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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검프가 부럽다

네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by 여름별아빠

"또 보고 있나? 몇 번째 보는 거고?"

아내의 핀잔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나는 새로운 영화보다는 감명 깊게 본 영화와 좋아하는 영화들을 여러 번 다시 보곤 한다.

특히 요즘엔 이병헌과 박정민 주연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자주 즐겨 본다.

이 영화를 자주 보는 이유는 첫째는 극 중 박정민(오진태)이 우리 아들과 같이 자폐성장애 2급이라는 점에서 유사점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영화 속 상황 하나하나가 내가 겪었던 상황과 너무 유사하여 영화에 빠져들며, 내 삶이 곧 영화 속으로 투영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영화는 자폐성장애 2급에 대한 사실 구현과 가족들의 상황을 잘 표현하였다.

그리고 둘째는 두 배우의 연기력이 너무 좋아서 몇 번 봐도 질리지 않고 그 상황 속으로 빠져드는 매력이 있어서이다. 아무리 상황 설정이나, 감동포인트를 잘 두었다 하더라도 배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영화가 될 수 없다. 마치 갖가지 귀한 제철나물을 가져다 놓아도 엄마의 손맛이 더해지지 않으면 봄향 가득한 나물 무침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이병헌과 박정민이 "참 연기를 잘한다“ 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영화 속 이부형제인 오진태(박정민)와 김조하(이병헌), 그리고 아들과 우리 가족이 겪었던 상황들을 하나씩 떠올려 본다.


1. 패션

아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늘 미아방지용 목걸이를 하고 다녔다. 누구나 어린 자녀들을 키울 때면 한 번쯤은 미아방지용 목걸이를 채워 줬을 것이다. 우리 둘째 딸도 어릴 때는 목걸이를 하고 다녔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 영화 속 오진태의 목걸이를 보니 어릴 적 목걸이를 하고 다니다 끊어지면 새로 사주고, 작아지면 다시 샀던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좌) 영화<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컷


2. 화장실

진태와 형 조하가 버스를 타고 가다 진태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한다. 무작정 내려서 아파트 단지 내 숲에서 응가를 하다 잡혀 지구대에서 범칙금을 내는 장면이 나온다. 나 또한 경찰서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아들은 밖에만 나가면 화장실을 자주 가고 싶어 한다. 간혹 아들의 일촉즉발 다양한 생리적 현상은 간간이 나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기도 한다.


3. 포도맛 폴라포

진태가 형과 함께 전단지를 돌리다 쉬면서 포도맛 폴라포를 먹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우리 아들과 너무 똑같아서 신기했었다. 물론 영화에서는 우연히 포도맛 폴라포를 골라서 먹었겠지만.

“ 아들 뭐 먹고 싶어?”

“폴라포”

“무슨 맛? “

“보라색”

이렇게 아이스크림 가게를 같이 갈 때면 아들은 늘 보라색 포도맛 폴라포만 먹었다. 아들이 어찌나 보라색 폴라포만 먹었던지 동네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면 연두색, 하늘색, 분홍색 등 다른 색 폴라포는 엄청 쌓여 있었지만 보라색 폴라포만 바닥을 보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렇듯 영화에서 진태가 짜파게티만 쌓아놓고 먹는 것처럼 자폐를 가진 사람들은 유독 한 가지에만 집착하고 파고드는 경향이 많다.

(우) 영화<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컷


4. 감정 표현

패션과 행동습관보다도 더 유사한 점은 감정 표현이었다. 진태는 엄마(윤여정)의 죽음 앞에서도 슬픔을 모르고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엄마의 장례식장에서도 태연한 모습이다. 아들도 작년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태연한 모습이었다. 어쩌면 지금도 외할머니의 부재를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앞으로 살면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아들이 나와 아내가 죽는 날만큼은 태연하지 않고 엄마, 아빠의 부재를 슬퍼했으면 한다. 그렇기라도 하면 내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마음 놓고 기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컷


5. 그리고 내 마음의 성숙

영화 초반 이병헌이 자폐를 가진 이부형제인 동생을 대하는 모습은 그의 거친 인생과도 같이 한없이 거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생의 생각을 이해하고 보듬어주고 부드러워진다. 나 또한 처음에는 아들의 장애를 이해하지 못했고, 서툴렀으며, 피하고 싶은 상황들이 있었다.

(좌) 영화<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컷

이렇듯 영화와 나의 유사포인트는 여럿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다른 점이 있었는데 진태는 천부적인 절대음감을 타고나 피아노를 천재급으로 잘 치는 서번트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재능으로 성당에서 피아노도 치고 더 나아가 큰 연주회에서 멋진 연주실력을 뽐내며, 청중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는다. 이 같은 능력을 가지는 것은 자폐자녀를 키우는 모든 부모의 바람이자 한가닥 희망일 것이다. 하지만 진태처럼 그런 능력을 가진 자폐장애인은 극히 드물다.

여기서 이제 나는 영화 속에서 나와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 아들은 진태처럼 그런 능력은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볼 것이다.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내가 겪었던 상황들을 떠올리며, 위안도 받고, 이루어지지 않는 줄 뻔히 알면서도 아들도 진태처럼 저런 능력이 있었으면 하는 희망적 사고를 가지며, 상상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또 한번 우리의 삶은 영화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또 다른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최근에 다시 보게 되었다.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 오래전 포레스트 검프 포스터를 보게 되면서 오랜만에 OTT를 통해 영화를 다시 보았다.

영화 속 포레스트 검프는 아들보다는 한 단계 뛰어난 경계성 지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현실적으로 아들이 제일 닮았으면 하는 모델이다.

포레스트 검프는 어릴 적 포기할 수 있었던 삶을 “엄마”라는 강인하고 뛰어난 조력자를 만나 결국에는 성공한 인생을 살게 된다. 어쩌면 포레스트 검프는 일반인보다도 훨씬 더 성공한 삶을 살았다. 월남전 공로로 인해 대통령께 훈장도 받고, 새우잡이 사업에 성공해 부자도 되며, 짝사랑하던 여자친구와의 사이에 아들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난 그런 성공보다도 아들이 포레스트 검프처럼 하고 싶은 것을 즐길 줄 알고, 친구도 사귀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그 감정표현 능력을 제일 닮았으면 한다.

영화<포레스트 검프> 스틸컷




언젠가 아들이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엄마, 아빠 감사해요”

라는 말을 이번 생에서 꼭 한번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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