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보조바퀴가 있다.
“벌써 몇 년을 보조바퀴 달고 자전거를 탔는데 이제는 탈 수 있을 것 같다. 언제까지 보조바퀴 달고 자전거 탈 순 없으니 뒤에서 자전거 잘 잡아주면서 천천히 연습해 보자.”
작년 가을, 아들의 자전거 보조바퀴 떼는 것을 두고 아내와 나는 한참을 실랑이를 벌였다.
7살 때 어린이 자전거부터 지금의 미니벨로까지 아들은 늘 보조바퀴에 의존해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몇 년을 고민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아들이 다칠까 싶어 지레 겁먹고 보조바퀴 떼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큰 결심을 하고, 보조바퀴를 떼어 낸 채로 자전거를 타 보기로 했다.
아내와 내가 번갈아가며, 자전거 뒤에서 잡아주니 아들은 ‘뒤뚱뒤뚱’ 연신 핸들을 이리저리 옮기며,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때, 자전거 뒤에서 손을 놓자마자 마치 아들은 우리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처음부터 자전거를 탔던 것처럼 멋지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지켜보던 우리 부부도 탄성을 자아낼 만큼 너무나도 놀라운 순간이었다.
언제나 남들보다 한 걸음 뒤에 있던 아들이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같은 속도로, 어쩌면 더 빠르게 나아가기 위해 힘차게 페달을 밟는 것 같아 보였다.
그렇게 멋지게 두 발 자전거 타기에 성공하며,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늘어났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뻤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 딸만 자전거 타기에 성공하면 가족들 다 같이 멋지게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 타는 날도 머지않았다. ”
아들에게 꼭 필요한 보조바퀴
코로나19의 대유행 직전이었던 2019년 12월, 아들이 또 다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바로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하게 된 것이었다. 집으로 방문하셨던 낯선 심사관님과의 첫 대면, 그렇게 처음이라 어색했던 심사는 진행되었고, 그 결과 90시간이라는 활동지원 시간을 배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2020년 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여파로 아들은 두 달이나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이라 활동지원 시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8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을 섣불리 낯선 활동지원사분께 맡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아내는 오랜 기간 휴직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년간 더 휴직을 하게 되었다.
2021년이 되어 아내가 5년여의 경력 단절을 끝내고 새롭게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내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1년간 휴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1년 5월, 아들이 다니던 복지관에 활동지원 서비스 신청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과 아들에게 맞는 활동지원사분과 상담을 하여, 그렇게 지금의 활동지원사분과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우리 부부는 활동지원사분이 단순한 활동지원이 아니라 아들에게 사회생활을 가르쳐 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호칭도 ‘선생님’이라 정하였고, 아들에게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따르라며, 알려 주었다.
활동지원을 시작하며, 머릿속에 있던 이것저것 아들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선생님께 알려 드리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고, 레포트 쓰듯이 아들의 성향과 요일별 치료수업 장소, 교통편, 약도, 스케줄 시간 등 세세한 모든 것들을 글과 사진, 그림으로 정리해서 선생님께 드렸다.
아들이 낯선 분과 함께 하며, 놀라지 않고 천천히 적응을 할 수 있도록 처음 한 달 동안은 우리 차로 선생님, 아들과 함께 학교, 치료수업 장소 등을 다니며, 아들은 선생님께 적응을 하고, 선생님은 아들의 성격, 행동습관, 스케줄 등에 적응하게 되셨다. 그리고 다음 한 달 동안은 아들과 선생님께서 주로 이용하게 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세 명이서 함께 다니며, 적응기간을 거쳤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 마침내, 선생님과 아들의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항상 전전긍긍하며 걱정하던 내 생각과 다르게 아들은 생각보다 훨씬 사회에 잘 적응하며, 선생님을 따랐다. 그래도 아들과 선생님을 보내고 먼발치에서 ‘아들이 잘 다니고 있나’ 하고 몇 번이나 지켜보곤 했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선생님과도 신뢰관계가 잘 형성되었고, 나 또한 1년여의 휴직기간을 끝내고, 다시 회사에 복직을 하게 되었다.
“오늘도 언어수업 잘하고 지하철 타고 종점까지 갔다 왔는데 너무 좋아하네요”
복직을 하고 나서도 처음 활동지원을 시작하실 때처럼 선생님께서는 나와 아내에게 아들의 하루일과를 궁금해하지 않도록 잘 말씀해 주셨고, 이렇게 우리는 곁에 있지 않아도 아들의 정보를 고맙게 잘 전달받을 수 있었다.
평범한 일상도 늘 새로운 도전
이처럼 우리 가족과 아들에게 평범한 일상 하나도 자전거 타기와 같이 늘 새로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 곁에는 언제나 자전거 보조바퀴처럼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도움이 있어 도전을 성공해 낼 수 있었다. 어릴 적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의 도움, 학교에서는 특수학급 선생님과 친구들의 도움, 지금은 활동지원사 선생님, 언어, 미술, 수영수업 선생님 도움까지 아들이 도움받는 것에 대해 우리 부부는 늘 감사한 삶을 살고 있다.
작년 가을, 우리가 만약 아들이 다칠까 지레 겁먹고 보조바퀴 떼는 것을 포기하였다면, 아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아직도 보조바퀴에 의존해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아들은 “자전거 타요. 공원 가요.” 라며, 서툰 말솜씨지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며, 늘 새로운 시작에 도전 중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아들이 자전거 타기 때처럼 새로운 일상 하나하나의 보조바퀴를 떼어가듯 사회에 좀 더 적응하고, 마침내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그날까지 함께 연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