을 보며, 식사를 했는데 멀리 못 가시는 엄마에게 바로 옆 전망대에서의 식사는 그나마 가장 최선의 선택이 되었다.

전망대에서 식사, 그리고 호텔 앞에서

그렇게 마지막 밤이 지나고, 여행 마지막 날은 다시 101 타워를 찾아 전망대를 구경하고, 여행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엄마는 바로 병원에 입원하시고, 수술을 진행하셨다. 퇴원하시던 날은 설날 연휴였는데 손을 못쓰시는 엄마를 위해 내가 음식을 해드렸다. 엄마를 위해 음식을 해 드리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지금도 재활에 열중하시며, 내년에 손목에 있는 핀을 제거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계신다.




대만여행 중에도 손자를 걱정하시며, 우라이 마을 산을 오르시다 크게 다치신 엄마.

엄마를 위한 여행이었는데 참 죄송하고 속이 상했던 여행이었다.

엄마가 앞으로 우리 걱정은 떨쳐 내시고 빨리 쾌차하셔서 조만간 다시 여행을 가고 싶다.

그렇게 “엄마와의 여행이라는 참기름”을 짜기 위해 난 또 열심히 일상의 깨를 볶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도 난 엄마의 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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