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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四季) - 上

우리 가족에게는 기억에 남을만한 사계(四季)가 있었다.

by 여름별아빠

올해도 어김없이 다시 봄은 찾아오고, 새싹이 돋아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날씨가 더운 걸 보니, 또 계절이 지나가고 있음을 몸이 먼저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우리 가족의 사계(四季)는 아들 덕분에 유독 추운 겨울에 고민하는 날이 많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새로운 변화가 많았다. 우리 가족은 위로는 오빠, 아래로는 여동생인 남매와 함께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족이다.




여름과의 만남

그중 우리 부부의 첫 아이인 아들은 2013년 8월, 무더운 여름날,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태어났다. 출산 당일 자연분만을 시도하다 탯줄이 어깨에 감겨 자연분만이 어려워지자 긴급하게 제왕절개 수술을 하였고, 그렇게 어렵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다른 아이들보다 작고 어렵게 태어난 아들을 위해 앞으로 세상을 향해 힘차게 맞서라고 이름에도 ‘굳셀 무(武)’를 넣어 이름 지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봄, 그리고 겨울

아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2015년 3월, 어느 봄날이었다. 그 또래의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문화센터에 첫 수업을 듣기 위해 방문했던 날이었다. 흥겹게 들려오는 동요소리에 아들은 갑자기 자지러지게 울며,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평소에 안 그랬는데 유독 오늘 왜 이럴까? 낯설어서 그런가’하고 생각했는데 다음 주 수업에도 마찬가지로 울음을 그칠 줄 몰라 결국 문화센터 놀이수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이후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들은 늘 무표정한 얼굴에 엄마, 아빠라는 말을 포함해서 다른 어떤 말도 잘하지 않아, 그때만 해도 단지 말이 늦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2015년 11월 겨울, 아내와 함께 찾았던 병원에서 아들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고, 또래보다 발달이 느려 여러 가지 수업을 병행하며, 앞으로 성장과정을 지켜보자는 말을 들었다. 그날 병원을 나오는 길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품에 안겨있는 아들을 보니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리고 어떻게든 아들에게 평범한 삶을 찾아 주겠노라 아내와 다짐을 했다.


그때부터 아내는 경력을 포기하면서까지 아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피고 언어, 놀이, 감각, 수영 등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며 교육에 열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부부가 열심히 노력하면 아들을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들은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 내에 있는 일반 어린이집을 다녔었는데 하루가 끝나면 늘 선생님께서 아이들의 단체 활동사진을 보내 주셨다. 그런데 사진 속 아들의 모습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항상 선생님께서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다른 친구들은 귀엽게 포즈를 하며, 사진에 나올 때 아들은 늘 친구들 가장자리에서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맨발만 덩그러니 보였다. 혹시나 싶어 몇 번을 다시 스크롤해 보아도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그 맨발만 보이는 사진을 보고 아들의 하루를 상상할 때마다 늘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아들은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며, 더디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따스한 봄의 시작, 가을의 행운

2016년 겨울 고민 끝에, 아들을 일반 어린이집에서 특수어린이집으로 보내고자 결심했고, 2017년 봄, 여러 어린이집과 상담하고, 그중 한 특수어린이집에 새롭게 다니게 되었다. 그곳에서 아들은 차츰 밝아졌고, 또래들과도 서서히 어울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10월,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던 가을날, 우리 가족 둘째인 딸이 태어났다.


아들은 그동안 늘 모든 것을 혼자 독차지했었지만, 딸이 태어난 후, 이제는 혼자일 때와 다르게 '가족이란, 작은 사회' 안에서 양보와 경쟁, 협력, 그리고 제일 중요한 남매간의 우애까지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덤으로 동생과 함께하는 시간들 덕분에 밝고 즐겁게 웃는 날 또한 늘어났다.

늘 동생 손을 놓지 않는 오빠




아들이 차츰 밝아지고, 사회성까지 길러지니 그동안 오르지 못할 산처럼 느꼈던 기저귀를 떼고, 대소변을 가리는 것도 거짓말처럼 해내게 되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것들이나 길게 나열되어 있는 것들을 좋아했는데, 특히 지하철을 워낙 좋아해서 아내와 함께 거의 매일 지하철역을 다녔었다. 그때까지 아들은 한글을 깨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좋아하는 지하철을 통해 한글을 가르쳐 보고자 했다. 그래서 지하철역을 다니면서 눈으로 익혔던 역 이름들 사진과 지하철 노선도들을 이용해서 낱말 맞추기, 빈칸 채우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글을 가르쳤고, 그 결과 6살 무렵 한글 쓰기와 말하기도 성공하였다.


못 이룰 것 같았던 아들의 성장을 보며, 우리 부부도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고, 아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2018년 여름, 아들은 자폐성장애 2급 판정을 받았고, 그 이후로도 평범한 일상을 위해 변함없이 많은 것을 배우고 알아가려고 노력하였다.




지하철로 한글 공부하기


손으로 만들어준 노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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