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눈의 투명도는 세상을 알아가는 속도와 반비례한다.
분주하게 출근 준비를 하는 아침, 세수를 하고, 거울 앞에 서서 문득 거울에 비친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약간은 누르스름하고, 군데군데 실핏줄이 보이며, 무언가를 씌운듯한 불투명한 눈, 찌든 듯 보이는 그 탁함에 아침부터 피로가 몰려왔다.
몇 분 뒤, 등교를 위해 세수를 하고 온 6학년 아들의 머리를 말려 주기 위해 아까와 같은 거울 앞에 섰다. 아들은 아침부터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해맑게 거울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조금 전 나와 똑같이 거울에 비친 아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들의 눈은 태어날 때와 변함없이 초롱초롱하며, 맑고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밝게 웃고 있는 아들의 눈을 보니, 아침부터 피로가 몰려온 나의 눈이 어느 정도 정화된 느낌이었다.
아들은 머리를 말린 뒤, 늘 즐겨보는 어린이 만화 대사를 혼자 큰소리로 중얼거리며, 등교하기 전까지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아들은 그렇게 "맑은 눈의 수다쟁이"다.
그런 날이 있었다.
아들이 3살 무렵, 아들은 또래들과 다르게 전혀 말을 하지 않았고, 상대방의 행동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엄마, 아빠라는 말도 하지 않았었다.
하루는 아내와 함께 집안에서 아들 몰래 숨어 갑자기 혼자 남겨진 아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혼자 남겨진 두려운 상황 속에서는 본능적으로 엄마, 아빠를 말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하지만 10분이 지나도록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감정의 변화도,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그때, 우리 소원은 아들이 그냥 의미 없는 아무 말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거였다.
그 시절, 아들과 함께 지하철을 탈 때면, 언제나 할머니, 할아버지분들께서 말을 걸곤 하셨다.
"몇 살이야?"
"......"
"5살?"
"......"
"아이고, 가만히 그냥 가고 싶은데 할머니가 말을 걸어서 기분이 안좋은갑다. 내 이제 말 안 걸게. 미안하대이"
“할머니, 저희 아들은 5살이고, 할머니께서 말 걸어서 부끄로워서 그런 겁니다. 지금 좋아하는 지하철 타서 엄청 기분 좋아요^^”
그럴 때면 어르신들께 열심히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자리가 있어도 서서 가기 시작했다.
"나는 통역사"
6살 무렵, 아들이 드디어 단어를 말했다.
오래도록 지하철을 좋아하고, 자주 타서 그런지 역시나 지하철역 이름을 먼저 말했다. 지하철역 이름들은 아들에게 훌륭한 국어선생님이 되어 그 이름들로 한글을 가르치고, 다른 단어들도 하나둘씩 이해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며, 문장을 만드는 것은 두, 세 단어밖에 안 되고, 우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소통이었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를 부르며, 자기만의 생각을 요구하는 성장한 아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기뻤다.
그리고 지하철을 탈 때면, 예전처럼 할머니, 할아버지분들께서 말을 걸어오곤 하셨다. 그런데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는 아들의 생각을 내가 대신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통역사가 되어 아들이 말하는 것을 어르신들께 전달해 드리는 것이 달라진 점이었다.
"몇 살이야?"
"6살(아들이 서툰 발음으로 말했다.)"
"할머니, 저희 애가 6살이라고 합니다."
"잘생겼네, 아빠하고 놀러 가나 보네. 어디까지 가노?"
"양산역 가요.(아들이 서툰 발음으로 다시 말했다.)"
"양산역까지 간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들은 성장한 언어 소통만큼이나, 세상에 한 발짝 더 다가가며,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익혀 나갔다.
맛있게 멜론
아들은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종종 맑고 투명한 단어 선택으로 예상치 못하게 우리를 웃게 하곤 한다.
한 번은 가족 다 같이 캠핑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모닥불에 구워준 마시멜로가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맛있었던지 마트에서 같이 장을 볼 때 마시멜로 한 봉지를 덥석 집어 들었다.
"이거 먹고 싶어?" "네. 먹고 싶어요."
그날 저녁, 간식 삼아 캠핑장처럼 마시멜로를 굽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아들에게
"아들, 지금 굽고 있는 거 뭐야?"
"멜론"
"아니~ 이거는 마시멜로야"
"맛있게!! 멜론!!"
마시멜로든 멜론이든 자기가 먹고 싶은걸 열심히 말하는 아들의 모습에 또 한번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쪼!보!운!전!
얼마 전, 아내가 장거리 회사 출퇴근을 위해 새 차가 생기고, 드디어 직접 차를 운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루는 아내가 휴가를 내고, 아들과 함께 아들이 공부하는 언어수업치료센터에 가게 되었다.
늘 대중교통만 이용하다가 두려움반, 설렘반의 마음을 안고 아들과 함께 언어수업을 가게 되었는데, 그런 상황을 아신 언어선생님께서 수업 도중에
“아들~ 오늘 뭐 타고 수업 왔어?”하고 물으시니
아들은 너무나 당당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쪼!보!운!전!”
아들에게 엄마 차는 뒤에 붙어 있는 초보운전 스티커로 인해 이름도 강제로 쪼보운전이 된 것이다.
그렇게 또 한번 아들의 예상치 못한 순수한 대답은 우리를 웃게 하고 즐겁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아들의 원동력, 고기
일반학교에서 특수학교로 전학 간지도 어느덧 3년이 다 되어간다.
그리고 얼마 전 아들의 학부모 참관 공개수업에 가게 되었다. 여느 일반 학교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특수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돌발상황이 많기 때문에 학부모 참관 공개수업이 있을 때면, 선생님들께서 무척이나 애를 쓰시는 것 같았다. 공개수업은 과학시간이었는데 선생님께서 그 시간을 위해 아이들과 함께 수없이 많은 연습을 하셨을 거라 짐작되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께서,
“이것 때문에 우리가 먹고 마시고 숨 쉴 수 있어요”
라고 하시며, 괄호 안에 초성으로 기역자 두 개(ㄱㄱ)를 적으시고, 아들을 보드판 앞으로 부르며, 답을 적어 보라고 하셨다.
정답은 "공기"
하지만 아들이 당당하게 적은 답은 바로,
"고! 기!"
역시나 먹성 좋은 아들이 먹고 마시고 숨 쉴 수 있는 원동력은 고기였던 것 같다.
이렇듯 아직도 뽀로로와 타요를 좋아하고, 로보카 폴리 대사를 하루 종일 중얼대는 아들,
아마도 세상을 알아가는 속도와 맑은 눈의 투명도는 서로 반비례하는 것 같다.
언젠가 아들도 더 많이 세상을 알게 되겠지만, 지금의 나처럼 탁한 눈이 아닌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맑은 눈은 계속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또 한편으론 맑고 투명한 호수같은 아들의 마음에 세상의 나쁜 돌이 던져져 파도같은 물결이 생길까봐 항상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언젠가 홀로 남겨져 그 맑은 호수를 지켜야 할 아들을 위해 지금도 열심히 호수 주변을 살피는 법을 아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렇듯 나에겐 아직 남아있는 숙제와 열심히 방앗간을 돌려 짜내야 할 인생의 참기름 한 방울이 너무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