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도 영화 같은 필모그래피가 있다.
오랜만에 잔뜩 쌓아두었던 서류를 정리하면서, 예전에 떼어 놓았던 주민등록초본을 발견했다. 보통 서류를 제출할 때 가족까지 포함된 사항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를 주로 사용하곤 한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평상시에 주민등록초본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초본은 한 장에 출력되는 주민등록등본과 달리 출생신고 된 주소부터 현재 주소까지 여러 장으로 출력된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다.
오랜만에 주민등록초본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옛날 추억들도 새록새록 떠오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이 어릴 적 주소가 자주 변경된 거였다.
기억을 짜내 보니, 어릴 적 엄마 손잡고 집 구하러 이곳저곳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이 떠오르고 나니 ‘부모님께서 그때 집 구하고 이사 다니시느라 많이 고생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짠해졌다.
그리고 다른 주소들을 보니 우리 집, 내 집이 생기던 날 등 잊고 있었던 기쁜 추억들도 떠올랐다.
초본은 나의 필모그래피
그런데 문득 초본을 보니 유명 영화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필모그래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도 마치 영화와 같다. 인터넷 검색창에 영화감독이나 배우들을 검색하면 수많은 작품리스트의 필모그래피가 나오듯이, 초본은 나를 둘러싼 "인생"이라는 영화의 리스트다.
멜로영화처럼 소소하면서 행복했던 일, 액션영화 같은 거칠고 힘들었던 일, 공포영화처럼 무서웠던 일 등등 그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이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흥행작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인생의 필모그래피를 한번 들여다보려 한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반백년에 다가가는 내 인생에도 여러 흥행작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흥행작들의 주연들은 언제나 가족이었다.
1988년 부산직할시
주연 - 누나, 나
어릴 적 우리 집은 부유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부모님은 늘 우리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시기 위해 애쓰셨다.
어느 날 엄마, 아빠가 어딘가에 다녀오시더니 커다란 상자 하나를 들고 오셨다. 그건 바로 비디오 플레이어와 텔레비전이 붙어있는 비디오비전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은 마치 그 당시 공중전화처럼 빨간색 케이스로 둘러싸여 있는 흑백텔레비전이 있었는데, 새 비디오비전을 보는 순간, 누나와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 이후로 매일 동네 비디오가게를 들락날락거렸다.
비디오가게에 가면 주인아저씨의 대여노트가 있었는데, 노트 한켠에 붙어 있던 "ㅇ" 초성 견출지의 우리 이름에는 늘 비디오 대여흔적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렇게 누나와 나는 한동안 영화에 빠져 들었었다.
"야, 큰일 났다. 이거 씹힌 거 아이가?"
갑자기 다급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디오가게에서 빌려온 비디오테이프를 여러 번 돌려보다 보니 테이프가 씹힌 거였다.
"살살 한번 빼 보자"
조심스럽게 비디오테이프를 빼 보았지만 이미 씹힌 자국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때, 어린 마음에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연필로 비디오 뒷면 동그란 부분을 돌려 테이프가 씹힌 부분을 보이지 않는 안쪽으로 넣어 버리는 거였다. 그렇게 비디오테이프를 반납 후, 주인아저씨에게 들킬까 봐 마치 공포영화를 보는 것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며칠 동안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비디오가게에서 연락은 오지 않았지만, 그때 누나와 나는 공포영화 한 편을 찍어야 했다.
"아저씨, 그때 솔직하게 말씀 못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1994년 여름
주연 - 엄마, 나
"저 집이다. 학교하고 바로 붙어 있제"
새 집으로 이사 가기 전, 엄마가 이번에 이사 갈 집을 미리 보여 주셨다.
아파트는 내가 다니던 학교와 10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고, 바로 붙어 있었다. 5층 우리 집 베란다에서 밤마다 창밖을 볼 때마다, 김해공항의 비행기들이 뜨고 내리던 장면이 보였었는데, 반짝반짝 빛나던 비행기와 여러 주택들에서 뿜어져 나오던 각양각색의 조명들이 비추던 야경은 지금도 자주 생각날 정도로 너무나도 멋진 풍경이었다.
1994년 여름 직전,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드디어 엄마, 아빠와 사람들이 이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날, 이사 간 아파트 내 방에서 듀스의 "여름 안에서" 카세트테이프를 듣던 날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해 여름은 우리나라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었다. 하지만 새 아파트에서 부푼 미래를 꿈꾸던 우리 가족에게는 그 정도 더위 따위는 문제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해 여름이 정말 더웠다지만,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그곳에서 사는 행복에 더위도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 후 20년이 넘도록 우리는 행복한 가족영화를 찍었다.
2014년 겨울, 내 집이 생겼다.
주연 - 나, 아들
"밖에 풍경이 참 좋네요!"
아내의 복직으로, 당분간 아들을 엄마가 봐주시기로 해서 부모님 집 근처에 집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전까지는 결혼 후부터 쭉 관사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집을 구하러 다니며, 첫 번째로 보러 간 집에서 우리 부부는 베란다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에 매료되고 말았다. 완전히 탁 트인 전망은 아니었지만, 아파트 사이로 보이던 풍경이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멋져 보였다.
주변 시세에 비해 그리 싸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 집에 마음이 뺏겨버린 우리 부부는 혹여나 다른 분들이 계약할까 싶어 집을 본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가계약을 해 버렸다.
그렇게 2014년 겨울, 드디어 내 집을 장만했다. 그리고 이사 다음날, 좀처럼 눈이 오지 않는 부산에 정말 신기하게 함박눈이 내렸다. 마치 내 집이 생긴 걸 하늘이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막 돌 지난 아들과 눈길을 처음으로 함께 걸으며, 동사무소에 전입신고를 하러 간 기억이 난다.
첫 우리 집에서는 둘째 딸이 태어났고, 아들은 초등학교도 입학하게 되며, 많은 추억이 있었다.
7년간, 우리는 주로 어린이영화를 찍으며, 다음 청소년 성장영화를 준비했다.
초본이라는 나뭇가지
주연 - 우리 모두
마치 한 영화에 여러 배우들의 필모그래피가 중복되듯, 교집합처럼 우리의 초본이 겹칠 때, 늘 곁에는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가족이 있었다.
"언젠가 나의 초본은 끝나겠지만, 마치 교집합처럼 아이들과 중복된 그 순간부터 초본은 나무의 가지처럼 뻗어 나가며,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했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자기들만의 색깔 있는 영화를 초본에 그려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