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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못 지어줘서 미안해

발이 되어주었던 친구

by 여름별아빠
첫차의 설렘

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생 첫 차에 대한 설렘과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사회생활을 함께 시작하고, 15년 넘게 발이 되어주며, 때로는 안식처가 되어준 나의 보조바퀴처럼 소중한 친구였던 인생 첫 차가 있었다.




엄마의 선물

때는 2007년 12월 어느 추운 겨울날, 취직해서 막 6개월이 지났을 무렵의 풋풋했던 새내기 직장인 시절이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 간 환승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았을 때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출근길에 나서 직장 동료분 차에 카풀을 하려고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30분이 지나도록 차가 오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 그때, '아들이 출근했으려나' 하고 밖을 보시던 엄마가 추위에 떨며, 차를 기다리고 있던 나의 모습을 보신 거였다.

그 모습이 엄마는 마음 아프셨던지 그날 퇴근하자마자 취직도 했으니 큰맘 먹고 새 차를 사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며, 주말에 집 앞 차량 전시장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참아야 한다’고 이성적으로는 생각하고 있었으나, 이미 눈앞에서 새 차를 본 나의 감정을 이성이 이겨낼 순 없었다.

그렇게 그때 전시장에서 보고 첫눈에 반한 멋진 SUV 가 나의 첫 차가 되었다.

나와 한 몸 같았던 나의 첫 차는 전국을 함께 누볐고, 결혼 후 우리 가족들을 위해 튼튼하고 멋진 발이 되어 주었다.


자동차 극장도 함께 했던 우리


하지만 흐르는 세월 앞에 장사 없듯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저기 잔고장도 많고, 속도도 잘 안나는 내 차를 볼 때마다 둘째 딸아이의 "새 차 사자"는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새 차를 계약하게 되었다.

말년에는 누수도 생기고 잔고장에 고생한 친구


그런데 계약 후 4~5개월 걸릴 줄 알았던 대기기간이 짧아져, 당장 계약 다음 주에 새 차를 받게 되었고, 그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별을 앞둔 순간, 단지 교통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한 자동차에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았던 내 마음이 그렇게 짠해질 거라곤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둘만의 라디오 시간

남들처럼 그 흔한 애칭 하나 지어 주지도 못했지만 최신식 차들이 즐비한 지금까지 늘 묵묵히 곁을 지켜준 내 차에게 너무 고마웠고, 수없이 함께한 청춘 속 소중한 추억들을 기억하며, 떠나보내기 전 추억 하나를 더 만들고자 라디오에 사연과 신청곡을 보냈다.

당시 우리 가족이 즐겨 듣던 라디오 방송이었던 “오늘아침 정지영입니다”였다.


사연과 신청곡은 이랬다.

1. 윤종신 "고속도로 로맨스"

- 그동안 수많은 고속도로를 누비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2. 윤상 "달리기"

- 힘차게 달렸으니, 이제 숨 고르며 조금 쉬어요.

3. 옥상달빛 "수고했어 오늘도"

- 기쁠 때 슬플 때 힘들 때 외로울 때 언제나 늘 자리 내어주며, 힘낼 수 있게 달려 주느라 정말 수고 많았다고 전해주고 싶습니다.


거짓말같이 주말에 사연은 소개되었고, 라디오를 함께 들으며, 마지막 추억을 남기고 나서야 내 곁을 떠났다.

내 첫차와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준 "오늘아침 정지영입니다"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포포”와의 만남

그리고 나의 두 번째 차가 왔다.

딸아이는 새 차가 생겨 신나 하며, 차 안에서 뒹굴고 눕고 어쩔 줄 몰라했다.

“포포”라며, 뜻 모를 애칭도 지어주고, 아껴 주었다.

그런데 난 어쩐지 모르게 약간의 미안함과 허전한 마음이 든다. 물론 가족들은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나도 애정을 가지고 또다시 열심히 추억을 쌓아보려 한다.




두번째 차와 함께 열심히 추억 쌓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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