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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방앗간 주인

평범한 일상을 볶아 특별한 참기름을 짜다.

by 여름별아빠

“참기름이 다 떨어졌네”

퇴근 후 아이들 저녁을 차려주고 아내와 간단하게 열무비빔밥을 먹으려 했는데 참기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었다.

조금 전 아들이 좋아하는 황태국을 끓이는데 참기름을 너무 많이 써 버렸나 보다.

참기름은 시중에 판매되는 맑은가든이나 하얀눈같은 브랜드 참기름도 좋지만, 시장 어느 한구석에서 금방 짠듯한 투박한 기름병에 가득 담긴 고소한 참기름을 더 좋아한다.

‘그냥 때 묻지 않은 순수한 그 느낌이 좋다’


아무튼 남아 있는 한 방울이라도 더 짜내기 위해 참기름병을 뒤집어둔 채 한참을 기다렸다.

모래시계처럼 뒤집혀진 참기름병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문득 '우리 인생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라는 고소한 맛을 보기 위해
'일상'이라는 깨를 볶아 참기름을 짜다.


출퇴근과 등하교는 나에게 시간을 짜내게 한다.

매일 아침 8시 20분, 특수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을 스쿨버스에 등교시킨 후, 출근을 하려면 지하철을 타고 마을버스까지 환승을 하며, 빨리빨리 움직여야 9시 안에 도착할 수 있다. 비록 짧은 출근 거리지만 혹여나 마을버스가 늦게 도착할 때면 지각을 할까봐 걱정의 마음을 짜내기도 하고, 마을버스 도착정보를 본 후,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하면 체력까지 함께 짜내게 된다.

그리고 퇴근 후, 학원을 다녀오고 혼자 집에 있을 9살 둘째 딸 생각에 또다시 뛰기 시작한다.


“이번엔 출근의 역순이다!”


그래도 요즘엔 지하철이나 버스 도착정보가 잘 되어 있는 “IT강국 대한민국”에 살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도착할 수 있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출퇴근시간에만 유독 뛰어 오르는 심박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데카르트 -

시간과 체력, 이제 생각을 짜내는 일이 남았다.

직장에서는 보고서에 적합한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몇 시간씩 생각을 짜내고, 저녁시간이 다가오면

'집에서 아이들 저녁으로 뭘 해야 하나' 라며, 매일매일 저녁메뉴 생각을 짜낸다.

그리고 아내는 아이들 공부를 봐줄 때마다 언제 봤을지 기억도 나지 않을 법한 수학공식을 풀기 위해

온갖 기억을 짜내기도 한다.


“이렇듯 모두가 이렇게 일상을 짜낼 정도로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 “


“승진, 재력, 명예 등 각자가 느끼는 차이가 있겠지만 한번쯤 맛보았을 ‘행복’을 다시 맛보기 위함은 아닐까? “



고소함을 가미하다

불현듯, 오늘 하루 나의 행복보다도 '가족'이라는 메인요리에 고소한 양념 몇 방울을 더하기 위해 노력한 나와 같은 부모님들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어느새 참기름은 모여 비빔밥이 완성되었다. “




- 평범한 일상을 볶아 특별한 참기름을 짜는 기름방앗간은 쉬지 않고 돌아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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